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그 맛, '제주통닭'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그 맛, '제주통닭'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6.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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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득세에도 살아남는 통닭집의 비결은 오래전 먹었던 그 맛
백종원 지목한 ‘동우닭집’ ‘백양닭집’에 필자 선정 '나주닭집'도 선전

전도 유망한 경상 계열의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졸업하자마자 주위의 기대를 안고 창업에 도전해 주목받는 CEO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못가 반짝했던 인기가 사그라들더니 매출이 급락, 결국 부도를 맞게 된다. 너무 젊은 나이에 맛 본 성공과 곧이은 나락은 그에게 씁쓸한 인생의 교훈을 주었고, 그는 청운의 꿈을 포기한채 지극히 현실적인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재창업에 나선 것은 다름아닌 치킨집.

나이에 맞지 않게 매사에 깊은 철학적 사고를 하던 인문학 계열의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쓰는 글마다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 학생은 누가봐도 훌륭한 작가가 될 것이었다. 여기저기 신춘문예에 응모해 상을 받기도 몇차례. 하지만 프로 작가는 배가 고팠다. 얼어붙은 출판시장에서 그의 책은 주목받지 못했고, 지자체에서 개설한 글쓰기 강사로 몇 차례 뛰어보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안정된 소득이 필요했고, 결국 호구지책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치킨집.

천재적인 머리로 일찍부터 공학 계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벤처기업에 들어가 수많은 인기 아이템을 상품화에 성공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유명세만큼이나 그는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다. 곧이어 인생에 회의가 몰려왔다. 돈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이렇게 사는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고민했다. 결국 그는 삶의 의미가 우선이고 건강이 먼저라는 생각에 회사를 나왔고 좀 더 자유로운 직업을 고민했다. 그의 선택은 역시나 치킨집.

‘한국 학생들의 진로-치킨트리(chicken tree)’_JTBC 방송 갈무리

우스개 이야기 중 ‘한국 학생들의 진로’라는 것에 나오는 소위 ‘치킨트리(chicken tree)’를 각색해봤다. 이 치킨트리가 풍자하고자 하는 속깊은 이야기는 따로 있겠으나 다른 이야기는 다 내려놓고서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에는 그만큼 치킨집이 많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으로 제일 먼저 떠올려보는 업종이 치킨 프랜차이즈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일반화됐다. 그래서 누군가는 ‘치킨을 많이 먹어서 치킨집이 많은 것인지, 치킨집이 많아 치킨을 많이 먹게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어쨌든 치킨집이 많아지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치킨에 대한 정보도, 치킨을 맛보는 미각도 다들 수준급이 됐다. 어설픈 맛을 냈다가는 쫄딱 망하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실력에 자신없는 이들은 어느정도 안정된 레시피와 식재료가 확보되면서도 홍보 밑바탕이 깔려있는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을 선호하게 된다.

치킨 프랜차이즈가 늘어날수록 일반 소비자들은 프랜차이즈 치킨에 입맛이 길들여져 오래된 동네 통닭집은 설 자리를 잃어만 간다. 그래서 치킨집은 그렇게도 많은데 프랜차이즈가 아닌 통닭집은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은 현실이 됐다.

하지만 아직 제주에는 오래된 통닭집들이 많이 있다. 이들에게서 세련된 서비스나 양념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상상도 못할 ‘배달 안되는 치킨집’조차 존재한다. 그런데 당당히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다. 아니 심지어 장사도 잘 된다.

예전에는 ‘치킨’이라는 말보다는 ‘통닭’이라는 말이 더 통용됐다. 온도가 적당히 오른 기름에 모가지와 발목을 쳐내고 내장을 발라낸 닭한마리를 통째로 넣으면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자글자글 튀겨지는 기름 소리와 냄새가 그렇게도 좋았다. 중간에 통닭집 아저씨가 기다란 집게로 닭을 건져내 속속들이 잘익으라고 중간중간 칼집을 내고는 끓는 기름에 넣어 다시 휘휘 저을 땐 목으로 침이 절로 넘어가면서 더 기다려야함에 애가 탔다. 다 튀겨져 큼지막한 통나무 도마 위에 건져진 닭은 뭉툭하니 세모꼴에 가까운 칼로 힘껏 내리쳐지면 예닐곱 조각으로 금방 쪼개졌다. 아직 식지 않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통닭 조각들을 종이 봉투에 쓱 넣고 치킨무와 소금을 넣어주면 종이봉투 밖으로 기름이 살짝 배어나왔다. 그 통닭 냄새를 맡으며 집까지 가야하는 길은 참 행복하지만 괴로운 머나먼 길이기도했다.

제주엔 아직도 그런 오래된 통닭집들이 있다. 아주 오래전 먹었던 추억의 그 맛! 그게 바로 제주 통닭집들의 생존 비결이다. 특히나 입맛이 보수적인 어르신들이 과연 우둘투둘 두꺼운 튀김옷이 입혀진 패스트푸드점 치킨이나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을 얼마나 거부감없이 받아들일수 있을까. 게다가 온갖 화려한 인테리어와 영어로 멋들어지게 꾸며진 휘황찬란한 간판들은 어르신들눈엔 ‘쓸데없이 비싼집’ ‘젊은애들이나 가는집’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어릴 때부터 먹어왔던 시장 통닭을 ‘K’ 패스트푸드점에 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땐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신기했다. 알고보면 치킨의 원조격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시장 통닭으로 각인된 치킨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했을까. 패스트푸드점 치킨의 두꺼운 튀김옷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않아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았다. 하물며 연령대가 높은 어르신들은 오죽했을까?

백종원 씨가 제주도 3대 치킨집을 소개하면서 도남동의 ‘동우닭집’과 서문시장의 ‘백양닭집’을 지목한 바 있다.-실로 제주에서도 백종원 씨의 맛집 평가 영향력은 무시할 수가 없다. 다 망해가던 식당이 백종원 씨 말한마디로 대박맞은 경우를 여럿 보았다. 하지만 과신은 금물이다. 입맛은 원래 개인의 취향이므로 실제 먹어본 후기들은 다 제각각이다-그럼 세 번째 치킨집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나주닭집 치킨
(출처_나주닭집 삼도점 인스타그램)

여기엔 여러 주장들이 설왕설래한다. 그러나 나보고 꼽으라면 제주시내 보성시장에 있는 ‘나주닭집’을 꼽겠다. 제주에서 웬 나주닭집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1982년부터 보성시장에 터를 잡은 오래된 제주의 닭집이다. 그 오랜시간동안 시장통닭 고유의 맛을 잘 지켜왔다. 무엇보다도 식감에 있어선 딱 옛날 통닭 그 맛이다. 물론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옛날 그대로의 맛만 고수할 수는 없었겠다. 보통은 닭고기를 후추가 섞인 소금에 찍어먹지만 이 나주닭집 통닭엔 아예 조미가 되어있어 짭짜롬하니 맛있다. 오랜 노하우의 결과물이겠다.

나주닭집의 통닭 맛은 가까이는 우리 식구들에게서도 이미 검증을 받았고, 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 연말행사에서 단체주문 음식으로 100여명에 달하는 학교 식구들이 한결같이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행사시간이 길어져 어느정도 식어버린 치킨이었음에도 말이다. 특히나 먹거리에 민감한 대안학교 학부모들이 칭찬을 했다면 대단한 검증을 거친 셈이다. 나주닭집은 단체주문에 인기 단골집이다.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큰 행사에 나주닭집 치킨이 동원된 적이 있다. -나주닭집 통닭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밖에 풀어나가지 못하는 필력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동우닭집과 백양닭집과는 달리 나주닭집은 그래서 지점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전에 살던 서귀포시 남원에선 ‘중앙닭집’이 유명했다. 미리 전화로 주문하고 직접 찾아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남원의 그 많은 프랜차이즈 치킨집 사이에서도 ‘중앙닭집’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 집 치킨은 봉지를 여는 순간 풍성함에 우선 놀라게 된다. 왜그런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킨 사이사이에 감자튀김이나 야채튀김을 섞어 넣어놓았다. 센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몇몇 다른 치킨집들도 이 중앙닭집의 아이디어를 따라하는 곳이 많다. 단순히 가장 오래된 남원의 치킨집이 아니라 원조집으로서 맛을 선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표선 제주닭집. 바로 옆집도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다.
표선 제주닭집. 바로 옆집도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다.

표선엔 '제주닭집'이 유명하다. 표선엔 정말 치킨집이 많다. 심지어 제주닭집 바로 옆집도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다. 그런데도 늘 닭튀기는 냄새가 끊이질 않는다. 내가 일하는 곳에선 야근할 때나 저녁에 행사가 있어서 간단히 요기를 해야할땐 이 집 통닭을 자주 시켜 먹었다며 처음 이 집을 소개받았다. 제주닭집은 ‘35년 전통’이라고 쓰여있는데 올해도 ‘35년 전통’이요 작년에도 ‘35년 전통’이니, 아마도 35년 훨씬 웃도는 역사를 가진 것 같다. 결국 제주닭집은 표선에서 함덕으로까지 진출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제주의 음식을 소개하면서 ‘치킨’까지 다루게됐다. ‘치킨’이 제주고유의 음식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그 답을 알고싶다면 일단 한 번 제주에서 오래된 통닭집 치킨부터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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