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살 집 찾아 삼만리(4)
[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살 집 찾아 삼만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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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2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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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전통가옥은 그 시대 육지의 가옥들이 그러했듯, 흙으로 지은 집이어서 자연적인 습도조절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게다가 옛날에는 해안가가 아니라 바다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중산간에 집들을 지었으니 지금처럼 습도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았으리라.

가시리 집을 뒤로 하고 다시 표선에서 소개받은 집은 빌라였다. 제주에는 빌라같은 아파트도 많고, 아파트같은 빌라도 많다. 층수가 낮은데다가 주차장은 넓고 야자수가 운치있게 자라 있어 흡사 소규모 콘도형 리조트같은 느낌이다.

집주인이 개인이 아니어서 집주인의 갑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자잘한 집의 하자부분도 관리인에게 연락하면 사무적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구미가 좀 당겼다.

그런데 아차차... 현관 문을 연 순간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집의 벽면이 온통 곰팡이 투성이었던 것이다. 장마철에 빈 집 상태로 방치한데다가 세입자가 결정되기까지 도배를 미뤘기에 더더욱 그랬던 모양이다. 중개인도 민망했던지, 제주에서 이 정도는 아무일 아니라며 애써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제주에서 살아보니 정말 그랬다. 동네 생활용품 할인점 ‘무지개마트’ 사장님도 이주민인데, 제주도 내려올 때 이사비용 아끼려고 살림을 대거 내다버린 것 중에 제일 후회되는게 에어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예전에 일본으로 유학간 친구가 "일본은 에어컨 없이는 살기 힘든 나라"라고 말한게 기억났다. 제주도가 딱 그렇다. 여름철 평균온도는 대륙성 기후인 육지에 비해 해양성 기후인 제주가 수치적으로 높진 않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습도다. 온도가 아니라 습도 때문에 웬만한 작은 평수 용량의 에어컨으로는 감당하기 힘든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에어컨과 제습기를 같이 쓰거나, 좀 더 여유있으면 빨래건조기까지 구입하는 집이 많다.

장마철엔 육지에서도 빨래 말리는게 고민이겠지만 제주는 특히 더 심하다. 빨래가 안마르는 정도가 아니라, 밖에 내다 널면 오히려 빨래가 더 축축해지는 지경에 이른다.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어 마당에 빨래를 널어보지만 한두시간 바짝 말려야지 햇살 믿고 장시간 널어두다간 낭패보기 쉽다. 빨래가 늘 그 모양이니 덜 마른 옷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는 딱히 해결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전에 잘 쓰지 않던 섬유유연제를 여기와서 쓰게 됐다. 방향제 역할로 말이다.

한번은 날도 좋고 습도도 높지 않아 이불을 마당에 널어놓았더니 바다로부터 뭔가 자욱이 밀려오는게 있었다. ‘해무(海霧)’였다. 염분을 잔뜩 머금은 해무는 단순한 습도 이상의 염분 피해까지 감안해야 한다. 집 방충망이 단 1년만에 다 삭아버릴 정도다.

습도가 높아 곰팡이는 일상인데다가 염분까지 높아 제주도는 ‘아토피 지옥’이다. 제주는 환경성 질환으로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아토피가 전국 평균보다 높다. 알레르기성 비염환자는 2014년 기준 1만명당 1456명으로 전국 최고다. 아토피는 1만명당 236명으로 평균을 웃돈다. 공기좋고 물좋고 큰 산과 오름이 있고 곶자왈 숲이 있어 아이들에게 제주도가 좋을 거란 막연한 기대는 이 대목에서 산산히 부서진다.

얼마전 포항지진으로 1층에 외벽없이 기둥만으로 세운 필로티(pilotis)구조 주택들의 취약한 안전성 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다. 지진으로 따지면 화산섬인 제주도가 그 어떤 지역 못지 않게 취약지반이다. -실제로 근래들어 제주도 인근해상에서 지진 발생 횟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한다- 하지만 제주도에선 오히려 필로티 구조가 최적의 대안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터넷 언론 ‘미디어제주’의 ‘느량의건축이야기’에서 칼럼니스트인 이준혁 건축사에 따르면 필로티 건축은 “벌레와 습기, 열기에서 해방됨은 물론이고, 앞마당과 뒷마당을 연결시켜 넓은 외부공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지녔고, 비 오는 날 외부에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며 “특히 제주도와 같이 지하 암반이 많은 지역에서는 지하주차장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므로 많은 경제적 이점을 갖는다”고 말했다.

최근의 안전성 논란에 대해서 그는 현재 건축기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면서 “필로티 구조는 위험한 구조다” 라는 것은 “목구조는 콘크리트 구조보다 튼튼하지 못하니 무조건 콘크리트 구조로 건물을 세워야 된다”는 논리와 같다고 안전성 논란을 일축했다.

결국 제주에선 습기 때문에라도 집을 지면에서 떨어지게 지어야 한다는건데 지금까지는 정반대였다. 육지의 주택들이 집 밑바닥을 지하실 설치나 기초공사 등으로 땅바닥에서 일정 정도 띄워 짓는 것과는 달리 70~90년대 지어진 제주도 주택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땅바닥에 바로 붙여 집을 지어 놓았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첫째로는 위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암반이 깊지 않아 기초공사를 위해 땅을 깊이 팔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뿐더러 땅을 깊이 파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둘째로는 물빠짐이 좋은 제주의 토질 특성상 굳이 밑바닥에서 띄워지을 필요도 없었을 듯하다. 셋째로는 바람 세기로 유명한 제주에서 어떻게든 건물을 낮게 지어야한다는 전통 관념 때문에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육지 주택들의 지하실이 실상은 방공호의 필요성으로 생겨난 반면 제주는 휴전선과의 거리가 멀어 굳이 방공호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보아 제주에선 집을 바닥부터 지은 듯한데, 문제는 역시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다.

물론 제주의 전통가옥이라면 별로 문제가 안됐을 거란 생각이다. 제주의 전통가옥은 그 시대 육지의 가옥들이 그러했듯, 흙으로 지은 집이어서 자연적인 습도조절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게다가 옛날에는 해안가가 아니라 바다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중산간에 집들을 지었으니 지금처럼 습도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하지만 이젠 오션뷰(ocean view)를 노리고 자꾸만 해안 가까이에 건물을 짓고 그것도 콘크리트로 지어버렸으니 인공적으로 건물을 바닥에서 띄우든지 제습기, 에어컨, 빨래건조기 등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곰팡이 잔뜩 핀 집을 훑어보며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있음을 알았다. 곰팡이는 일단 새롭게 도배를 하면 됐다. 그러면 적어도 눈앞에선 사라지니 시각적인 거부감은 덜할 것이었다. 환기도 잘 시키고 가끔씩 보일러도 틀고 선풍기도 돌려 말리면 곰팡이는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리라 봤다. 제주에서 살려면 이 정도에서 곰팡이와 타협해야 했다.

하지만 왠지 그 집에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결정적으로 아이가 다녀야 할 학교까지의 거리가 버스정류장으로 두세 정거장이 족히 됐다. 의식하진 못했지만 집을 고르는 기준의 가장 우선순위에 아이들이 있었다. 그걸 비로소 인지했을땐 집 고르는 기준이 훨씬 분명해졌다.

이 집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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