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를 마시다(9)_소주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를 마시다(9)_소주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8.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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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주 '한라산' 투명병 차별화로 청정이미지 심고 브랜드 가치 높여
2017년 소주브랜드 평가서 4위 차지...대형 브랜드 속 지역소주 자존심 지켜
"뒤끝 없는 깔끔한 맛" 호평...약알칼리성 화산암반수·조릿대숯 정제가 관건
제주소주가 '올레소주'로 한라산소주 '올래소주'에 도전 상표권 분쟁서 고배
유통공룡 이마트가 제주소주 인수했으나 소비자 충성도 못꺾고 올 초 사업 중단

제주의 증류식 소주인 고소리술을 살펴본 김에 제주의 희석식 소주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젠 기억조차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원래 ‘자도주 보호법’이란게 있었다. 1977년도부터 시행된 이 법은 1개 시도별 1개 업체만 소주를 생산하게 하고 그 지역에서 50% 점유율을 보호해주는 법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역마다 소주 업체가 난립해 이를 통합 정리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 1996년에 공식 폐지되었다.

법이 폐지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탄탄한 기반을 닦았던 진로가 점유율에서 두드러지면서 지방 소주 업체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에선 지역 대표 소주가 살아남았고 몇몇 소주는 아직도 선전하고 있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는 이들은 제주에 오면 한번씩은 제주의 소주인 ‘한라산’을 마셔본다. 우선 ‘한라산’은 소주병부터 투명해 시각적으로 다른 제품들과는 확 차별화된다. 그 투명한 병이 꼭 청정 제주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더더욱 술맛을 돋운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한라산’은 소주병부터 투명해 꼭 청정 제주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더더욱 술맛을 돋운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출처_한라산소주 인스타그램)

얼마 전까지 한라산소주가 모두 투명하지는 않았다. 일반 식당에서 보통 한라산소주를 주문할 때 “한라산 하얀거”와 “한라산 파란거”를 구분했다. ‘한라산 하얀거’는 투명한 병에 담긴 21도짜리 소주였고 ‘한라산 파란거’는 초록색병에 담긴 17도 짜리 ‘한라산올래’소주였다. 그러던 것을 2019년에 ‘한라산21’과 ‘한라산17’로 리뉴얼하면서 모두 투명한 병을 사용했다. 한라산의 제품 중 2020년 리뉴얼한 ‘한라산물 순한 소주’가 초록병인 것은 예외이다.

한라산소주의 이러한 차별화된 소주병이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인 측면이 있다.

‘이미 국내에서 지역소주인 ‘한라산소주’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는 꽤 높다. 2017년 국내 소주 브랜드 평가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위는 처음처럼, 2위는 진로, 3위는 참이슬 등이다. 진로가 참이슬을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3위다. 소주를 생산하는 숱한 대기업 브랜드 사이에서도 '한라산소주'는 지역소주의 명성을 단단히 지켜온 셈이다. 특히 전국 유일 투명한 병의 소주는 각인효과가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라산소주 녹색 말고 전국유일 '투명 병' 택한 이유?’ 이동건 기자, 제주의소리, 2019.6.10.)

사실 소주 업계에서 소주병을 차별화한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투명한 소주병은 초록색 소주병보다 비싸다. 게다가 1990년대 말 두산주류에서 초록색 병의 '그린소주'를 출시해 대히트를 친 이래 대부분의 소주업체가 초록색병을 쓰면서 서로 재활용이 가능했던데 반해 한라산소주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니 이 투명한 병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업체에 비해서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하이트진로나 무학, 대선주조 등이 2019년 잇따라 투명색 병이나 투명에 가까운 소주병을 다시 내놓았으나 업계에서 표준용기 사용 논란이 크게 불거졌던 것을 봐서는 한라산소주의 그간 뚝심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0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한식’에 ‘한국식 술’(14.1%)이 1위로 꼽혔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비호감 K푸드 1위에 소주가 올랐다고 보도했다. 꼭 소주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는데 우리나라 술자리의 대표적인게 소주이다보니 또 굳이 부인하기는 어렵다.

해외에서 한류붐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꽤 많이 수출되었는데 여기서 묘사된 소주 마시는 장면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뒤따랐다. 외국의 보통 음주문화와도 차이가 클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괴로울때마다 마시는 쓰디쓴 술이란 이미지가 각인된 것으로 보이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 필자로서는 소주가 ‘쓴 맛’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쓴 맛을 잡는다고 소주의 알콜도수가 40도에서 14~17도까지 내렸는데 그러다보니 소주가 소주같지 않고 어중간해져 버렸다는 평가가 생겨났다. 그래서 애주가들은 여전히 21~23도짜리 소주를 찾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 사이에서는 깔끔하면서 뒤끝없는 소주가 선호도가 높다. 애주가들이 한라산 소주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한라산소주는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출처_한라산소주 홈페이지)

한라산소주는 약알칼리성 화산 지하 암반수를 기존 정제과정에다가 제주만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조릿대 숯으로 추가 정제하고 조릿대 추출물을 첨가하는 등 차별화를 시도했다. 희석식 소주가 주정에다가 다량의 물을 섞고 첨가물을 더하는 것인데 이 공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결국 소주는 물맛과 첨가물에 무엇을 넣었는지가 맛을 좌우하게 된다. 결국 한라산소주는 제주의 물 맛과 다른 소주에는 없는 조릿대 추출물을 첨가함으로써 분명 일정 정도 다른 맛을 내고 있는 것이겠다.

제주도 내에서도 한라산 소주의 명성에 도전장을 내민 업체가 없진 않았다. 2011년 제주천수가 설립되고 주류제조면허를 따내면서 첫발을 뗀 ‘제주소주’가 그것이었다. 당시 제주소주가 설립된 이면에는 설립자인 제주물산 문홍익 대표의 자존심 싸움도 크게 작용을 했다. 오랫동안 제주도내 주류유통사업을 해왔던 문 대표가 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을 먼저 역임하였는데 내분이 일면서 한라산소주의 현승탁 회장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자 소주사업에 직접 뛰어들게 되었던 것.

문 회장은 1년 이내 생선설비 공사착공, 3년 이내 생산설비 완비라는 주류제조면허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주시 조천읍에 소주 공장을 서둘러 세우고는 2014년에는 ‘올레소주 산도롱’ ‘올레소주 곱들락’을 출시했다. 그러나 이 때 내놓은 ‘올레소주’브랜드가 때마침 상표권을 취득한 한라산소주의 ‘올래소주’와 사실상 같은 이름이어서 상표권 분쟁에 한참동안 휘말리게 되었다.

여기에 너무 헛 힘을 쓴 탓인지 제주소주는 점점 유통망에서도 밀리고, 좀처럼 음용하는 소주를 바꾸지 않는 소비자들의 충성도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시장점유율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16년 유통업계의 공룡인 이마트에 깜짝 매각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마트조차도 제주소주 사업에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결국 올해 초 제주소주 사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쓴 맛을 제대로 본 것이었다.

한라산소주는 이렇게 제주의 맥주임을 다시한번 증명하며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수도권을 비롯한 육지로의 진출과 해외 수출까지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한라산 소주는 제주의 지역 이미지 혜택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나름의 마케팅 노력 없이는 오늘의 한라산소주를 만들긴 힘들었을 것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향토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대목이 많다.

한라산소주 공장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3회 공장 투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여행 경험이 많아 뭔가 색다른 제주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한번쯤 권해볼만 하겠다.

한라산소주 공장 투어프로그램(출처_한라산소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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