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체험’서 반복 소비 시장으로…가격·현지화·지방 확장이 성패 좌우
점포 늘수록 소스·프리믹스·포장재·주방설비 등 연관산업 수출기회도 커져
필리핀의 K-프랜차이즈 시장이 다시 뜨겁다. 한국식 치킨에서 출발한 K-푸드 프랜차이즈가 베이커리와 커피로 영역을 넓히면서 ‘한번 경험해보는 한류 음식’에서 일상적으로 사 먹고 마시는 소비시장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필리핀 유력 기업들이 한국 브랜드를 직접 발굴해 자사의 유통망과 점포 운영 노하우를 결합하는 사업모델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지 최대 외식기업 졸리비그룹은 2024년 컴포즈커피 지분 70%를 인수한 데 이어 올해 필리핀 1호점을 열었고, BHC치킨도 현지 대표 의류·생활소비재 기업 수옌과 손잡았다.
필리핀 K-프랜차이즈가 한류에 기대는 해외 브랜드에서 현지 대기업들이 사업성이 있는 외식 브랜드로 평가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 성장 여건도 눈여겨볼 만하다. 필리핀 인구의 46.2%가 25세 미만이고, 연소득 1만 달러 이상 가구 비중은 2025년 61.4%에서 2030년 85.9%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고물가로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 75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뤄진 물류환경, 지역별 구매력 차이는 넘어야 할 과제다. 결국 필리핀 시장에서 K-프랜차이즈의 승부처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라는 후광을 실제 반복 구매로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컴포즈커피·BHC 동시 출격…K-프랜차이즈 재가열
지난 8월 필리핀 외식시장에 한국 프랜차이즈 두 곳이 잇달아 출사표를 던졌다.
컴포즈커피는 8월 7일 메트로 마닐라 타기그시티의 마켓마켓(Market! Market!)에 필리핀 1호점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 BHC치킨도 메트로 마닐라 퀘존의 SM North EDSA에 첫 매장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주목되는 것은 현지 파트너다. 컴포즈커피의 필리핀 사업에는 현지 최대 외식기업인 졸리비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졸리비는 2024년 컴포즈커피 지분 70%를 인수했으며 필리핀을 한국 외 주요 성장시장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BHC치킨은 필리핀 대표 의류·생활소비재 기업 수옌과 손잡고 SM Supermalls 등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출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과거 한국기업이 직접 매장을 개설하거나 개별 사업자가 브랜드를 도입했던 방식과 달리, 현지 대기업이 한국 브랜드의 사업성을 판단해 자사의 유통망과 운영 역량을 결합하는 형태로 진출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본촌이 문 열고 BBQ가 확장…K-치킨 열풍, 커피·베이커리로 번져
필리핀 K-프랜차이즈 시장을 처음 연 대표적인 브랜드는 한국식 치킨이다.
본촌(Bonchon)은 2010년 필리핀에 진출해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현지 대중시장에 안착시켰다. 최근 2차 자료 기준 약 180개 매장이 운영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시장을 확대했다.

2022년에는 bb.q치킨이 진출하면서 한국 치킨 브랜드 간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어 2024년 파리바게뜨가 첫 매장을 열었고 올해 BHC치킨과 컴포즈커피가 가세하면서 K-프랜차이즈의 품목도 치킨에서 베이커리와 커피로 다양해졌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소비 빈도에 있다. 치킨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먹는 외식 메뉴라면 커피는 출퇴근과 쇼핑, 여가 중 개인이 수시로 구매하는 일상 소비재다. 베이커리 역시 아침식사와 간식, 디저트 등 다양한 소비 상황과 연결된다.
K-프랜차이즈의 경쟁 무대가 특별한 날 찾는 ‘한국 음식’에서 소비자의 일상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아메리카노 90페소…‘한국 프리미엄’보다 가성비 택한 컴포즈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컴포즈커피다. 필리핀 1호점의 아메리카노는 90페소부터 판매된다. 한화로 약 2000원 수준이다. 오렌지 아메리카노는 약 150페소, 비엔나 크림 라테 160페소, 달고나 라테 170페소 등 주요 메뉴도 대부분 100페소대다.
한국에서 구축한 중저가 커피 브랜드 전략을 필리핀에서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는 현재 필리핀 소비시장 상황과 맞물린다. PwC가 필리핀 소비자 501명을 조사한 결과 45%가 저가·가성비 브랜드를 이용한다고 답했고, 42%는 할인과 판촉행사를 적극적으로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7%는 필수지출 이후 저축이나 여가에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답했다.

2026년 7월 필리핀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2%, 음식점·숙박 서비스 물가는 6.8% 올랐다. 같은 해 2분기 가계최종소비지출이 2.8% 증가했음에도 음식점·호텔 지출은 0.2% 감소했다.
한국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의미다.
K-프랜차이즈 역시 접근 가능한 가격의 대표 메뉴와 1인용 제품, 가족·친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세트, 할인·멤버십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첫 구매를 반복 구매로 전환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K-pop·드라마 다음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일상’ 소비
한류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필리핀 소비자들은 K-pop이나 드라마에서 본 치킨과 떡볶이, 라면을 직접 경험하는 방식으로 K-푸드를 소비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실제로 인기 있는 브랜드와 메뉴, 공간, 소비방식 자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컴포즈커피가 한국의 대규모 매장망과 K-pop 스타를 활용해 형성한 브랜드 인지도를 현지 시장 진입에 활용하고, BHC가 뿌링클 등 한국에서 이미 유명해진 메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 가치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이를 더욱 빠르게 확산시킨다. 신규 매장 오픈과 한정 메뉴, 유명인 협업, 매장 방문 경험 등이 틱톡 등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외식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브랜드에도 단순한 메뉴 현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타글리시(Taglish), 밈(meme), 친구 집단을 중심으로 한 ‘바르카다(barkada)’ 문화 등 젊은 필리핀 소비자의 언어와 생활방식을 브랜드 경험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느냐가 중요하다.
인구 절반이 25세 미만…2030년 중산 소비층 더 두터워져
필리핀 시장의 장기적인 매력은 젊은 인구구조와 구매력 증가에 있다.
EIU에 따르면 2025년 필리핀 전체 인구의 약 46.2%가 25세 미만으로 추정된다. 연소득 1만 달러 이상 가구 비중도 2025년 61.4%에서 2030년 85.9%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 소비자가 두텁고 구매력을 갖춘 가구까지 늘어나면서 외식과 카페, 베이커리 같은 선택적 소비시장도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K-프랜차이즈가 한류를 통해 확보한 초기 인지도를 일상적인 소비 습관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필리핀은 장기적인 성장시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마닐라 성공했다고 끝 아니다…다음 승부처는 세부·다바오
K-프랜차이즈의 다음 과제는 지방 확장이다. 주요 브랜드들은 메트로 마닐라에서 시장성을 확인한 뒤 안티폴로, 팜팡가, 산타로사 등 인근 루손 지역으로 영업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세부와 다바오 등 지역 거점도시도 유력한 출점시장이다.
그러나 지방 진출은 단순히 점포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2026년 7월 수도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4%였지만 수도권 외 지역은 6.7%에 달했다. 수도권 외 음식점·숙박 서비스 물가는 8.3%, 세부가 포함된 센트럴 비사야스는 8.7%를 기록했다. 지역별 구매력과 비용구조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물류도 문제다. 필리핀은 7500개가 넘는 섬으로 구성돼 지역에 따라 물류비와 배송시간 차이가 크다. 교통혼잡과 태풍·홍수 등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따라서 지방 출점은 지역별 가격 전략과 물류비, 임차료, 상권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매장 하나 늘 때마다 한국산 소스·포장재 수출도 따라가
K-프랜차이즈의 확대를 국내 식품업계가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프랜차이즈 매장 수 증가는 한국산 식자재와 연관산업의 반복적인 수출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한 소스와 시즈닝, 프리믹스, 베이커리 원료를 비롯해 포장재와 주방설비까지 수요가 함께 늘어날 수 있다.
다만 한국산 원재료를 필리핀으로 수출할 경우 현지 식품의약품청(FDA)의 영업허가(LTO), 제품등록(CPR), 표시사항 등 관련 요건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환율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2026년 8월 페소화가 달러당 약 61~62페소 수준의 약세를 보이면서 한국산 식자재와 장비를 수입하는 사업자의 원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브랜드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소스와 원료는 한국에서 공급하되, 대체 가능한 범용 식자재는 현지 조달 비중을 확대하는 이원화 전략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필리핀 FTA를 활용하면 일부 한국산 원재료와 설비의 관세 부담도 낮출 수 있다. 다만 품목마다 양허세율과 원산지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 확인이 필요하다.
인사이트 | K-프랜차이즈의 진짜 승부는 ‘첫 방문’ 다음부터
필리핀 K-프랜차이즈 시장의 변화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브랜드 숫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다. 한류가 소비자를 매장 앞으로 데려오는 힘이라면, 가격과 맛, 접근성, 현지화는 그 소비자를 다시 매장으로 불러오는 힘이다.
컴포즈커피가 저렴한 가격으로 일상적인 커피 소비를 겨냥하고, BHC가 현지 유력기업과 손잡아 대형 쇼핑몰을 공략하는 전략은 필리핀의 K-프랜차이즈 시장이 ‘한류 체험’에서 ‘반복 소비’를 겨냥한 사업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지 대기업과의 파트너십도 중요한 변화다. 졸리비와 수옌처럼 유통망과 상권, 소비자를 잘 아는 기업이 한국 브랜드를 사업 파트너로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K-프랜차이즈가 하나의 독립적인 상업 브랜드군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흐름은 프랜차이즈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매장이 10개에서 100개로 늘어나면 소스와 시즈닝, 프리믹스, 베이커리 원료, 포장재, 주방설비 수요도 함께 커진다. 필리핀 K-프랜차이즈의 성장을 국내 식품·소재·장비업계가 새로운 B2B 수출시장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K-프랜차이즈가 필리핀 소비자의 호기심을 사로잡는 단계는 지나가고, 이제 승부는 얼마나 자주 찾고, 얼마나 오래 소비하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