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어쩌다 미니멀라이프!
[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어쩌다 미니멀라이프!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5.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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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대학교에 재학 중인 예비 사제들의 생활을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는 기숙사 방을 자주 옮기도록 하는 규칙이었다. 그래야 자기 소유의 물건을 최소화할 수 있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무소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뜻하지 않게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또 제주로 오게 되면서 그리고 제주에서 잦은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의 길을 걷게 됐다.

육지에서 제주로 오는 것은 이사부터 만만치가 않다. 어느 정도 살림을 옮겨오려면 족히 300만원 안팎 소요된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제주 이사 전문업체가 따로 있다. 내가 아는 분은 제주로 이사하는데 아는 사람에게 아주 싸게 했는데도 380여만원 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육지에서도 보통 포장이사하려면 100만원은 훌쩍 넘기는데 제주까지 오는걸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보통이겠다싶다.

하지만 남들은 그렇다치고, 난 그만한 비용은 부담스러웠다. 또 그만한 돈을 들여 꼭 옮겨와야 할 값비싼 살림도 없었다. 살림이라곤 국내 최저가로 인터넷 쇼핑을 통해 구입한게 대부분이요, 그나마 유명상표가 들어간 살림들이라곤 ‘중고나라’에서 구입한 것들이라 본전을 이미 다 뽑고도 남은 것들이었다. 어차피 분가해야 하는 상황이라 웬만한 것은 다 두고 가고 제주에서 다시 중고로 사든, 국내 최저가로 사든 해야했다.

그래서 장롱, 냉장고, 세탁기, 서랍장같은 큰 살림들을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막상 포기하자니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얼마 안되는 것들이긴 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의미있고 정든 것들이라 감정의 미련이 많이 남았다.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거의 파산상태여서 혼수장만할 돈으로 빚갚느라 변변한 가구가 하나 없었다. 그래서 옷들은 행거에 걸고 작은 서랍장 하나로 버티다 1년이 훌쩍 지나서 한푼두푼 모아 장롱을 구입했더랬다. 방안가득 들어선 장롱을 며칠이고 어루만지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장롱을 여태껏 써왔다. 싸구려 장롱이라 장롱 뒤 고정목이 다 부러지고 시트지는 다 벗겨졌다. 그걸 손수 다시 새 시트지로 갈아 붙이면서 지금껏 써왔는데 그걸 버리자니 약간 센치해졌다.

나름 소중한 장롱도 포기하는 상황에서 더 아껴둘 다른 것들은 없을 줄 알았다.

미니멀라이프로 살다보니 집안 전체 분위기도 모던하고 심플한 세련된 
이미지보다는 뭔가 살림이 다 갖춰지지 않은 듯한 여백의 공간이 영 어설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무엇보다 아직까진 무척 괜찮다.

하지만 용돈 아껴가며 한권 한권 사들인 책들은 정말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몇차례 잦은 이사를 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버린 책들만 한 트럭이었다. 그러니 남은 책들은 선별하고 선별해 이젠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미 제주에서 출근하기 시작한 남편 대신 홀로 되돌아가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 아내로부터 책장을 찍은 사진과 함께 최후 통첩이 왔다. 아이들 책도 필요한 것 몇 권 빼고 다 버릴 예정이니 보낸 사진 잘 보고 알아서 판단할 것(?)을 종용하는 메시지였다.

무거운 책들을 일일이 박스에 담으며 혼자 이사를 준비하느라 잔뜩 심통이 나버린 사람에게 단 한권도 버릴 수 없단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동안 몸 담아왔던 대안교육 관련 서적들과 대안적인 삶의 지향을 내용으로 하는 책들은 다 버리기로 작정했다. 과거, 교회에서 전도사 직을 그만둘 때 그동안 모아왔던 설교 원고를 몽땅 내다버릴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아내는 짐들을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차에 가득 싣고는 파주에서 제주로 탁송시켰다. 차가 11인승이라 시트를 접으니 꽤 짐이 많이 실린 모양이다. 이튿날 제주도 집 앞에 도착한 차에서 그 박스를 또 일일이 꺼내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4층까지 올려다 놓았다. 바야흐로 몇 십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뉴스의 첫 화면에 등장하던 때였고 막 입주한 집에는 살림살이도 갖추어지지도 않은채 달랑 선풍기 한 대 놓여진 상황이었으니 박스하나 나르고 선풍기 앞에서 몇 분 쉬었다가, 또 한번 나르고 또 선풍기 앞에서 쉬었다가...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야 했다.

그 무거운 짐들을 싣고 파주에서 여수까지 쉼없이 달려, 다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해 한라산을 넘어오느라 차 계기판에는 이상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졌고, 난 그 무거운 짐을 올리느라 허리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설상가상으로 파주에 있던 아내의 심통 경고등이 들어왔다.

엄연한 이사였다. 더더군다나 제주로의 이사였다. 그걸 이사업체 도움없이 박스로 포장해 한번은 자동차에 실어보냈고 두 번은 택배로 운송해오고 나서야 이사가 대충 끝이났다. 여름철 그 수많은 박스들을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4층까지 올려다준 택배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넘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사람이 집에 없는 낮시간에 배달을 해주셨으니 오로지 택배아저씨 혼자 날라야했거니와 그것이 마음에 걸려 수고비를 따로 챙겨드리려고 전화로 연락을 했지만 한사코 사양하셨다

짐들은 하나둘씩 옮겨오기 시작했는데 정작 수납할 곳이 없어 박스채 집에 쌓아놓기만 했다. 중고로라도 장롱을 사려했는데 제주는 중고 가격이 육지 새 가구와 맞먹는다. 제주에서 유통되는 중고가구나 가전들은 거의 서울의 중고제품을 배송해 온 것이니 배송비와 중간 마진을 더하면 그 가격이 나오는 것이다.

당초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인터넷 구입도 쉽지가 않다. 제주도는 배송 예외 조건인 ‘제주도 및 일부 산간 도서지역’인 것이다. 대형가구는 제주도엔 배송불가다. 유일하게 인터넷 구입으로 배송 가능한 업체가 있긴한데 그러다보니 가격이 싼 편은 아닌데다가 최근에는 사내 성폭행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면서 불매운동이 진행돼 그나마도 온라인에서 쇼핑몰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결국 장롱은 포기하고 커텐으로 가릴 수 있는 대형 행거로 대신했다. 어쩌면 이게 더 나은 방법인 것이, 습도 높은 제주도의 곰팡이로 장롱이 애물단지가 되는 것보다 통풍이 잘되고 옷도 많이 걸 수 있는 행거가 훨씬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냉장고와 세탁기는 역시 국내 최저가로 인터넷에서 구입했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굳이 대용량으로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냉장고에 오래도록 먹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식재료가 많았으니 이제 그러지 말고 그때그때 먹을만큼만 구입하자고 결심하고 적은 용량으로 구입했다. 세탁기도 빨래할 게 있으면 그때그때 자주하면 되니 역시 적은 용량을 택했다.

가스렌지도 육지에선 LNG용인데 여긴 LPG용이다. 부품하나 갈면 된다지만 실제로 부속을 갈아도 화력이 그다지 좋지않아 다시 구입해야 했다. 그런데 가스렌지가 미세먼지 문제 등 요리하는 이의 폐에 무리를 준다는 말들이 많아 아예 소형 전기 인덕션으로 바꾸었다.

그릇도 많이 필요없었다. 제주도에 살다보니 가끔씩 육지서 손님들이 올 때가 있지만 그 때 빼고 그릇이 부족하단 생각은 들었다. 생각보다 살림이 많이 줄었다.

물론 살아보니 불편함은 있다. 특히나 맞벌이라서 먹을거리를 한번에 많이 준비해야 하는데 늘 저장공간이 빠듯했다. 빨래도 어쩔 수없이 미뤄둘 때가 있게 되니 조금만 밀리면 작은 용량 세탁기로 몇 번을 나눠서 돌릴 때도 있다. 그릇이 적으니 바로바로 설거지를 해야 하고 전기 인덕션은 살림집이라기 보다 자취생 주방 같은 느낌을 준다.-나중에 가스렌지는 다시 집을 옮기면서 먼저 살던 사람이 두고간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집안 전체 분위기도 모던하고 심플한 세련된 이미지보다는 뭔가 살림이 다 갖춰지지 않은 듯한 여백의 공간이 영 어설퍼 보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미니멀라이프라는게 조금씩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삶이라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데 그 정도의 불편함은 그런대로 괜찮다. 좁은집 더 넓게 써서 좋고...

생각해보면 우린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짊어지고 산다.

자꾸 비워내는 삶을 살아야지...
무엇보다 아직까진 무척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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