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남양유업 '불가리스' 사태가 식품업계에 주는 교훈
[독자투고] 남양유업 '불가리스' 사태가 식품업계에 주는 교훈
  • 이종덕(전 한국식품산업협회 기획이사)
  • 승인 2021.04.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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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덕(전 한국식품산업협회 기획이사)
이종덕
(전 한국식품산업협회 기획이사)

최근 남양유업의 ‘불가리스’ 사태를 보며 오랜 세월 식품업계에 근무했던 입장에서, 그리고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참으로 딱하고,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애초부터 유산균 발효유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발표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란 염려도 교차했다.

이 연구발표 내용이 보도되자마자 일부 소비자들은 마치 ‘불가리스’가 백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트에서 동이 날 정도로 불가리스를 사들였고, 남양유업의 주가도 순식간에 치솟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남양유업의 발표내용은 얼마 못 가 허구로 드러났다. 세포실험-동물실험-인체임상실험으로 이어지는 연구의 초기 단계인 실험실 수준의 세포실험으로는 바이러스 예방이란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일각에서는 일종의 사기극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어이없는 발표로 인한 후폭풍이 거셌다. 남양유업은 결국 식품 당국으로부터 제재조치를 받았고, 잘못됐다는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관할 지자체로부터 식품 등의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행위’에 의거 ‘영업정지 2개월’의 사전통지를 받아 기업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는 결과만 초래했다. 속된 말로 묵사발이 된 것이다.

문제는 남양유업의 이 같은 잘못된 홍보마케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치 않았든 오래전부터 마치 관행처럼 기업 이미지에 상처를 입혀왔는데 정작 해당 회사는 아직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지난해에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온라인에서 경쟁 관계인 M사 제품 비방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한 사실이 들통난 바 있다. 그 내용도 가관이어서 “M사 유기농 우유의 성분이 의심된다”, “우유에서 쇠 맛이 난다”, “우유가 생산된 목장 근처에 원전이 있다” 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남양유업은 1993년 유명 정치인을 모델로 내세워 P사의 저온살균우유와 맥락 없는 ‘무균질(無均質)’ 시비가 있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카제인나트륨과 인산염을 뺐다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식품업계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했다. 사실 이 두 가지 성분은 자사 주력품목인 분유제품에 함유된 것인데도, 마치 인체에 해로운 화학적 첨가물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자충수이고, 자학적인 마케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가 법적으로 허용한 식품첨가물을 굳이 쓰지 않았다고 강조한 이 광고는 커피믹스 시장의 양대산맥인 D사와 N사를 겨냥한 것이었지만, 소비자들의 가공식품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커피믹스 제품 자체를 불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식품산업의 발전을 해치고 자사 이익만 챙기려는 노이즈 마케팅은 단지 남양유업뿐만 아니라 다른 식품회사들도 종종 써먹는 유치한 방법이다. “우리 회사 제품에는 MSG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떠벌린 회사의 제품은 식물단백질 가수분해물인 HVP(hydrolyzed vegetable protein)를 대신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실망을 안겨준 사례도 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이러한 마케팅은 소비자 기망 행위이다.

무첨가 마케팅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어떤 물질을 첨가하지 않았다고 광고하는 걸 보니 인체에 해로운 것인가 보다”하는 막연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무첨가 마케팅은 동업자 정신을 잃어버린 간접적인 비방으로, 길게 보면 함께 죽자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식품기업의 소비자에 대한 신의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이세시의 유명한 토산품인 “아카후쿠 떡”은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상품인데 “바로 오늘 만든 그 맛을 즐겨주세요”라는 광고 카피로 신선함을 강조해 성공한 마케팅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아카후쿠는 떡을 미리 만들어 놓았는지, 팔다 남은 것인지 냉동한 것을 해동하는 시점의 날짜를 제조일로 표기한 사실이 알려지며, 소비자들은 더 이상 이 제품의 품질을 신뢰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아카후쿠 떡은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떡’으로 낙인돼 회사의 이미지 실추와 함께 심각한 손실을 보고야 말았다.

물론 아카후쿠 떡은 안전성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법적인 하자도 없었다. 하지만 안전과 안심은 또 다른 문제로서, 소비자들은 신뢰성을 잃어버린 회사를 외면한 것이다.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지난 2011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동종업계 간 비방 및 과대광고의 예방과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식품업계 윤리강령’을 제정하여 선포한 바 있다. 협회 내에 윤리조정위원회까지 설치하고 자정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이번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해당 회사는 물론 식품업계도 건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남양유업은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리점 갑질 문제로 국회에 을지로위원회까지 설치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면, 소비자들의 신뢰를 복구하기까지 회사의 명운을 걸고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얄팍한 속임수로 한 방 노리겠다는 잔꾀는 회사를 더이상 회생 불가능한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식품산업협회도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업계 발전을 가로막는 업체 간 상호비방과 분쟁을 방지하고 기업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명실상부한 윤리강령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실천하여 건전하게 경쟁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 조성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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