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름 식품기술사의 컴플라이언스 리포트] 제13화 "공장에선 이상 없었는데…" 식품안전은 왜 배송 중 무너질까
[이아름 식품기술사의 컴플라이언스 리포트] 제13화 "공장에선 이상 없었는데…" 식품안전은 왜 배송 중 무너질까
  • 이아름 식품기술사
  • 승인 2026.06.2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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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CCP도, 출고검사도 통과… 소비자에게 가는 마지막 몇 시간이 식품안전의 승부 좌우

식품 제조공장을 점검하다 보면 품질관리 담당자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는 HACCP도 인증받았고, 미생물 검사도 하고, 출고 검사도 모두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왜 소비자 클레임이 계속 발생하는 걸까요?"

현장에서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혹시 공장 밖은 점검해 보셨습니까?"하고 되묻는다. 실제로 제조공장에서 모든 기준을 충족한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폐기되거나 품질 이상 판정을 받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많은 사람들은 식품안전이 제조공장 안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장을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제품이 생산라인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운송, 하역, 인수 대기, 보관, 진열 등 또 다른 관리가 시작된다.

공급망(Supply Chain) 전체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제조공정에서 확보한 안전성도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 새벽배송이 끝난 뒤 시작되는 관리 공백

새벽 물류 현장에서는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오전 5시. 배송 차량은 예정된 시간에 도착한다. 하지만 매장 담당자의 출근 시간은 오전 9시다. 배송기사는 정해진 업무를 마쳤고, 수령할 사람은 아직 없다. 결국 냉장식품은 매장 출입구 앞이나 후문 적재 공간에 그대로 놓인다.

여름철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새벽이라고 해도 외부 기온은 이미 25℃를 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3시간, 4시간이 지나도록 제품은 누구의 관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품을 확인해 보면 특히 우유나 신선편의식품의 경우 외관상 멀쩡해 보여도 내부에서는 이미 품질 변화가 시작된 경우가 적지 않다.

포장재가 조금씩 부풀거나 산패취와 이취가 발생하는 현상은 단순한 품질 저하가 아니라 미생물 증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험을 소비자는 물론 일부 현장 관리자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 TCS 식품은 '시간'을 관리하는 식품

우유와 육류, 계란, 수산물, 두부, 샐러드, 김밥, 샌드위치…. 이들 식품은 식품위생 분야에서 TCS(Time/Temperature Control for Safety) 식품으로 분류된다.

말 그대로 시간과 온도 관리가 안전성과 직결되는 식품이다.

냉장식품은 적정 온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비교적 안전하지만 냉장 상태가 무너지면 미생물은 다시 증식을 시작한다. 특히 온도가 올라갈수록 위험도는 조금씩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증식 속도 자체가 급격히 빨라진다.

김밥이나 샌드위치, 도시락 같은 즉석섭취식품에서 상온 노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반세균수와 위생지표균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장에서 출고될 때 안전했느냐가 아니라,. 소비자가 먹는 순간까지 그 안전성이 유지됐느냐가 더 중요하다.

■ 냉장차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방식 

현장에서 또 자주 듣는 말이 "우리는 냉장차로 배송하는데요."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냉장차를 사용한다고 해서 냉장유통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냉장탑차는 제품을 싣기 전에 차량 내부를 목표 온도까지 충분히 낮추는 예냉(Pre-cooling)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냉동기만 켠 채 곧바로 상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면 차량 안은 사실상 외부 온도와 큰 차이가 없는 상태에서 제품을 싣게 된다. 제품은 냉장 운송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열을 흡수하며 이동하는 셈이다.

운행기록계나 온도기록계를 설치했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 곧 적정 온도가 유지됐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록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 제품 온도가 안전 기준 안에서 유지됐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 식품안전은 공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 

최근 개정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식품위생 일반원칙(CXC 1-1969)은 이런 점을 더욱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식품안전은 특정 공정이나 특정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원료 생산부터 제조, 보관, 운송, 유통, 소비까지 이어지는 식품사슬(Food Chain) 전체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개정에서는 운송(Transportation)을 별도의 관리 항목으로 다루면서 위생적 설계와 운영관리, 교육, 유지관리 등 선행요건프로그램(GHP)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공장에서 HACCP 기준에 맞춰 제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식품안전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생산 과정에서 확보한 안전성은 운송과 보관, 유통 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때 비로소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실제로 많은 식품사고는 생산라인이 아니라 공급망의 작은 관리 공백에서 시작된다.

새벽배송 후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인수 대기, 예냉되지 않은 냉장차, 배송 완료 후 상온에 방치된 냉장식품….등 이런 작은 틈들이 결국 냉장유통체계(Cold Chain)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식품안전은 공장 안에서 끝나는 관리가 아니다. 소비자에게 제품이 전달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는 연속된 관리의 결과다. 공급망 어느 한 지점의 작은 빈틈도 전체 안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결국 식품안전의 본질은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안전하게 지켜냈는가'에 있다.

공장은 출발점일 뿐이다. 진짜 식품안전은 공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아름 식품기술사는...
국내 식품 연구소에서 15년 이상 국내외 유통사 및 제조사를 대상으로 식품안전 시스템 구축·적용, 컨설팅, Audit(FSSC22000, HACCP) 및 교육 업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식품 안전·법규·인증 기준을 중심으로 외식업과 식품 제조업 현장을 연결하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실무 기준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저서 『음식점과 제조업을 지켜주는 단 한 권의 가이드』를 통해 창업 및 운영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정리했으며, 프랜차이즈 업태별 식품안전 관리 주체와 법·제도 보완 필요성을 분석한 논문 “The Korean food franchise industry: Diverse development and conceptual definitions of a food safety managing body”를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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