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따질 수 없는 삶을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복잡다단한 도시생활을 접고 제주에 내려오는 사람들은 우선 전원생활을 꿈꾼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귀농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 때 나도 귀농의 꿈을 품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제주에서 귤 농사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하다보니 글이 좀 무거워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우리 농업의 현실이다.
그러면 농업에서의 성공 사례는 없는가?
답은 '있다'이다.
처음 제주에 와서 남원의 아파트에 이사를 하자 유독 살갑게 먼저 다가와 주시던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파트 동대표 회장이었다. 이 분은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눠주기도 하고 친절히 동네 사정도 말씀해주시고, 어쨌든 제주에 아무 연고가 없던 우리에겐 아주 고마운 분이었다. 이 분 역시 제주 이주민이었다. 제주에 온 지 벌써 20여년 쯤 되셨단다.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제주에서 웬만한 마을 분들을 다 알고, 이젠 아파트 동대표 회장까지 맡을 정도니 평소 인간관계나 인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다.
이 분은 하우스 농삿일을 했다. 주로 딸기 농사를 짓는데 아내에게 딸기밭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몇 번 권하기도 했다.-제주에선 딸기농장이 은근히 많다. 하우스 딸기는 1월부터도 맛볼 수 있다.- 이 분도 제주에 처음왔을 때 제일 큰 고민이 일자리였다면서 본인이 고생한 만큼 이젠 이주민들의 정착을 도울 겸 주위 이주민들에게 자기 밭에서 일해보라고 적극 권한다. 그래서 많은 이주민들이 이 분 밭을 거쳐갔다. 일을 떠나 사람도 사귈 겸 농장에 가서 일해보는 건 좋은 경험일 것 같았다. 다만 제주 이주 초기라 아이들이 집에서 홈스쿨 아닌 홈스테이(?)를 하고 있던 터라 실제 아내가 일해보는 기회로까진 연결되지 못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젠 제주에서 농사로 어엿하게 자리를 잡은 그 분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런데 이분의 일하시는 걸 보면 새벽 일찍부터 농장엘 나가신다. 나 역시 새벽시간에 출근을 하다보니 이 분과 자주 마주쳤다. 그리고는 저녁시간에 내가 퇴근할 때쯤이면 아주머니도 농장에서 막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다. 어쩔땐 훨씬 밤늦게 돌아오시는 적도 있고... 그러니 일반 직장인과 동일하게 출근했다 퇴근하는 것인데 그렇게 일반 직장인보다 일을 더 많이 하면서도 수입은...?

사실, 그걸 계산하기 시작하면 농사를 아예 지을 수가 없다. 훨씬 덜 힘들면서도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 많다. 가끔 새벽에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칠 때면 아주머니는 제주시의 큰 병원에 진찰받으러 가신다고 했다. 고된 일 하다보면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며, 얼른 새벽차 타고 병원갔다가 돌아와 밭에 또 나가봐야 한단다.
농사로 어느정도 먹고살만하다는 분들의 삶이 보통 이런 패턴일 것 같다. 하지만 이 분은 누구보다도 제주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무언가가 이 분의 삶에 분명 있는 것이다. 그것이 늘 존경스러웠다.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