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름 식품기술사의 컴플라이언스 리포트] 제14화 "안전엔 문제없다는데, 왜 맛이 달라졌을까?"
[이아름 식품기술사의 컴플라이언스 리포트] 제14화 "안전엔 문제없다는데, 왜 맛이 달라졌을까?"
  • 이아름 식품기술사
  • 승인 2026.07.0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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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검사도, 레토르트 살균도 모두 '적합'
기록되지 않는 공백이 품질의 변화 일으켜

식품 제조 현장에서는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클레임이 있다.

미생물 검사 결과는 모두 '적합' 판정이고, 레토르트 살균 조건도 규정대로 맞췄으며, 생산 기록과 공정 일지를 다시 확인해 봐도 문제 될 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래처에서 "평소 제품이랑 맛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아주 난감하다.

안전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법적 기준을 벗어난 것도 아닌데 소비자는 분명히 이전과 다르다고 느낀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시작된 걸까.

살균은 '안전'을 만들지만,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

최근 한 제조 현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죽 제품을 파우치에 충전한 뒤 레토르트 살균기로 이동하기 전, 공정 사이 대기 구역에서 일부 제품이 예상보다 오래 실온에 머물렀다. 작업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발생한 일이었다.

이후 제품은 예정대로 레토르트 살균을 마쳤고 정상적으로 출하됐다. 검사 결과도 병원성 미생물이 검출되지 않았고, 일반세균수 역시 기준 이하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거래처에서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데, 예전 제품이랑 느낌이 다릅니다." 이 말이 어려운 이유는 숫자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현장에서는 종종 "어차피 마지막에 레토르트 살균을 하니까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생각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레토르트는 미생물을 사멸시키는 공정이지, 그 전에 발생한 품질 변화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공정은 아니다. 다시 말해 레토르트는 안전은 만들 수 있어도 품질까지 복원하지는 못한다.

품질은 '몇 분의 대기시간'에도 달라진다

죽처럼 수분 함량이 높은 식품은 생각보다 훨씬 민감하다.

조리 과정에서 이미 호화된 전분은 충전 후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분자 구조가 다시 배열되는 전분 노화(Retrogradation)가 시작된다.

여기에 공기와 접촉하면서 일어나는 산화 반응, 미세한 향 성분 변화까지 더해지면 제품의 맛과 향, 식감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위험'은 아니라는 점으로, 그래서 미생물 검사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는 검사표보다 먼저 입과 코로 그 차이를 느낀다.

HACCP은 CCP만 기록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최근 Codex 식품위생 일반원칙(CXC 1-1969)이 강조하는 방향도 여기에 있다.

식품안전은 특정 공정 하나만 잘 관리한다고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식품사슬 전체가 끊김 없이 관리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종종 CCP만 잘 관리하면 HACCP도 잘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CCP는 매우 중요하지만 HACCP의 중심이 CCP 하나만은 아니다.

그 앞뒤를 받쳐주는 선행요건관리(GHP)가 흔들리면, CCP가 아무리 완벽하게 관리돼도 최종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반제품이 예상보다 오래 대기하는 일 △작업자 교대 과정에서 관리가 잠시 끊기는 일 △원료나 반제품이 계획보다 오래 실온에 노출되는 일 △이동과 보관 과정이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 등의 상황은 당장 미생물 기준을 벗어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제품의 '결'은 바로 이런 작은 틈에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소비자는 성적서보다 '평소와 다른 맛'을 먼저 느낀다

이번 사례를 검토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레토르트 공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CCP 기록도 정상이었다. 기록만 보면 HACCP 시스템은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완벽한 공정 앞뒤에 있었던 몇 분의 공백이 결과를 바꿔놓았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클레임은 거창한 설비 고장 때문이 아니다. △작업자가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반제품이 잠깐 대기했던 시간 등 누구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 짧은 공백이 품질을 바꿔놓는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기록되지 않는 공백'이라고 부른다.

식품안전은 법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일이다. 반면 품질은 소비자가 언제 먹어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소비자는 성적서를 보고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은 먼저 "평소 먹던 맛과 조금 다르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결국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결정한다.

결국 식품안전과 품질은 누군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그 느슨한 순간, 기록되지 않는 몇 분의 공백에서 가장 쉽게 흔들린다.

이아름 식품기술사는...
국내 식품 연구소에서 15년 이상 국내외 유통사 및 제조사를 대상으로 식품안전 시스템 구축·적용, 컨설팅, Audit(FSSC22000, HACCP) 및 교육 업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는 식품 안전·법규·인증 기준을 중심으로 외식업과 식품 제조업 현장을 연결하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실무 기준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저서 『음식점과 제조업을 지켜주는 단 한 권의 가이드』를 통해 창업 및 운영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정리했으며, 프랜차이즈 업태별 식품안전 관리 주체와 법·제도 보완 필요성을 분석한 논문 “The Korean food franchise industry: Diverse development and conceptual definitions of a food safety managing body”를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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