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내 몸 살리는 보리, 그 숨은 매력] ① 국내 보리 재배 역사와 생산 및 소비 현황
[특집-내 몸 살리는 보리, 그 숨은 매력] ① 국내 보리 재배 역사와 생산 및 소비 현황
  • 김현옥/이지현 기자
  • 승인 2020.07.06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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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의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최근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초등학생 가수가 ‘보릿고개’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시대를 겪지도 않았는데 과연 어떤 감정에서 저토록 애닲은 가락으로 구성지게 노래할까 매우 궁금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9~10월 벼를 추수한 뒤 보리를 심는 이모작 농사를 해왔는데, 추수한 양식이 바닥날 즈음인 이듬해 5~6월엔 아직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아 먹을 것 없어 배를 주려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쌀도 없고 보리도 없어 눈물을 머금으며 허기를 달래야 했던 춘궁기(春窮期)라고 불렀던 그 시기가 바로 보릿고개다.

이처럼 보리는 가난의 대명사인 ‘보릿고개’란 말을 낳기도 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부족하던 쌀을 대신해 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며 민족의 애환과 같이해온, 쌀, 밀, 콩, 옥수수와 더불어 주요 5대 식량이었다. 이후 품종개량과 경작기술 발달로 쌀이 풍족해지고 고기 등 다른 먹을거리가 많아지면서 보리는 주곡의 자리에서 밀려 지금은 별미를 위한 식재료의 하나로 한 발짝 물러앉은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중요한 식품으로 보리가 손꼽히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보리의 영양적 가치 등 숨은 매력을 널리 알려 소비를 늘리고, 이미 생산 기반이 갖춰져 있는 보리의 증산 정책을 통해 국민건강 증진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을에 심으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자라 여름에 수확하는, 사계절 기운을 모두 머금고 있는 작물이 바로 보리이기에 일부에서는 자양강장제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보리의 영양 및 건강기능성 가치가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이에 한국식품정보신문 '푸드아이콘'은 우리 농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 식량자원 확보를 통한 자급률 증대를 위해 꼭 필요한 보리의 소비 촉진을 통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외 보리산업 현황을 짚고 미래 발전 방안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듣는 특집을 시리즈로 마련했다. <편집자 주>

한겨울 억센 추위를 견딘 후 푸른 생명을 싹틔워 4~5월 농촌의 들녁을 물들이는 전북 고창의 청보리밭 풍경(사진: 김재주님 페이스북)

문학 속의 보리... 엄동설한 이겨낸 ‘인내‧생명력‧희망’의 아이콘

시인 이해인은 ‘봄이 오는 골목’이란 시에서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라며 보리를 엄동설한 힘들고 지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의 싹을 틔우는 긍정의 메시지로 표현했다.

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한흑구는 수필집 ‘동해산문’에서 ‘온 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다 이겨내고, 봄의 아지랑이와 따뜻한 햇볕과 무르익은 그윽한 향기를 온몸에 지니면서, 너, 보리는 이제 모든 고초와 사명을 다 마친 듯이 고요히 머리를 숙이고, 성자인 양 기도를 드린다’고 기술했다.

한겨울의 억센 추위 속에서도 푸른 생명을 잃지 않는 보리의 끈질긴 인내력을 격정적인 정조를 동원해 찬미한 노래다. 

여기서 필자는 보리가 긴 겨울의 추위와 어둠을 이겨내는 끈기와 생명력 뿐만 아니라, 봄이 되어 결실을 맺을 때가 되면 고개를 숙이는 겸손함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보리의 성격은 순박하면서도 참을성 있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농부들의 본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 나아가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결실에의 희망을 잃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견딘다면 반드시 보람을 얻게 되리라는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마침내 봄을 맞아 결실을 맺게 된 보리의 모습을 기도하는 성자에 비유하고 있다. 한낱 작물에 지나지 않는 보리의 생장 과정을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도 오히려 겸손한 성인의 삶에 견줌으로써 그 생명력의 위대함을 칭송한다.

보리의 매력을 뭉뚱그린 참으로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보리의 재배 역사... 1만 년 전 인류 최초 농경 문화에 영향

농촌진흥청의 농업전문 포털사이트인 '농사로' 작목기술정보에 따르면 식용 보리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나, 약 1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중부 유럽과 이집트의 석기시대 유물에서 발견된 보리 낟알들의 흔적은 보리가 식량원으로서 오래 전부터 이용되었음을 말해준다고 기술되어 있다. 

보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이원발생설(二元發生說)이 가장 유력하다. 즉 이조야생종 원산은 서아시아의 온대 지방, 특히 홍해로부터 코카서스 및 카스피해에 이르는 지역이고, 육조야생종은 티베트의 타오프, 라사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양자강 유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덴마크의 고고학자 헬백(Helbaek, 1953)은 이라크 동북 산간의 야르모(Jarmo)라는 고대유적에서 보리의 이삭에서 눌린 흔적과 탄화된 이삭의 단면을 발견했다. 이 보리는 2줄의 이삭 형태와 재배형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소수의 비 탈락성을 보여 인류 최초의 농경문화를 여는 데 보리가 끼친 영향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기원전 6,000년 이후의 대부분의 오랜 유적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보리는 6줄 보리였다.

현재 2줄 보리는 아프가니스탄 서쪽과 유럽, 북아프리카, 러시아 등 일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반면, 6줄 보리는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실에 비추어 인류가 가장 먼저 재배한 보리는 6줄 보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농경 생활의 정착과 보급에 따라 재배종 보리의 전파도 확대되어 서남아시아 등 동방으로부터 유럽 등 서방 지역으로의 전파는 중-신석기시대에, 기원전 6,000년경에는 그리스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동아시아 지역으로의 보리전파는 지금도 야생형이 분포하는 근동 지역에서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을 통해 중국 산간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다시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리가 한반도 지역으로 전파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선사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종자를 포함한 농경 흔적에서 약 3,000년 전쯤으로 추측된다. 

보리 전파 경로

조선시대 주요 농법서인 농사직설의 기록을 보면, 밀과 더불어 보리는 여름 작물인 쌀, 기장, 조 등 신곡과 구곡 사이의 식량을 연결하는 접식으로 농가의 급박한 식량원 역할을 한 것으로 적고 있다(김, 1984). 서유구의 임원경제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보리는 파종에서 수확까지 사계절의 중화지기를 고루 갖춘 식물로 예부터 중히 여겨져 왔고, 이는 식량 작물로서 뿐만 아니라 약리·기능성을 지닌 약재로의 이용과도 무관하지 않다(서 등,1997).

15세기 이래 조선 시대 주요 농서에 나타난 보리의 명칭으로 보아 당시 재배되던 재래종도 몇 가지 품종으로 분화되고 있으나 벼와 비교해 그 수가 극히 적었다. 서유구의 행포지 5권에는 1과보리(한알보리)의 기록이 있는데 이는 2조종을 지칭한 것으로, 봄에 파종하고 한 알이 매우 크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2조종보리도 재배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보리의 품종 분화와 더불어 파종 및 재배 방식에서도 17세기 초 조선조에 이르러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1619년 고상안이 그의 농사 연구를 모아 편찬한 농가월령에는 보리 품종별 적기 파종기와 뒤뿌림 파종을 위한 얼보리 종자의 저온 처리 등이 기록되었다. 이는 보리농사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배 방법이 개발됐으며 특히 서구인들보다 약 240∼300년 앞서서 저온에 의한 춘화 처리를 실용화하였음을 의미한다(김, 1998).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도 경북 경주시 반월성벽에서 서기 300년대로 추정되는 맥류의 흔적과 충남 부여읍 부소산성의 군창지에서 서기 700년경의 보리를 포함한 곡물의 흔적을 발견한 것 등이 전부였다. 이후 1976년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12호 집터에서 겉보리의 탄화곡물이 출토됐는데, 기원전 10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박1996), 가장 최근인 1995년 충청남도 보령군 평라리 선사 유적의 집터 안에서 보리, 밀 등이 탄화된 상태로 콩, 동부 등과 함께 발견됐다. 평라리 유적에서 발굴된 고인돌의 연대가 기원전 5세기 안팎으로 가늠되므로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곡물의 흔적은 흔암리의 것보다 약간 늦은 그 후대일 가능성이 많다.

국내 보리 생산 및 소비 현황

보리는 화분과에 속하는 1년생 혹은 2년생 초본(草本)식물로 대맥(大麥)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는 보리를 쌀 다음가는 주식 곡물로 꼽으며, 조, 콩, 기장과 함께 오곡(五穀)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보리에 대한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1910년부터다. 이때 보리 재배 면적은 남북한 전체에서 겉보리가 57만 1,000ha, 쌀보리 3만 8,000ha로 총 61만ha였으며, 점차 확대되어 1940년 151만 7,000ha로 최고조에 달했다. 해방 이후 남북한 전체의 재배 면적은 파악되지 못하고 있으나 1940년부터 38°선 이남의 통계와 종전 후 휴전선 이남의 보리 재배면적은 1940년에 103만 3,000ha를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해 1945년은 71만 2,000ha로 줄었다.

그 후 1965년 82만 7,000ha로 늘었다가 1970년대 이후 다시 감소되어 2010년에는 3만 9,000ha에 그쳤다. 2012년 정부의 보리수매 중단으로 재배면적이 2만 1,000ha까지 급속도록 감소했으나 최근 농협 계약재배 (가격 안정화 ) 및 건강식으로의 수요가 늘어 2018년 4만 7,000ha로 늘었다.

맥종별 재배 면적 추이를 보면 겉보리의 재배 면적이 가장 많다가 쌀보리와 맥주보리의 재배 면적이 늘어났다 . 맥주보리는 1944년부터 제주도 농민들과 위탁계약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으나 겉보리에 포함돼 통계 조사됐으며 1975년부터 맥주보리로서 조사됐다.(표1 참조)

보리는 겨울을 지나는 작물이므로 논에서는 벼와, 밭에서는 콩 고구마 참깨 등과 2모작이 가능하다. 따라서 보리의 밭과 논 재배 면적을 보면 1976년까지는 밭 재배 면적이 많았으나 1977년부터는 논 재배 면적이 많아졌으며 1999년에는 논에서 재배되는 비율이 80%를 차지하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1910년 우리나라 보리 10a당 수량성은 조곡으로 겉보리 87kg, 쌀보리 91kg으로 매우 낮았다(표2 참조). 1906년 권업모범장 설립 이후 품종 개발과 재배 기술 개선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1950년대에 수량성이 높아져 1910년 수량의 2배에 달했으며 1960년대에 3.5배, 1980년대 이후는 4배 이상 증가했다 .

우리나라 주요 작물의 2017년 자급도를 보면(표3 참조), 쌀과 서류는 90% 이상에 달하지만 보리는 24.9%, 밀 0.9%, 옥수수 0.8%, 두류 5.4%로 기타 곡물의 자급도는 매우 낮다. 그러나 1인당 연간 소비량을 보면 쌀의 소비량이 급격히 줄고 있으며, 보리쌀은 식량이 부족할 때 제 2의 주곡으로 36kg이상을 소비했으나 쌀의 자급으로 2003년 이후에는 1.1 ∼1.3kg 밖에 소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건강식(새싹보리 , 보리음료 )이나 편의식품 등으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37년이후 남한의 보리 생산량을 보면(표4 참조) 1945년에서 1953년까지는 90만 톤에 채 미치지 못했으나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부족한 식량생산을 위해 보리 재배를 확대함으로써 계속적으로 늘어나 1975년에도 244만9,000톤을 기록했다. 그러나 벼의 통일 품종 개발 및 보급으로 쌀의 자급달성이 이루어지면서 보리 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2010년에는 11만 6,000톤으로 최대 생산 연도의 7%에 불과했다. 게다가 보리수매가 중단된 2012년도는 8만 5,000톤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그러나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보리의 베타글루칸, 폴리페놀 등 기능성이 강조되면서 보리 재배면적 확대에 따른 생산량 증가로 2019년에는 20만톤으로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

#참고자료: 농진청 농사로(농업기술-작목기술정보), 네이버 지식백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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