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 일자리 구하기(농업편 2)
[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 일자리 구하기(농업편 2)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5.2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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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귤밭 천 평에서 연간 10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그러니 도시 근로자와 비슷하게 수입을 얻으려면 최소 3000평 농사는 지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순수입이 아니다. 총 매출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총 매출액에서 관리비용을 빼면 순수입은 정말 얼마되지 않는다.

관리비용 대부분은 인건비다. 우선 좋은 결실을 보려면 귤나무 가지를 자주 잘라주는 ‘전지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이 전지작업에 따라서 소출이 달라지고, 귤의 당도나 상품성에까지 영향을 준다. 초보 농사꾼이 무턱대고 달려들 수 없는 전문분야인 것이다. 최소 전지작업만 2~3년은 배워야 한다는게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그때까진 전지작업만 전문으로 해줄 사람을 불러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일당이 대략 20만원 정도다. 천 평 밭 전지작업에 달랑 한 사람만 부를 수도 없고 두세 사람 부르면 하룻만에 목돈이 나가게 된다. 귤 수확까지는 이런 전지작업을 몇 번은 더 해야 한다.

이 뿐 아니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다. 이건 예전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텃밭농사를 지어봐서 아주 잘 안다. 단 보름만 신경을 못써도 밭은 정글이 된다. 학교 텃밭 20평을 김매는데 아이들을 다 동원하고서도 헉헉거렸다. 천평이라고 하면 20평 밭의 50배다. 이걸 사람 안쓰고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주말을 이용해 부업 형식으로 귤농사를 지어보기로 한 것이기에 한 주만 놓쳐도 귤밭은 밀림이 될 것이었다.

이러니 노인이 대부분인 전업농들은 제초제를 안 뿌릴수 없는 노릇이다. 제초제를 안쓰려면 검은 비닐을 바닥에 깔아 풀의 생장을 막는 비닐 멀칭을 해야 한다. 하지만 멀칭은 땅속의 온도를 높여 이로운 벌레와 균을 죽이게 돼 장기적으로는 자연 순환에 해를 끼친다.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방법인 것이다. 타이벡감귤은 바닥에 흰색 천을 깔아 햇빛을 반사시켜 풀도 잡고 동시에 감귤의 당도를 높여 요사이 각광받게 된 농법인데, 과연 이러한 인위적인 기술을 어디까지 쓰고 어디까지 자제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구상이 잘 서질 않았다. 어쨌든 풀관리하는데도 까딱 잘못하면 인건비가 들어가게 생겼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비료나 농약을 전혀 안쓰는게 아니다. 친환경 비료가 따로 있고 친환경 농약도 있다. 이걸 또 시시때때로 구입해 뿌려야 한다. 이 역시 돈이 들어간다.

수확철에는 늘 일손이 모자란다. 귤은 한꺼번에 다 따는게 아니고, 하나하나 발육상태를 살펴보면서 부분적으로 딴다. 그러니 11~12월에는 내내 귤을 따는데, 이 작업에 많은 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제주도 내에서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공권과 숙식제공 조건으로 일당 인부 구인공고를 육지에 대대적으로 내기까지 한다. 이들의 일당이 최소 6만원에서 10만원은 족히 넘는다.

그렇게 저렇게 인건비를 들여가며 관행농으로 농사를 잘 지어봤자 천 평에 천 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니, 천 만원 중 절반은 관리비로 나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과연 상품성 있는 귤이 얼마나 생산할 수 있을까? 아무리 매출을 많이 잡아봤자 500만원 올리기도 힘들 것 같다. 그러니 까딱 잘못하다가는 본전도 못건지고 오히려 적자의 위험성마저 있었다. 귤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더 진전되지 못하고 그쯤에서 정리된 게 오히려 다행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남원에서 비교적 크게 귤농사를 짓는 집의 이야기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쉽게 지나치며 볼 수 있는 노지 귤밭은 대부분 적자라고 보면 된다. 귤이 너무 커도, 또 너무 작아도 상품성이 없다. 당도가 일정수준에 못미치면 제주 감귤의 퀄리티 유지를 위해서 아예 정식 출하를 하지 못한다. 그러니 넓은 밭에서 상품성있는 귤은 정말 얼마 안된다. 그나마도 이번 겨울처럼 한파와 폭설이 오래 지속되면 귤이 쓴맛을 내면서 상품성은 더 떨어진다.

상품성이 없는 것들은 ‘팟지(파지)’라고 해서 플라스틱 상자인 콘테나 기준 고작 몇 천원의 가격으로 가공공장으로 보내진다. 혹시라도 이 ‘팟지’를 온라인 등에 판매했다가는 단속을 받는다. 모두다 제주 감귤의 상품성 유지를 위한 방책인데, 어쨌든 귤철이 되면 늘 이 ‘팟지’가 몇 콘테나씩 우리집에도 쌓인다. 먹는데는 당연히 지장이 없고 맛도 전혀 나쁘지 않으나 여러 기준으로 상품성에 못미쳐 버려지는 귤들이 그만큼 많은 셈이다.

게다가 ‘해걸이’라고 해서 귤농사가 한 해는 잘 되지만 그 다음해는 수확량이 전해에 훨씬 못미치는 과정을 겪는다. 그렇게 되면 귤값은 비싸져 매출은 어떨지 모르나 소출은 거기서 더 줄어들게 된다.

이런 내막을 들춰보면 지금 우리가 시중에서 사먹는 귤값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귤값이 조금만 더 비싸지면 소비자들은 대체할만한 다른 과일을 찾게 되니 가격을 더 높일 수 없어 귤농사의 수익은 지속적으로 악화될 수 밖에 없다.

농민들은 그래서 궁리 끝에 귤을 개량하기 시작했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라봉은 청견+온주밀감류인데, 청견 역시 궁천조생 이라는 귤에 트로비타오렌지를 교배한 것이다. 온주밀감은 흔히 우리가 먹는 귤이고, 천혜향은 오렌지+밀감류이고, 레드향은 한라봉+온주밀감류, 황금향은 한라봉+천혜향이다.

한라봉은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지고 농사를 짓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익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는데 레드향, 천혜향, 황금향은 농가의 수익이 꽤 괜찮아 귤농사 전업농들은 이것에 집중하고 있다. 또 겨울의 대표적인 과일인 귤을 하우스에서 재배하면 귤 보기 힘든 6월경에 수확하게 되면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 하우스귤도 많이 재배를 한다.

◇마음껏 귤을 따가라는 말에 귤밭에 들어갔다가 잔소리만 잔뜩 들은 적이 있다. 귤을 잘못따면 가뜩이나 얼마 남지않은 상품성있는 귤들이 어이없이 망가지게 된다.

주변에 잘 아는 이주민들이 벌써 대출까지 받으며 귤밭을 구입한 경우가 꽤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진정 귀농을 하려거든 밭을 처음부터 소유해 전업농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일당을 받으며 농사를 배워보는 편이 일거양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마음껏 귤을 따가라는 말에 경험삼아 귤밭에 들어갔다가 잔소리만 잔뜩 들은 적이 있다. 귤을 따는 가위는 꼭지부분만 잘 따지도록 끝부분이 휘어져 있다. 일반 가위로 귤을 따다가는 귤 꼭지와 함께 귤껍질 표면에 가위자국이 나게 된다. 그러면 귤은 상처난 부위를 중심으로 금방 상하게 된다.

그렇다고 귤 꼭지를 길게 남겨두면 한데 모으는 과정에서 다른 귤에 상처가 난다. 역시 상처난 부위를 중심으로 귤이 급속도로 상하게 된다. 귤은 보관이 쉽지 않아 이런 세밀한 조심성이 필요하다.

귤을 딸 때 잘못하면 가뜩이나 얼마 남지않은 상품성있는 귤들이 어이없이 망가지게 된다. 그러니 귤밭에 처음 들어가게 되면 귤은 감히 따지 못하고 귤 콘테나 나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긴장한 채 하루종일 콘테나를 나르다보면 그 다음날 허리 통증으로 약값만 더 치르게되는 형국을 맞게 된다.

◇귤 꼭지를 길게 남겨두면 한데 모으는 과정에서 다른 귤에 상처가 난다. 그러면 상처난 부위를 중심으로 귤이 급속도로 상하게 된다.

일은 그렇게 배우는 것이다. 뭐든 순서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과정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비로소 길이 열리는 것이다. 작은 규모지만 귤 농사를 지어볼 기회가 살짝 스쳐지나가면서 ‘피땀어린 노력들과 고민의 결실’이라는 말의 깊이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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