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닭고기 이야기③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닭고기 이야기③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2.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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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닭 복원은 가금학의 대부 오봉국 박사가 주도
1994년부터 3년간 국립종축원 국립축산과학원 등과 진행

재래닭 복원 작업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우리나라 가금학의 대부 오당(梧堂) 오봉국(吳鳳國) 박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과학과 기술’ 509권에 실린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그의 삶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925년 평남 진남포 출생인 그는 지금의 중국 선양인 만주 봉천의 동광중학으로 유학을 가, 1945년 2월에는 국립봉천농업대학에 진학을 하게 된다. 해방이 되면서 지금의 서울대학교 농대 전신인 수원농림전문학교로 편입학을 하는데, 이때 아버지의 권유로 홀홀단신 월남한 그는 수원에서 찹쌀떡장수, 쌀장수, 막노동 등을 하며 고학을 했다.

6.25 전쟁 직후엔 서울대학교 축산학과대학원에 진학해, 이때부터 가금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그를 향해 “이름에 ‘새 봉(鳳)’자가 들어있어서 닭과 인연이 맺어졌다”고 우스개 소리를 던졌다. 때마침 정부가 마련한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미네소타대학 가금학과 대학원에 유학하면서 가금육종학, 가금영양학 등 본격적인 가금학 공부에 돌입하게 된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란 전후(戰後) 미국정부와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하면서 당시 이승만 정부가 한국에 실험용원자로 1기를 건설해 줄 것과 우리 과학기술자들을 미국에서 재교육시켜줄 것 등을 요구해 그 방안으로 서울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 간 맺은 학술교류 협력을 말한다.

1957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가금육종학으로 석사학위를 마친 후, 그는 중국에서 목화씨를 붓뚜껑에 몰래 숨겨 들어왔던 고려의 문익점을 떠올렸다. ‘미국의 우수한 재래닭을 얻어가지고 귀국해 우리나라 닭을 개량하자’는 생각이 났던 것.

그는 “전쟁 중에 눈에 보이는 가축은 모두 잡아먹어 닭고기는 차치하고 계란 구경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UN원조기관의 도움을 받아 가축 복구사업이 시작돼, 닭은 1952년 미국에서 약 21만개의 달걀을 원조 받고 이후 병아리를 수입하는 등으로 겨우 양계가 복구되던 때였다.

오 박사가 석사학위를 마치던 당시 미네소타대학에는 미국의 재래종으로 종자보존용 씨닭인 ‘화이트 레그혼’, ‘뉴 햄프셔’, ‘화이트 플리모스록’이 있었다. 오 박사는 지도교수와 학과장에게 부탁해 미국 경제원조기관인 ICA 도움을 요청, 자국의 종자 유출을 꺼리던 미국 정부를 설득해 종란 1300개를 서울대학교 농대 농과학실험목장에 도입하게 됐다.

오 박사는 이때 들여온 종란으로 실용적인 개량종 닭 ‘하이브리드 햄프혼’을 탄생시켜 우리 양계업과 달걀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오 박사는 이와함께 ‘새로운 양계’라는 가금서를 저술해 양계농가에 보급하고 매월 양계강습회를 여는 등 미국식 양계 기술 보급에도 앞장섰다. 그는 이후에도 가금연구회를 조직해 닭의 개량연구를 이끌어 갔고, 새로운 미국식 집단양계기술과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교육도 시작하는 등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선도해 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40여년이 흐르고나니 우리 농촌에는 외국산 수입종과 개량종 닭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재래닭은 멸종상태나 다름없게 됐다. 그러자 이번엔 우리 닭의 종자보존과 국민들의 기호에 알맞은 우리나라 재래닭의 복원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오 박사는 1993년 당시 허신행 농림부 장관을 찾아가 이 문제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1994년부터 농촌진흥청 등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작업에 들어가게 된다.(‘과학과 기술’ 과학원로에게 듣는다 33-오봉국 편 요약)]

오 박사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이미 1992년부터 농림부 산하 국립종축원과 농촌진흥청 산하 축산과학원 등 관련기관에서는 재래닭 복원에 대한 독자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통합돼 1997년까지 진행이 됐다.

오 박사의 제자인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한재용 교수는 그 지난한 과정을 이렇게 축약해 설명한바 있다.

“농학자들은 먼저 고문헌을 참고해 재래닭의 특징을 알아냈다. 그런 다음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러한 특징을 갖는 닭들을 수집하고, DNA 분석을 통해 외래종 유전자를 가진 닭들을 배제시키며 육종해 나갔다. 그 결과 맛과 성장속도, 생식능력, 색깔 등 재래닭 고유의 유전형질 9가지를 찾아내고 4종의 재래닭 원종계를 복원해냈다.(농민신문의 ‘서울대 농생대생이 들려주는 농학이야기⑶재래닭 복원’)”

월간양계 2010년 12월호에 실린 당시 국립축산과학원 가금과 농업연구관 강보석 박사의 <토종닭복원및‘우리맛닭’산업화>라는 글에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1992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집한 재래종 집단에 대하여 외모색에 따라 기초계군을 조성하였는데, 외모형태와 능력검정에 의하여 상대적으로 우수하거나 표현형이 고정되어 발현되는 개체를 선발하여 기초집단으로 조성해가면서 한 계통 내에서도 혈연관계가 형성되는 소그룹의 가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몇 세대 계속하여 반복하면 점차 순수성이 고정되면서 특정한 계통으로 성립되게 되며 최소한 7세대 간의 선발과 혈통번식을 통하여 하나의 계통이 육성된다고 볼 수 있다. 순계 1세대 유지에는 1계통당 암탉 800수, 수탉 200수 내외를 검정하여 30% 정도를 선발하며, 선발된 아비 1가계당 어미를 7마리 정도 배웅하는데, 이때 근친도가 상승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혈연을 고려하여 배웅시킨다. 선발은 체중, 시산일령, 산란수, 난중 등의 주요형질에 대하여 개체별로 조사한 검정성적을 기준으로 가계와 개체선발을 병행하고, 외모선발은 부화발생시, 육성기 및 배웅계 선발시기에 맞춰 계종별로 특징에 의거 선발한다.’

‘이렇게 재래닭 복원 프로젝트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4년간 대한양계협회에서 ‘재래닭육용화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 오봉국 박사의 진두지휘 하에 대학교수 16명, 연구관 8명 등 연인원 84명과 9억2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진행됐으며, 11개의 과제를 수행해 마침내 재래닭 순계 복원에 성공하였다.(월간양계 2009. 9월호 –실용화에 접어든‘우리맛닭’)’

하지만 재래닭을 복원했다고해서 바로 실용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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