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살 집 찾아 삼만리(5)
[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살 집 찾아 삼만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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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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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이른바 살인진드기가 실제 발생된 지역이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왔을땐 정말 아무 생각없이 아이들이 풀밭에 뒹굴도록 내버려뒀지만 이젠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표선 동쪽으로는 성산읍이, 서쪽으로는 남원읍이 있다. 표선에서 일하기에 그 쪽에서 집을 구하면 제일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남원이나 성산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눈여겨봤다. 성산이야 일출봉이 있어 워낙 알려진 곳이지만 남원이라는 곳은 춘향의 고장으로 유명한 전북 남원만 알았지 제주의 남원은 생소했다. 그러니 성산에 집을 구하되 혹시 모르니 남원을 먼저 가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남원초등학교를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해 가봤다. 아무래도 집을 구한다면 학교 근처에 구해야 했기에 그렇게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남원에 도착한 순간, 그저 여기에 터를 잡아야겠다는 느낌이 확 와닿았다. ‘필(feel)이 꽂혔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싶다.

표선면사무소를 중심으로한 상가 밀집 지역과 남원읍사무소 인근의 상가 밀집 지역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표선은 상업지역이란 느낌이 강한 반면, 남원은 주택가 느낌이 강했다. 도로 폭이 똑같이 좁은데도 표선은 복잡하다는 느낌인 반면 남원은 넓고 여유롭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표선은 역동적이지만 남원은 차분한 느낌이었다. 어디까지나 중심가 기준이 그렇다는 것이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서귀포 지역은 다 여유롭고 조용하다.

아이를 키우기에도 살림집을 구하기에도 남원이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지극히 주관적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만 그랬던건 아닌 모양이다. 이곳이 제주의 귀촌 1번지라고 KBS TV ‘다큐3일’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 ‘다큐3일’을 이전에 보면서 ‘나도 저런 곳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지역이 ‘남원’이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작 남원에 자리를 잡은 지 며칠 지나서 이 다큐를 다시 다운받아 보고나서야 무릎을 탁 쳤다.

남원은 감귤농사로 유명하다. 제주 감귤 생산량의 24%를 차지할 정도다. 감귤농사가 아무리 수익이 악화됐다고는 하나, 벼농사나 다른 밭농사보다 노동력이 훨씬 덜 들면서 수익이 괜찮은 편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귀농하는 사람들은 제일먼저 감귤농사에 뛰어들고 자연스레 남원으로 오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또 남원은 해안 풍경이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는 별로 없어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는다. 그러니 조용한 생활환경을 꿈꾼 이주민들이 남원을 반기는 이유 중 하나이다.

상당히 도시화가 진행된 제주시 쪽과는 달리 아직 제주 고유의 풍경이 많이 남아있는데다 유명한 지역도 아닌 농업중심의 마을이니 상대적으로 집값도 저렴하겠다는 기대 심리도 한몫 했을거라 본다. 실제로는 그리 싸지 않은 편이다.

몇 집을 둘러보느라 지치기도 했거니와 일단 동네가 마음에 드니 집은 웬만하면 그냥 계약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이주민이라고 밝힌 남원의 부동산 중개인은 처음 이주해 집을 구하는 거라면 일단 아파트로 들어가는게 낫다고 귀뜸했다. 현재 갖고 있는 물건이 아파트 하나 밖에 없어서 그러는가 싶어 크게 신뢰는 안갔지만, 말을 들어보니 전혀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분 말씀에 따르면 아파트를 추천하는 첫 번째 이유로는 도시민이 제주로 이주해 살기엔 일반주택의 불편함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제주의 오래된 구옥들은 화장실이 집 밖에 있다든지 -현재 살고 있는 집도 화장실이 밖에 있다.-웃풍이 세다든지 하는 것 등이다.

둘째로 벌레나 뱀 같은 야생 동물이 들어오는게 생각 외로 큰 스트레스라고 했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며 생태 친화적인 삶을 대안학교서 가르쳐 온 입장에서도 제주의 벌레들과 동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여름 밤, 종류도 다양한 온갖 나방과 날파리들, 모기와 파리들은 문여닫을때의 민첩한 몸놀림에도 불구하고 늘 사람보다 한 발 빨랐다. 여기에다 크기도 각기 다른 딱정벌레류들과 각종 하늘소 종류들도 출현한다. 정말이지 아이들 관찰용으로 사육장 속의 장수하늘소만 봤지, 그걸 지금 살고있는 집 마당에서 발견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방충망을 새것으로 정비하고 틈이란 틈은 모두 막아보지만 이 날아다니는 벌레들의 틈새공략은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다.

비가 오는 날이나 습도가 높은 날이면 벽에 민달팽이가 꼭 서너마리 붙어 기어 올라오는데, 한번은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화장실 가려다가 미처 벽으로 기어 올라가지 못한 달팽이를 미끄덩! 밟아버리고 말았을 때의 그 느낌이란... 처참하게 뭉개진 달팽이를 치울 때의 느낌이 아침부터 과히 좋진 않았다.

여기까진 그래도 애교로 충분히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귤 밭 사이나 초지 한 가운데 있는 집들은 뱀도 들어온다. 뱀이 육지에선 혐오 동물이지만 제주에선 민간 토속신앙의 대상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뱀이 나오더라도 잡지를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뱀이 많다. 오래된 집들에는 아예 터를 잡고 눌러앉은 구렁이들도 적지 않다. 원래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들 중, 변소를 지키는 ‘측신’ 부엌을 지키는 ‘조앙신’ 등과 함께, 집안에 사는 구렁이나 뱀, 두꺼비 등을 ‘업신’이라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집을 나가면 그 집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제주도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신성시해왔다.

◇ 도마뱀이 집에서 발견됐을 땐 머리가 순간 하얘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선 뱀까지는 아니지만 집 본건물과 화장실 가는 사이에 도마뱀이 자주 출몰한다. 제주도에서 도마뱀은 정말 흔하다. 현대식 건물인 은행안에 도마뱀이 들어와 유유히 기어다니는 걸 본 적도 있다. 아직까지도 어떤 경로로 도마뱀이 은행 한가운데 들어오게 됐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어쨌든 도마뱀이 은행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면 그 경로를 타고 뱀도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도마뱀이 집에서 발견됐을 땐 머리가 순간 하얘졌다.

뱀은 몰라도 지네는 수시로 집 안에 나타난다. 지네 역시 침입 경로를 알 수가 없다. 한번은 욕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걸 보기는 했다. 약제상들에서 파는 그 정도 크기의 지네는 아니더라도 족히 10㎝는 넘는게 종종 집안에서 발견된다. 심지어 지네에 물리기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서 편안하게 불끄고 TV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다리가 가렵길래 무심코 긁었다가 갑작스레 톡쏘는 통증과 함께 얼얼한 느낌이... 오래전 경주에서 민박집에 묵었다가 잠결에 목이 간지러워 손으로 긁었다가 똑같은 통증을 경험했는데 그때도 알고보니 목을 간지럽혔던 것은 다름아닌 지네였다.

이번에도 급히 불을 켜고 살펴보니 새끼 지네 한 마리가 유유히 이불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예측불허의 지네 출몰에 심리적 공포감은 상당했다. 결국 다음날 약국에서 지네약을 사다가 집을 빙 둘러서 다 살포했지만 요즘도 심심치않게 출몰한다.

뱀도 지네도 위험하지만 제주도는 또 살인진드기가 실제 발생된 지역이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왔을 땐 정말 아무 생각없이 아이들이 풀밭에 뒹굴었지만 도처에 '진드기 조심' 팻말이나 현수막을 보고는 이젠 도저히 아이들을 방치할 수가 없다. 제주도는 말들이나 소들의 방목지가 많아 진드기를 방제하기엔 한계가 있고, 그만큼 진드기가 흔하다.

이러저러한 생각 끝에 제주에 정착할 첫 집으로 아파트를 결정했다. 20년이 훨씬 넘은 아파트였으나 이 집에서 한 10개월 정도를 살았다. 나중엔 단독주택으로 옮겨서 또한 10개월 가까이를 살았다. -현재는 제주시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자주하게 된 까닭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한다.

제주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본의아니게 지난번에는 지독한 습기와 곰팡이 이야기를, 그리고 이번엔 벌레와 뱀 등의 이야기를 했다.

제주는 낭만을 꿈꾸는 여행객에겐 판타지의 공간일 수 있겠지만 여기서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이주민에겐 매 순간순간 날 것(?)의 현실이 마주 다가온다.

거기엔 곰팡이도 나방도 뱀도 지네도 삶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아직까진 그런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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