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를 마시다(6)_보리 개역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를 마시다(6)_보리 개역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5.3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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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미숫가루'의 제주 방언...아직도 즐기는 레트로 감성 물씬
쌀보리 겉껍질까지 모두 갈아 섬유질·베타글루칸 등 영양 풍부
'코시롱 제주개역' 등 제품 온라인 판매...별미 중의 별미 '엄지척'
제주 가파도의 너른 보리밭 풍경

예전엔 흔했지만 이젠 뜸해진 것들을 제주도에 살면서 다시 접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레트로(Retrospect) 갬성(?)’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섬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서울보다 문화발전의 속도가 뒤쳐저 그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제주도엔 아직 우리의 소중한 문화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표현이 옳겠다.

제주도는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다. 그것을 제주 말로 ‘괸당’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끈끈한 공동체문화가 남아있는 것이다. 아직도 철 따라 조상묘에 벌초하러 온 집안네가 다 모이고, 제사 때는 또 휴가까지 써가면서 집안 친척들이 다 모인다. 명절에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먹거리에서도 옛 전통음식 문화가 그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는게 많다. 제주 사람들, 특히 제주 며느리들은 그 고된 과정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기도 하지만, 별달리 고향이랄 것이 없는 서울 출신 이주민 눈에는 이런 문화가 마냥 부럽기만하다.

칼로리가 높아 다이어트를 신경 쓰는 이들에게는 외면받은 지 오래인 미숫가루는 옛날 아기들에겐 이유식으로, 젊은이들에게는 여름철 땀흘려 일한뒤 쭉 들이키는 달달하고 시원한 음료로, 노인들에겐 식욕을 돋게하고 소화 흡수를 돕는 유동식으로 인기가 좋았다.

이제는 미숫가루와 비교도 안될만큼 영양적으로 뛰어난 이유식이 등장했고, 여름철 갈증을 채워줄 음료도 얼마든지 있으며, 노인들이 좋아할 유동식도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미숫가루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런데 제주에 와보니 아직도 은근히 미숫가루를 즐기는 문화가 남아있다.

보리개역(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제주에선 미숫가루를 ‘보리개역’이라고 부른다. 육지에서는 쌀이나 찹쌀로 미숫가루를 만드는데 반해 제주에선 보리로 미숫가루를 만든다.

‘보리 수확이 끝난 초여름, 보리를 볶아 미숫가루로 만들어 두었다가 물에 섞어 먹거나 밥에 비벼먹었던 시절 음식이다. 제주도에서는 곡식을 볶은 가루를 일반적으로 ‘개역’이라고 칭한다. (중략)

제주도에 정착한 토착민들이 농경문화에 적응하면서 이와 같은 곡물 조리 방법을 터득한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물에 타서 먹거나 죽을 끓여 먹다가, 여름철 간식용 음료로서 그리고 한라산이나 바다에 나가 생업활동을 할 때 휴대용 식량으로 그 사용 범위를 넓혀 갔을 것이다. 예전에는 겉보리를 사용하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쌀보리로 대체되었다. 현재는 선식의 재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보리개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보리개역 관련 제주 속담 중 ‘개역 한 줌도 안주는 며느리’라는 말이 있다. 보리를 수확하고 여름을 맞게 되면 보리로 개역을 만들어 꼭 시부모부터 갖다 드렸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며느리는 시부모를 잘 모시지 않는 못된 며느리의 대명사가 되는 것이었다. 얼마나 보리 개역을 어른들이 좋아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보리가 주 식량인 제주에서 개역만 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한 달에 개역 세 번해 먹으면 집안 망한다’라는 제주 속담도 있었다고 한다.

보리가 주식인데다가 보리 개역을 즐겼던 제주 사람들에게는 온전히 보리의 영양성분을 흡수할 수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건강상 이득이 있었다.

‘개역의 원재료인 쌀보리는 겉껍질을 도정하지 않고 전곡 상태로 사용하기 때문에, 섬유질 함량이 높은 것이 장점이다. 특히 보리곡립의 씨눈 부분에 섬유소의 성분인 베타글루칸(β-glucan) 함량이 높다. 이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저하시킴으로써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그 외에도 항암 작용 및 인체의 면역 세포를 자극하여 인체의 방어 체계를 활성화시킨다고 알려졌다. 또한 제주인들은 전통적으로 보리밥 음식을 많이 먹어서 각기병이 적고 대장암이 거의 없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보리개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웅진식품의 ‘아침햇살’이 한때 꽤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실제로 마셔보면 곡물음료 특유의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미숫가루와 상당히 흡사한 맛이다. 바쁜 아침시간 식사를 거르고 집을 나서는 이들을 위해 아침식사대용 음료로 각광 받았다. 그렇다면 제주의 보리 개역도 이런 부분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코시롱제주개역(출처_제주파인핸즈 홍보사진)

이미 ‘코시롱 제주개역’이 온라인에서도 판매되고 있으며, 다른 제주 보리개역도 판매되고 있다. 물론 제주 여행에서는 감성카페 여럿에서 당연히 맛볼 수도 있다. 제주 보리로 만든 미숫가루인 보리 개역 한잔은 옛날 제주 사람들이 그랬듯 오늘 우리에게도 별미 중에 별미 아닐까? 꼭 한번 마셔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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