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경쟁은 '끝'...소비 문화 바꾸고 글로벌 시장서 답 찾아야" 비전 제시
7월 10일 창립 89주년 맞아 국내 낙농·유가공산업의 현재와 미래 진단

국내 낙농산업이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저출산에 따른 우유 소비 감소는 이제 구조적인 현실이 됐고,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시장 개방으로 수입 멸균유가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분유 재고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쌓였고, 소비자들의 식생활 변화는 우유 소비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 같은 복합 위기 속에서 국내 최대 낙농협동조합인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어떤 해법을 준비하고 있을까.
푸드아이콘은 7월 10일, 올해로 창립 89주년을 맞은 서울우유협동조합 문진섭 조합장을 파주 반구정에 있는 모 음식점에서 만나 국내 낙농·유가공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진지하게 들어봤다.
인터뷰 내내 문진섭 조합장이 가장 많이 반복한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했다.
"이제는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우유 소비를 만드는 시대"라는 것이다.
"카페 우유도 원산지를 표시해야 한다"…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꼽아
문 조합장이 가장 먼저 꺼낸 화두는 신제품도, 수출도 아니었다. 그는 현재 국내 낙농산업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카페 우유 원산지 표시 의무화'를 지목했다.
최근 카페와 외식업소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수입산 멸균우유를 사용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소비자는 어떤 원유가 사용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문 조합장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쌀과 고춧가루는 모두 원산지를 표시하면서 정작 우유는 제외돼 있다"며 "우유 역시 소비자가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수입산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알고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라며 "국산 서울우유를 사용하는 카페는 이를 적극 홍보하지만, 수입산 멸균우유를 사용하는 곳은 대부분 공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가격으로는 못 이긴다"...FTA 시대, 국산 우유의 승부수는 프리미엄
시장 개방 확대에 대해서도 문 조합장의 인식은 확실했다.
그는 "국산 원유 가격으로 수입 멸균우유와 단순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하고, "대신 서울우유는 가격이 아닌 품질과 신뢰, 기능성을 앞세운 프리미엄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A2+ 우유를 비롯해 저지우유, 유기농우유, 저탄소 인증우유 등 차별화된 제품군을 확대하고, 소비자가 자신의 건강과 가치 소비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시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문 조합장은 "이제 소비자는 가격만 보지 않는다"며 "원료와 품질, 생산 과정의 신뢰성, 환경 가치까지 함께 고려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수입산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보다 국산 유제품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시장은 한계"...한국 낙농의 돌파구는 해외에 있다
문 조합장은 국내 소비만으로는 낙농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그가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곳은 인도네시아다.
현재 서울우유가 구상하는 사업은 단순한 제품 수출이 아니라, 젖소 개량과 목장 조성, 유가공 공장 건설, 학교우유급식 확대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추진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는 "인도네시아 시장만 제대로 열려도 우리나라 낙농산업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비록 현지 자금 조달과 정책적 변수로 사업 추진 속도는 더디지만, 세계적인 인구 대국이자 학교우유급식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시장인 만큼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시장도 핵심 전략 시장으로 꼽았다.
서울우유는 국가별 식문화와 소비 성향에 맞춰 멸균유와 기능성 우유, 디저트, 치즈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수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현지 기업과 협업해 '비요뜨 아이스크림'을 출시하는 등 브랜드 IP를 활용한 현지화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문 조합장은 "수출만으로 국내 원유 수급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국내 낙농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가장 중요한 성장 전략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우유회사'에서 '종합 식품기업'으로"...생존 위한 사업 다각화
"이제 우유만 팔아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문 조합장은 서울우유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매우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우유 이외에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라면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서울우유의 체질 변화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우유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과 디저트, 냉동 베이커리, 크림 제품, 완전균형영양식, 콜라겐 음료, RTD 음료 등 새로운 사업을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한끼식사 데일리케어'는 특수의료용도식품 기준을 충족한 완전균형영양식으로, 고령층은 물론 바쁜 현대인을 겨냥한 새로운 시장 공략 제품이다.
여기에 피부 건강을 겨냥한 '나만 사랑해 콜라겐 워터'를 선보이며 이너뷰티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서울우유 브랜드가 가진 신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일상 속 다양한 식품 시장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물성 음료도 경쟁자가 아니다"...시장 변화에 유연한 시각
식물성 음료에 대한 생각도 과거와 달라졌다. 문 조합장은 "예전에는 우유와 경쟁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시장 자체가 다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식물성 음료를 선택하는 소비자와 우유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서로 다른 수요를 가지고 있다"며 "수익성과 성장성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사업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낙농업계가 식물성 제품을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새로운 식품 시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시는 우유' 시대에서 '식문화 속 우유' 시대로"
문 조합장은 우유 소비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도 강조했다.
"이제는 우유를 컵에 따라 마시는 시대가 아니라 음식 속에서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그는 치즈와 크림, 베이커리, 디저트, 아이스크림, 조리용 유제품 등 식문화 전반으로 우유 소비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사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서울우유는 덴마크의 기술력을 벤치마킹해 유지방 함량과 원유 품질을 차별화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선보일 계획이다. 단순히 아이스크림 제품 하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유 전문성이 만든 프리미엄 디저트'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릭요거트와 고단백 발효유, 디저트 시장 확대 역시 같은 맥락이다.
ESG와 저탄소도 경쟁력..."품질과 가치가 서울우유의 미래"
문 조합장은 저탄소 인증우유를 서울우유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꼽았다.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만큼 친환경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저탄소 인증 목장을 지속적으로 늘려 국산 유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가격보다 신뢰와 가치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며 "서울우유는 품질과 ESG를 함께 갖춘 브랜드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우유의 미래는 한국 낙농의 미래와 함께 간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문 조합장은 서울우유의 역할을 단순한 유제품 제조업체가 아닌 국내 낙농산업의 플랫폼으로 규정했다.
그는 "협동조합의 역할은 조합원의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지키고 소비자에게는 더 큰 신뢰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국내 시장만 바라보던 시대에서 벗어나 프리미엄과 글로벌, 그리고 새로운 소비문화를 통해 대한민국 낙농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문 조합장의 발언을 관통하는 핵심은 "더 이상 '우유를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이 아니라 '우유를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가치로 소비하게 만들 것인가'가 한국 낙농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 서울우유가 서겠다는 것이 문진섭 조합장이 제시한 새로운 비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