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일자리 구하기(자영업 편 3)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일자리 구하기(자영업 편 3)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6.0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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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이라는게 내적인 경영 문제도 있지만, 생각지도 않은 외풍이 한번 크게 불어 닥치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늘 위험성이 큰 것 같다.

아주 외풍에 제대로 타격을 받은 사례도 하나 소개해 볼까한다.

오래전부터 운영된 순대국집이 있었다. 제주에선 돼지고기 사랑이 다른 지역보다도 훨씬 유별나다. 그만큼 돼지고기 관련 음식이 흔하다. 그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순대국이다. 관광객들에겐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일매일 점심을 사먹어야 하는 지역 직장인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에겐 단골집으로 꽤 장사가 잘 되던 집이었다.

그 식당은 최근 젊은 아들에게 물려주었는데, 순대국의 맛을 내는 일은 여전히 그 어머니가 관리했기 때문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어머니의 건강이 예전만 못하면서 가게에 나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어머니와 달리 넓은 세상을 경험했던 아들은 과연 이 순대국집을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순대국집에서 함께 일하던 아내가 임신을 했고, 입덧을 시작하면서 순대국 냄새를 지독히도 싫어했다. 순대국 앞에서 ‘욱욱’거리는 아내를 보며 드디어 젊은 사장은 결단을 내렸다. 가게를 팔고 좀 더 목이 좋은 면소재지에 새로 가게를 얻어 깔끔한 업종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나름 치밀한 상권 분석을 거쳐 새로낸 가게는 핫 아이템으로 손꼽히던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점이었다.

우중충하고 찌든 때와 순대국 냄새가 절은 오래된 순대국집에 비해 카스테라 가게는 현대적이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가게 오픈 초기엔 순대국집 단골들이 일부러 찾아와 매상을 올려주기도 했다. 단체 주문도 있었고 워낙 인기 아이템이라 기본 매출은 가볍게 유지했다. 순대국 한그릇 팔면 7000원, 카스테라도 하나에 7000원이었으니 순대국 한 그릇을 카스테라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매출은 곧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스테라는 한 번 쯤 호기심에 먹어봄직한 아이템이지만, 평소에 자주 즐겨먹기엔 쉽게 질리고 목이 메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찾을 맛은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이나 대만 관광객의 수요를 노려보기도 했으나 외국 관광객들이 전세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데다 나중엔 사드 여파로 중국 손님이 서서히 제주도에 발길을 끊으면서 더더욱 어려움이 가중됐다.

설상가상으로 계란이 부족해 또 한번 난리를 겪기도 했다. AI 여파로 닭을 대량 살처분하면서 시중에 출하되는 계란이 턱없이 부족해진 탓이다. 계란값이 뛰면서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카스테라는 만들 때마다 적자였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때까지는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만들어야 했다. 때마침 빵집들이 카스테라 만들기를 중단한다니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삼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먹거리-X파일’로 인해 결정타를 맞은 것이다. 같은 업종의 프랜차이즈의 일부 체인점에서, 천연재료가 아닌 다른 재료를 쓴 것인데 불똥이 튀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졌다. 그나마 간간이 이어지던 손님들의 발길이 아예 뚝 끊겼다.

조금만 더 버티면 파장이 가라앉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매출은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대만카스테라 붐은 그걸로 끝나버린 것이다. 카스테라 체인점을 오픈한지 불과 6개월도 안돼 벌어진 일이다.

크게 좌절했지만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임대해놓은 가게 월세가 계속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기도 눈에 밟혔다. 그래서 얼른 가게를 뜯어내고 급히 서둘러 새로운 업종으로 갈아탄게 인형뽑기 방이다. 20여년 전에 유행하던 것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몇 번 다시 등장하더니 복고붐을 타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카스테라 가게엔 이제 다양한 인형뽑기 기계가 10여대 들어섰다. 이거야말로 잘되면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벌 수가 있는 거였다. 하지만 도시 분위기와는 달리 제주에서, 그것도 시골이나 다름없는 면 소재지에서 인형 뽑기 방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다 한 두 사람 들어올 뿐...

그래도 지역에선 꽤나 유망하던 순대국집 아들은 그렇게 인생의 쓴맛을 잔뜩 본채 폭망의 사례로 주민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됐다.

대만카스테라 사태때 이보다 더 기가막힌 스토리를 온라인 뉴스를 통해 읽은 적이 있다. 그 분은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만두집을 차렸는데 만두소 사건이 터지면서 업종을 프라이드치킨으로 바꿨더니 걸핏하면 AI(조류독감)가 발생해 그마저 문을 닫고, 마지막으로 대만 카스테라 체인점 차렸더니 대만 카스테라 사건 터져 또다시... 기사를 읽는 내가 다 한숨이 나왔다.

살다보면 그렇게 지독히도 안풀리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온라인에서 꽤 웃픈(웃기면서 슬픈) 얘기로 회자되던 ‘파괴왕’같은 일 말이다. 손을 대는 족족 ‘마이너스의 손’이 되는... 우리 각자의 스토리에 이런 일들, 한번씩은 겪어봤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제주도까지 오게 되지 않았는가.

겪어보니 정말 어떻게 손써볼 방법이 없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쳐보는 수밖에.

물론 말처럼 쉽진 않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날도 날이 새면 해가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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