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일자리 구하기(취업편 2)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일자리 구하기(취업편 2)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6.1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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괸당문화 안에 들어가려면 제주사람들에게 겸손한 모습으로 다가가는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사업주가 노동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든지 아니면 이에 대한 인식을 최소한 어느 정도는 갖고 있어야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섣부른 겸손으로 소위 호구잡힐 수도 있는 노릇이다. 아무래도 근로계약서나 노동권을 보호받기 위한 장치가 취약한 곳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나 도회적인 업무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영세한 규모의 사업장이나 소규모 점포들에서는 원래 합의된 업무 이외의 것을 ‘인정(人情)’으로 은근슬쩍 맡기는 경우도 많고,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일부 사업장의 경우는 무슨 노예 부리듯 일을 시키는 곳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런 ‘갑질’들이 어디 제주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던가?

그러함에도 이런 주의사항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런저런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육지에서의 경력이 제주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직이나 기술직이 아니라 사무직 계열의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은 제주에서 자기 경력을 살릴 기회가 적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문 직종에 속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이민가서 세탁소나 주유소에서 일하거나 식당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상황을 이해하면 된다. 오죽하면 제주도는 ‘한국말하는 외국’이라 하겠나.

전문 직종이라 해도 제주의 괸당 속에 들어가지 못하면 불러주는데가 없어서 그 직업으로 생계 유지엔 어려움을 겪는다. 기술직이라 해도 그렇다. 제주 이주민들의 경험담을 쓴 책을 이주 초기에 읽었는데 그 책에 나온 한 이주민은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던 제주의 상황을 파악하고 크레인 같은 중장비 면허를 따 제주로 이주했다. 하지만 인맥이 없어 한동안 불러주는 사람이 없더라는 사연이었다.

제주 일자리들은 관광산업 비중이 크다. 육지와는 산업 구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직장을 구하더라도 주 5일 근무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빨간날은 다 쉬는 그런 직장은 거의 드물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쉬는 직업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제주에서는 관광관련 산업이 큰 축을 이루기 때문에 남들 쉴 때가 반대로 가장 바쁜 대목이다.

나는 급하게 제주에서 직장을 구하는 입장이어서 사실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무의식에 숨어있던 마지노선이라는게 작동을 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철저한 주 5일 보장에 빨간날 다 쉬고 출퇴근 시간이 정확한 직장을 얻었다.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쉼이 제주에서 원하던 바였다. 머리를 쓰기보단 차라리 몸을 쓰는 단순한 일도 마음에 들었다. 그간의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이런 일이 필요했다. 단순한 일인 만큼 책임 소재가 최소한에 국한됐다. 그동안 과도한 책임감으로 인한 심적 압박감 역시 몸을 지치게 했다.

비록 비정규직이긴 하나 제도적으로 노동기본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시스템도 마음에 들었다. 과거에 난 직장에서 월급도 떼인 적이 있다. 월급날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채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을 졸인 적이 있다. 최소한 지금 직장은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는 마음 편한 일터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켰다. 비정규직인데다 월급도 줄었고 내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진 않지만 갑작스럽게 제주로 이주하면서 급히 구한 일자리로는 이만한 게 없지 않나 싶다.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까지 그 일을 할거냐고.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사람 일은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니.

하지만 난 제주에서 이만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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