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일자리 구하기(취업편 1)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일자리 구하기(취업편 1)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6.14 00: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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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임금 전국 최저 수준... 정규직 찾기도 어려워
역사적 상처가 낳은 '괸당'이 외지인 배타 문화 형성

제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데 있어서 귀농도 자영업도 쉽지 않다면 취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취업 역시 어렵다. 초기 자본도 없고 갑작스럽게 이주를 해야 했던 필자 역시 귀농이나 자영업은 애초부터 아예 엄두를 못냈다. 당연히 취업을 생각했고 육지에서의 일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이력서를 급히 이곳저곳 넣었다.

제주에서 취업을 하려면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게 있다. 그건 제주도의 평균임금이 전국 최저 수준이라는 것을. 2016년 4월 기준 고용노동부가 사업체 노동력을 조사한 결과를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근로자 1인당 임금이 428만9000원을 기록한 울산이 가장 많았고, 서울이 383만3000원, 충남 352만3000원, 전남 346만4000원 순이었다. 그런데 제주는 256만4000원으로 가장 낮았다. 전국 평균 임금 100을 기준으로 상대 임금 수준을 보면 제주도는 75.1%수준이었다.

수도권의 임금 수준을 생각하고 제주에 내려오면 상대적 박탈감이 클지도 모른다-임금은 낮은데 물가는 또 비싸다. 집값마저 오르니 제주의 정주(定住)여건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제주의 임금 수준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제주에는 큰 기업이 별로 없다. 물론 큰 기업들의 제주지사가 있지만 그런 것이야 다른 지역에도 다 있는 것이고,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조선소나 자동차공장 같은 대규모의 제조업이나 기업이 없다는 이야기다. 제주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기업 형태이거나 거의 자영업 수준이어서 인력을 소규모로 채용하는 수준이 대부분이니 정상적인 임금체계를 갖춘 곳도 많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는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본업을 구하는 사람보다는 부업형식으로 임시직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제주는 귤 농사같은 농업이나 바다에서 소득을 얻는 어업을 본업으로 생각하고, 계절적 요인 등으로 일시적으로 수입이 줄어들 때 잠깐씩 일당 형식으로 일해서 소득을 보전하는 이들이 많았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그것이 저임금 구조의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구직사이트에 제주 지역을 검색하면 거의 초임이 최저임금 수준인 곳이 대부분이요, 그나마도 비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무늬만 정규직인 일자리가 많다. 그런데 그나마도 이력서를 넣어보면 채용되기가 쉽지 않다.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인 문화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육지 것’에 대한 불신이 있다. 일단 육지 것들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는가에 대한 반감에다, 기껏 정을 주고 한 식구로 받아줘 봤자 얼마 있다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또 ‘육지 것’들은 제주의 지역 정서는 받아들이지 않은 채 도시적인 마인드로 자기 요구할 것만 깍쟁이같이 요구해서 부려먹기(?) 까다롭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니 제주사람들끼리는 자연스레 똘똘 뭉치게 되는데 그런 분위기를 ‘괸당’이라는 독특한 관계로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괸당’이란 말은 원래는 친족 같은 혈연관계를 뜻하는 말이었다 하는데, 제주라는 지역사회가 워낙 좁다보니 한다리 건너면 서로가 다 아는 관계로 얽혀있어 제주 특유의 혈연 및 지연관계를 뜻하는 말이 됐다.-제주는 아저씨, 아주머니라 부르지 않고 남녀구분하지 않고 모두 ‘삼촌’이라 부른다. 도시에서 호칭이 애매한 친분의 연장자 여성을 ‘이모’라 부르는 것의 원조 격이다.

제주가 이런 배타적이면서도 괸당으로 똘똘 뭉치게 된 까닭은 아무래도 제주의 깊은 역사적 상처와 관련이 있다. 제주사람들끼리라도 똘똘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필사적인 생존 본능이 이렇게 괸당으로 뭉치게 했고, 그것이 육지인들 시각에선 배타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제주는 삼다도(三多島)이기도 하지만 꼭 한데 붙여 삼무도(三無島)라 부르기도 한다. 대문이 없고(大門無), 도둑이 없고(盜無), 걸인이 없는(乞無) 이유는 와보니 바로 괸당 문화가 바탕이었다. 서로가 잘 알고 지내는 괸당 아래선 도저히 누가 구걸하고 다니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못해 자기 집에 끌고가 잡일이라도 시키고 밥을 줘 구걸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럴 정도로 서로가 끈끈하다.

이런 문화적 배경이 외지인들에겐 영락없이 배타적으로 보이겠으나 그래도 나는 이에 대해 깊은 이해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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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 2019-09-21 16:21:35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