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고창보리를 말한다] ④ '청보리밭축제'로 경관농업 일군 진영호 학원농장 대표
[특집-고창보리를 말한다] ④ '청보리밭축제'로 경관농업 일군 진영호 학원농장 대표
  • 고창=김현옥 기자
  • 승인 2020.08.2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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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공음면 학원농장 일대 30여만평규모 청보리밭 국내최초 '경관농업특구' 지정
광활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구릉지 청보리밭에 구경꾼들 몰리면서 축제로 발전
연간 50만명 찾는 지역최대 행사...청보리·해바라기·메밀꽃으로 이어지는 관광잔치
복잡한 도심 떠나 대지 속 자연과 호흡하며 스트레스 날리는 힐링 코스로 각광
지역민 힘합쳐 '축제위원회' 발족...투명한 예산집행 무적립 원칙 지속가능성 높여
'수요 없는 보리농사 축제 위해 계속해야 하나' 회의감 들기도...해결방안 마련돼야
'코로나19' 여파로 올 봄 축제를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을 찾은 몇몇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들이 푸르른 농장 사잇길을 여유롭게 거닐며 자연을 만끽하고 있다(사진=학원농장 진영호 대표 페이스북)
해마다 이맘 때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50여만명의 관광 인파들로 북적여야할 고창 청보리밭이 코로나에 밀려 축제를 개최하지 못한 탓에 유난히 푸르른 빛을 발산하고 있다.(사진=학원농장 진영호 대표 페이스북)

고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청보리밭 축제’다.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관광농원 일원에서 펼쳐지는 청보리밭 축제는 연간 40만~50만 명이 방문하는 지역 최대의 축제다. 순전히 보리농사로 시작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인해 이제는 ‘고창의 이미지’로 연상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모든 자연이 푸르름을 더하는 봄날 탁 트인 대자연 속 초록으로 물든 30여 만평 청보리밭의 싱그러운 풍광은 가히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보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느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경관 농업으로 발전시킨 것이 고창 청보리밭 축제입니다.” 15만 평 규모의 학원농장을 운영하며 고창청보리밭 축제를 진두지휘하는 진영호 대표의 말이다.

지역민들의 소득 기회가 되는 청보리밭 축제는 성공했지만, 보리 소비가 감소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축제를 위해 팔리지 않는 보리 농사를 계속 지어야하는 지 회의감이 든다는 진영호 학원농장 대표.
고창 청보리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축제로 승화시켜 관광농원으로 일군 학원농장 진영호 대표

학원농장은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와 부인 이학 여사가 1963년 10월 설립했고, 장남 진영호 대표가 대를 이어 1992년 5월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1994년 4월 관광농원으로 인가받은 후 2004년부터 매년 봄 청보리 축제와 가을 메밀꽃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이곳은 현재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됐다. 2005년부터 시작된 농촌 마을 개발 사업 추진에 힘입어 우리나라 대표 관광농원이 된 것이다.

인기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고창 청보리밭은 올해 예기치 않은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17회 축제를 열지 못한 채 쓸쓸하게 여름을 맞았다. 그렇게 추수가 끝난 보리밭에는 해바라기와 황화코스모스가 한가득 황금 물결을 이루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특히 해바라기는 20일 간격으로 5번에 걸쳐 나누어 심는데, 이듬해 추수할 보리를 파종하는 10월까지 계속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복잡한 도심에서 찌든 스트레스와 우울감 등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힐링 장소로 꼽히고 있다.

“학원농장은 이제 봄철 청보리밭 축제뿐 아니라 여름 해바라기꽃에 이어 가을에는 메밀꽃 잔치가 벌어지고 추운 겨울에조차 시간이 멎은 듯 한가로움 속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사계절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농장에서 만난 진영호 대표는 “당초 수박 농사를 지었으나 노무관리가 힘들어 일손을 덜기 위해 보리로 전환한 것이 광활한 구릉지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며 관광농원으로 발전했다”며 24년간 인고의 시간을 통해 얻은 보리농사와 경관 농업의 가치에 대해 설파했다.

학원농장은 7월초 보리 수확을 마치면 다음 해 보리를 파종하는 10월까지 5번에 걸쳐 해바라기씨를 심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보리를 수확한 자리에는 황금물결을 이루는 해바라기꽃과 황화코스모스가 넘실대고 있다. 코로나19로 지친 가족, 연인들이 학원농장을 찾아 자연과 소통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황금손이 보리이삭을 받치고 있는 학원농장 조형물
황금손이 보리이삭을 받치고 있는 학원농장 조형물. 뒤로 보이는 너른 밭에는 해바라기와 황화코스모스가 어우러져 노란 빛을 연출하고 있다.

“처음부터 소위 말하는 지역경제 살리기 등 거창한 비전을 갖고 출발한 것은 아니에요. 여느 농부들처럼 보리농사를 짓는데 자꾸만 구경꾼들이 몰려오면서 자연스레 축제 행사가 되었고, 그것이 지역민들의 소득기회로 작용한 것이지요. 그러한 현상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장려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청보리밭 축제는 지방 정부 등 관이 인위적으로 진행하는 행사가 아닌, 아름다운 보리밭을 찾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시작된 자연 발생적 민간주도 행사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랜 기간 별 탈 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군수가 3명이나 바뀌었지만 한 번도 흔들림 없이 지속되는 이유는 ‘고창청보리밭축제위원회’라는 자치 기구를 통해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운영하기 때문이다.

주 수입은 음식점과 농산물 판매장 등 부스참여자들로부터 받은 참가비와 거의 같은 규모의 고창군 지원금 외에 사회단체 등에서 보내온 기부금 등으로 마련된다. 그렇게 모은 기금이 지난해 2억 원에 달했고, 전부 축제위원회로 입금되어 축제를 위해 사용됐다.

학원농장에서 방문객의 쉼터로 운영하는 카페
학원농장 매장에는 고창 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특산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학원농장 직판장에서는 고창 지역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과 특산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고창 청보리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이곳에서 생산되는 보리 메밀 등을 소재로 양질의 음식를 제공하기 위해 학원농장에서 직영하는 식당.
고창 청보리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이곳에서 생산되는 보리 메밀 등을 소재로 양질의 음식를 제공하기 위해 학원농장에서 직영하는 식당.

“작년의 경우 총 50개 업체가 참여해 보리를 원료로 한 음식과 지역특산품, 농산물을 전시 판매하거나 체험장을 운영했는데, 이 중 60~70%가 수익을 낸 것으로 조사됐어요. 판매 부스 참여자 선정기준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지역’입니다. 축제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신청자를 영순위로 하는 이유는 축제기간 동안 이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기 때문에 보상 차원에서 무조건 선정합니다. 그다음은 동네에서 면 단위, 군 단위로 점차 거리를 넓혀가기 때문에 군 외 지역민들은 구조적으로 참여할 수 없어요.”

축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 대표는 “모든 예산의 용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기금 문제로 시끄러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조한다. 2004년도 제1회 축제 때부터 27만 명이 방문해 성공리에 마친 행사는 이후 해마다 내방객 수가 늘어 작년에 40만명을 넘을 정도로 규모나 수익성 면에서도 안정화된 상태다.

하지만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숱한 어려움도 겪었다. 진 대표는 “관광농원으로 인가받으려면 식당 매장 화장실 등 내방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들여 농원을 문 열고 보니 방문객이 많지 않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태운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사진작가들이 드나들면서 입소문 나기 시작했고, 때마침 전국의 농가들이 수익성 없는 보리농사를 중단하는 바람에 보리를 구경하려면 고창으로 와야만 했던 상황이 기회로 작용했다.

“보리밭의 관광 가치가 얼마나 있을까 싶었죠. 축제를 열면서도 처음엔 호기심에 몇 번 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겠지 생각하며 청보리밭 축제의 생명력에 의구심을 가진 것이 사실이었어요. 그러나 3회 때부터 방문객수가 30만명을 넘더니 오래되지 않아 40만, 50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급속도로 늘어났고, 지금은 그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역민들의 소득 기회가 되는 청보리밭 축제는 성공했지만, 보리 소비가 감소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축제를 위해 팔리지 않는 보리 농사를 계속 지어야하는 지 회의감이 든다는 진영호 학원농장 대표.

그러나 진 대표는 요즘 보리의 경제성이 자꾸만 떨어져 고민이 많다. 축제는 축제일뿐, 수확한 보리를 판매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는데 턱없이 낮은 보리가격도 문제지만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 점이 더 걱정이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정부가 지원하는 보리경관직불금으로 보리 재배면적은 날로 늘어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6월 수확한 보리를 아직도 절반(1500가마니)이나 판매하지 못한 채 창고 쌓아두고 있다고 말한 진 대표는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한데, 축제를 위해 벌이도 시원찮은 보리농사를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결 방안으로 고안한 것이 ‘지리적표시제’이다. 보리협의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 진 대표는 고창보리가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되면 군납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 농가들이 단체를 만들어 공동 판매방식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속된 말로 이상기후로 인한 식량 파동이 오지 않는 한 보리 소비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에요. 올해의 경우 작년보다 보리 재배면적을 줄였는데도 대풍작으로 수확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농협은 계약물량 외에는 정상가격의 절반 값에 구매하겠다고 하지만 내년 신곡이 나올 때까지 판매해보고 남은 물량을 사료로 헐값에 넘길지라도 차마 그 가격엔 판매할 수 없더라구요.” 진 대표가 쓰라린 속마음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리를 대체하는 경관작물로 유채를 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진 대표의 표정에는 일류 경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짙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결론적으로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지속되려면 그 곳에서 생산되는 보리의 소비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보리도 살리고 경관도 살리는 합리적 방안을 찾는 일에 정부와 산학연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푸드아이콘과의 인터뷰에서 고창청보리밭을 경관농업으로 발전시킨 스토리와 애로사항을 털어놓은 진영호 학원농장 대표.
푸드아이콘과의 인터뷰에서 고창청보리밭을 경관농업으로 발전시킨 스토리와 애로사항을 털어놓은 진영호 학원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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