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제안서는 홍보물 아닌 ‘팔릴 수 있는 사업’을 제안하는 문서
지역 기반 농식품 기업들을 만나다 보면 눈을 반짝이게 하는 상품을 발견할 때가 있다. 지역 농산물을 정성껏 가공해 상품화한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매출과 시장 반응부터 묻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실적이 상품의 완성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판로를 확장하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겠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들을 때마다 “충분히 괜찮아 보이는 상품인데 왜 시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대부분 품질이나 낮은 브랜드 인지도를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역 기반 농식품 가운데 처음부터 높은 인지도를 갖춘 브랜드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정말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만의 문제일까.
답답한 마음에 입점제안서를 어떻게 작성했는지 보여 달라고 하면 또 다른 원인이 드러난다. 상당수 기업이 제안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요소를 빠뜨린다. 상품의 특징을 나열하는 데 그쳐 제안서라기보다 전단지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이래서는 상품기획자(MD)의 주목을 받기 어렵다.
업체와 상품 카테고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잘나가는 유통업체 MD는 공식·비공식 경로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입점제안서를 받는다. 현업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제안된 모든 상품을 차분히 시식하거나 생산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판로 확대의 첫 번째 관문은 제대로 작성된, 읽기 쉬운 입점제안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제안서에서 상품성과 차별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검토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유통채널마다 고객도, 선택 기준도 달라
첫째, 각기 다른 유통채널의 특성을 이해하고 제안서를 작성해야 한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몰, 홈쇼핑, 로컬푸드 직매장, 프리미엄 식품관은 고객층이 다르고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다르다. 하지만 농업경영체들은 제안서 하나를 만들어 놓고 모든 유통사에 동일한 내용과 구성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유통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제대로 연결하는 일이다. 판매처와 그곳을 이용하는 고객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보내는 입점제안서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제안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해당 유통채널의 주요 고객은 누구인지, 어떤 가격대와 상품군이 강한지, 기존 입점 상품과 비교해 무엇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같은 상품이라도 채널에 따라 강조해야 할 가치와 제안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왜 이 제품이어야 하는가’를 한눈에 보여줘야
둘째, ‘왜 이 제품이어야 하는지’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원료가 좋고 제조공정이 우수하다는 설명은 많다. 그러나 이 상품이 어떤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소비자는 왜 이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기존 상품이나 경쟁 제품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고 더 나은지를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면 부실한 제안서다.
유기농 매장이나 로컬푸드 매장에서 국산 원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차별성이 아니라 기본 조건에 가깝다. MD는 소비자에게 기존보다 더 낫거나 기존과 다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상품을 찾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원료를 사용했다’는 설명에 머물지 말고, 그 원료가 제품의 맛과 품질, 기능, 사용 편의성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까지 연결해야 한다. 제품의 장점을 나열하는 것보다 소비자가 얻게 될 구체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거래 조건 빠지면 ‘사업 제안서’가 될 수 없다
셋째, 기본적인 거래 조건을 누락해서는 안 된다.
판매 희망가격과 다른 채널의 판매가격, 공급가, 최소·최대 발주량, 입고 리드타임, 유통기한, 품온, 물류 방식 등은 비밀이 아니라 거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다.
이러한 내용이 없으면 MD는 별도로 연락해 추가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일이 많은 시기에는 검토가 현업에 밀릴 가능성이 있고, 한번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잊히기 쉽다. 결과적으로 실제 입점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입점제안서는 홍보물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는 문서다. 제품의 장점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방이 거래를 검토하면서 궁금해할 만한 사항을 예상하고,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충실히 제공해야 한다.
제조원가가 아니라 ‘팔릴 수 있는 구조’로 가격을 설계하라
넷째, 유통 구조를 고려한 가격 설계가 필수적이다.
가격을 아예 적지 않거나 제조원가와 이윤만을 계산해 판매가격을 정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유통 과정에서는 판매수수료를 비롯해 물류비와 판촉비 등 다양한 비용이 발생한다.
소비자가 구매할 만한 가격과 유통사가 확보해야 하는 마진이 동시에 성립하지 않으면 입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상품은 좋지만 가격 구조가 맞지 않아 유통 현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이유다.
MD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좋은 상품’이 아니라 ‘팔릴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상품이다.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종 판매가격에서 출발해 유통비용과 유통사의 적정 마진, 제조기업의 수익이 함께 확보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맛있다·건강하다·국산이다’만으로는 부족하다
끝으로, 기존 상품과 구별되는 차별성이 뚜렷해야 한다.
이미 모든 상품 카테고리에는 과도할 만큼 많은 제품이 진열돼 있고, 경쟁도 치열하다. ‘맛있다’, ‘건강하다’, ‘국산이다’라는 설명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렵다.
원료, 기능성, 제조기술, 특허, 사용 경험, 패키지, 스토리 등 무엇이든 소비자가 기억할 수 있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차별성은 판매를 시작한 뒤 마케팅 단계에서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상품기획 단계부터 전략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제품을 한 문장으로 설명했을 때 경쟁 상품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소비자에게도 선택받기 어렵다. 차별점은 단순히 새롭다는 주장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소비자가 실제 구매 과정에서 체감하고 기억할 수 있는 가치로 구현돼야 한다.
화려한 디자인보다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중요
디자인이 화려하거나 내용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몇 장에 불과한 문서라도 상품의 명확한 콘셉트와 차별성, 타깃 고객, 판매 조건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면 MD는 제안서를 한 번 더 검토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디자인이 아니라 상품의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다. MD가 짧은 시간 안에 상품의 경쟁력과 거래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핵심 정보를 구조화해야 한다.
농식품 산업은 이미 생산 중심에서 시장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아무리 우수한 농산물과 가공식품이라도 유통 현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소비자를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좋은 상품을 만드는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적합한 방식으로 상품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역량이다. 농식품 기업들이 이러한 관점을 갖추기 시작할 때 비로소 더 많은 지역의 좋은 상품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상품연구소
■ 최낙삼 소장 프로필
- 좋은상품연구소 소장
- 한양대학교 경영컨설팅학과 박사
- 국가직무개발(NCS)전문위원
- 중소기업협회 1인창조기업 멘토(상품기획)
- 강서시장 활성화 전문위원
- 어촌뉴딜300〮어촌신활력 사업단 전문위원(해양수산부)
<저서>
홈쇼핑으로 대박터뜨리기(2004/아라크네), MD,WHO&HOW (2008/커뮤니케이션북), 잘나가는 MD(2011/커뮤니케이션북), 아이엠MD(2013/책미래), 써먹는 MBA(2013/라온북), 저성장시대에 상품기획을 잘하는 10가지 방법(2017/새빛), CSV, 기업은 어떻게 공유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2017/커뮤니케이션북스), 대한민국 농가농촌을 위한 상품기획의 정석(2019/새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