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1)
[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1)
  • 류양희
  • 승인 2018.04.04 1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들어가는 말] 언론생활 35년동안 수 많은 선후배들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후배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생각이 바르고, 예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모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기 신념과 주관이 뚜렸한 그런 인격체입니다. 함께 일할 때는 큰 의지가 됐으며, 헤어질 때는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정말 마음이 아팠던 그런 후배입니다. 때문에 어디서든 그가 잘되기만을 바랐습니다. 함께 있을 때 그토록 소원하던 2세였는데, 지금은 토끼같은 아들 둘씩이나 얻고 네 식구가 알콩달콩 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그가 재작년 갑자기 제주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섬사람이 되었노라고. 부러웠습니다. 분명 우리나라 땅이지만 천혜의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은 사뭇 다르기에 여행자의 설레임을 느끼게하는 그 곳에서 일상을 보낸다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숨쉬기조차 힘든 회색도시의 답답함이 아닌 탁트인 푸르른 바다에서 솔솔 불어오는 싱그런 물비린내와 감귤향, 흰구름 두둥실 떠있는 파아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햇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야자수...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곳입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이방인과 같은 어색함으로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원주민들과 한덩어리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은 듯합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되었는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자신의 필력으로 담담히 풀어내고 있네요. 그래서 푸드아이콘은 그 후배에게 요청했습니다. 애독자와 더불어 제주도의 생활 깊숙이 들어가보길 원한다고....<편집자 주>

백척 길이의 장대가 위험천만하다고 한들 일단 밑둥이는 분명 땅에 붙어있긴 할텐데, 제주행 비행기는 백척보다도 더 높이 공중에 붕떠있으니 나의 제주행은 백척간두의 위험보다 어쩌면 더 큰 모험일수 있었다.

어릴 적 꿈은 자주 바뀌긴 하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꿈꿔본 장래희망은 목사, 기자, 시골 초등학교 교사, 이렇게 세 가지였다. 지금에 와서 삶의 궤적을 거꾸로 꿰맞춘 억지가 결코 아니다. 정말 그러했다. 자기의 꿈과는 별개로 ‘밥벌이의 지겨움’ 속에서 매일 매일을 버텨나가는 이들이 주변에 수두룩한데 난 무려 세 번씩이나 꿈, 그 언저리까지는 가봤으니 분명 행운아였다.

그런데 막상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늘 행복한 건 아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직업 가수가 되면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을 때조차 노래를 불러야 하듯이,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절대 직업으로 갖지 말라는 말도 있다.

욕망은 끝이 없어서 정작 갖고 싶은 걸 손에 쥐게 되더라도 그 기쁨은 순간일 뿐 결코 오래가지 못하더라는 걸 경험으로 충분히 알았다. 긍정적으로 보면 꿈의 성취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으나, 부정적으로 보면 부적응? 역마살? 그리 보일수도 있겠다.

그러니 금방 시들어버리고 마는 꿈보다는, 비록 꿈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을 하면서 나날이 보람과 열정이 더해지는 삶이라면 그건 단언컨대, 꿈의 성취보다도 훨씬 위대하다.

◇ 제주도 섭지코지

내 직업의 다이내믹 변천사와는 달리 난 지극히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원래가 체재 순응형이다. 그래서 어쩔 때보면 비겁하다 싶을 정도로 싸움을 피하는 쪽이다. 그런 내가 쉽사리 짐작조차 어려운 큰 폭의 직업변천사를 가지게 됐다. 게다가 체재 순응형인 나에게 어느덧 씌워진 반골기질과 쌈닭 이미지란...

내가 마음으로 의지하고 존경하는 목사님이 한분 계시다. 그분이, 당신의 성정도 그러하다면서 그 원인중 하나로 ‘서툶’을 지목하셨다.

나 같은 소시민이 정작 어느 때 화를 내고 어느 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평소엔 꾸역꾸역 억누르며 살다가 어느 순간, 객관적으로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일순간 ‘빵’하고 터져버린다는 거였다.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지 서툴다 못해 그 폭발력이란 대단한 것이어서 상황을 되돌릴 수 없을 만큼까지 가게 되고, 결국 지금까지의 노력과는 정반대의 평판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는 거였다.

어떤 드라마 대사 말마따나 나도 내 인생이 처음인데 왜 서툴지 않겠는가? 서툴기에 실수하지 않을까, 실패하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늘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천근같이 무거운 엉덩이는 늘 발목을 무겁게 잡고 늘어졌다. 살던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남들만큼이나 제주도를 꿈꿨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 내딛는다는 건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자칫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도 모를 크나큰 도박이었다. 그러니 내가 다시 새로 갖게 된 이 네 번째 꿈은 그렇게 늘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한 막연한 꿈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이, 내가 가장 원하지 않은 때에 내가 가장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내게 성큼 다가왔다.-내가 가장 바라던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순간, 내가 가장 원하던 방식으로 내게 다가왔더라면 난 또다시 이 꿈마저 금방 시들해져버렸을까?- 이번에도 바로 그 ‘서툶’이 문제였다고 해두자. 내가 원치 않았더라도 딛고 있던 기반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니 필사적인 생존본능으로 한 발 내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백척간두에 선 순간이었다.
<다음에 계속>

◇류양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