식품접객업소를 점검하다 보면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한 카페에서 음료 제조 공간을 살펴보던 중 작업대 한쪽에 유리병 여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들여다보니 병 안에는 붉은빛 오미자청이 담겨 있었다.
"표시사항을 한번 확인해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묻자, 점주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그것은 제가 집에서 직접 담근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악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좋은 재료를 골라 정성껏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점주의 표정을 보는 순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깨끗하게 만들었을까?"가 아니라 '이 제품은 안전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였다. 바로 그것이었다.
■ '정성'과 '안전'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깨끗하게 만들었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쉽게 말한다. 실제로 가정에서 만든 오미자청이 시판 제품보다 더 위생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식품위생법은 '깨끗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는 추정을 기준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법이 요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안전관리다.
일반적인 세균은 높은 당도에서 쉽게 증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탕에 절인 청(淸)은 겉보기에는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미생물이 다 그런 것은 아니어서 관리되지 않은 제조 환경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테면 높은 당도에서도 생존하거나 증식할 수 있는 내삼투압성 효모는 제조 환경이나 당도, 보관 상태가 적절하지 않으면 발효나 품질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전문 제조시설은 원료 관리부터 제조 환경, 보관 조건, 품질관리까지 관련 법령의 일정한 기준에 따라 운영하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규제하고 있다.
■ 문제는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다
가정에서 만든 오미자청에는 제조원도, 제조일도, 원재료나 소비기한 표시도 없다. 오미자를 언제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만들었는지, 어떻게 보관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도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식품접객업소에서는 제조 이력과 안전관리를 확인할 수 없는 임의 제조 식품을 영업에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식당과 카페에서 사용하는 가공식품에 표시사항이 있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표시사항을 단순한 라벨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식품안전에서 표시사항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추적하고 책임 소재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 사고가 나면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만약 소비자가 음료를 마신 뒤 이상 증상을 호소한다면 어디서부터 원인을 찾아야 할까.
원료였는지, 제조 과정이었는지, 보관 중 오염이 발생했는지 확인할 자료가 없다면 사고는 끝내 원인을 밝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식품위생법은 식품제조업소에서 사용하는 식재료 역시 추적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식품일 것을 요구한다.
표시사항이 없는 가공식품을 영업에 사용하는 행위가 행정처분 대상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소비자가 함께 구매하는 것은 '관리 시스템'
식품안전은 종종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식품안전은 '안전해 보인다'가 아니라 '안전함을 증명할 수 있다'는 원칙 위에서 작동한다.
식품 제조업체가 HACCP과 GMP를 운영하고, 원료 입고부터 출하까지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고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아 개선하기 위한 체계이기도 하다.
가정에서 만든 식품이 반드시 위험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아무리 정성을 들여 만들었더라도 그 과정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입증할 수 없다면 영업장에서 사용하는 식품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점주의 말에는 분명 정성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식품안전은 정성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카페에서 구매하는 것은 오미자청 한 병이 아니다. 그 한 잔 뒤에 있는 관리 체계와, 문제가 생겼을 때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이다.
이아름 식품기술사는...
국내 식품 연구소에서 15년 이상 국내외 유통사 및 제조사를 대상으로 식품안전 시스템 구축·적용, 컨설팅, Audit(FSSC22000, HACCP) 및 교육 업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식품 안전·법규·인증 기준을 중심으로 외식업과 식품 제조업 현장을 연결하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실무 기준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저서 『음식점과 제조업을 지켜주는 단 한 권의 가이드』를 통해 창업 및 운영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정리했으며, 프랜차이즈 업태별 식품안전 관리 주체와 법·제도 보완 필요성을 분석한 논문 “The Korean food franchise industry: Diverse development and conceptual definitions of a food safety managing body”를 공동 집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