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를 마시다(4)_쉰다리...여름철 쉰밥 발효시켜 만든 기능성음료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를 마시다(4)_쉰다리...여름철 쉰밥 발효시켜 만든 기능성음료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4.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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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제주는 습도가 한증막 수준...먹을 것 귀하고 냉장고 없던 옛날 쉰밥은 일상
누룩으로 발효시킨 막걸리맛 음료 '쉰다리'로 재활용...배앓이·변비·숙취해소에 좋아 '해장술' 별명
느티나무, '곶자왈제주쉰다리'에 보리·블루베리·감귤 접목한 '식물성요거트'·제주홍암가 '감귤쉰다리' 등 상품화

요즘 아이들은 냉장고 없는 가정집을 상상이나 할까? 문득 이런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는 일반 가정집에서 냉장고를 기본적으로 세 개씩이나 쓰는 나라라는 것이다. 일반 냉장고 하나, 김치 냉장고 하나, 그리고 냉수에다가 얼음까지 나오는 정수기를 쓰니 냉장고가 기본 세 개라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냉장고 없던 시절을 상상조차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괜히 그런 아이들에게 “라떼는 말이야...”하면서 그 시절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가는 ‘꼰대’ 취급받기 십상이다.

가계 경제를 놓고 볼 때 평균치 수준을 한참 밑돌았던 유년시절, 집에 냉장고가 들어온 것은 남들보다 한참 뒤였다. 따지고 보면 냉장고 뿐만이 아니다. 전화기도, 컬러TV가 들어온 것도 늦었다. 코끼리 밥솥이 유명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부잣집 이야기였고 한참 뒤늦게 압력밥솥 하나를 구입했을 때는 과연 ‘정부미’도 ‘일반미’만큼 맛있어진다는 어른들 이야기에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세탁기도 없고 청소기도 없고,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항상 바쁜 어머니는 하루종일 먹을 양의 밥을 늘 한꺼번에 했다. 어른들 없이 아이들만 남은 집에서 그래도 배곯지 않고 밥차려 먹을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문제는 여름철이다. 냉장고도 없고 전기밥통도 없는 여름철, 밥이 얼마나 빨리 쉬어버리는지 저녁까지 남은 밥은 웬만해선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 밥이 아까워 코로 킁킁 냄새를 맡아가며 “이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는 엄마의 말만 믿고 진간장에 쓱쓱 비벼 짠맛으로 쉰 내를 이겨냈다. 그런데도 배앓이 한번 안했던 것 보면 참 어릴 때부터 면역력 강하게 컸구나 싶다.

한여름 제주는 해양성 기후라 육지보다 기온은 높지 않은데 습도가 거의 한증막 수준이다. 이주민들이 이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살던 곳에 많은 살림들을 그냥 버리고 오는데 그래도 에어컨을 갖고 오지 않은 것만큼은 크게 후회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제주는 습도가 높은 탓에 곰팡이도 잘 피어 에어컨보다도 제습기를 우선 찾는 이들도 많다. 그러니 그 옛날 제주에선 얼마나 여름철 밥이 잘 쉬었을까. 게다가 제주는 쌀밥이 아닌 보리밥이었으니 더 잘 쉬었을 것이다.

제주쉰다리 (출처_제주홍암가)

그렇다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쉰 밥이라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랜기간 여러사람들의 궁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쉰다리’였던 것이다. 어쩌면 아주 우연히 쉰다리가 발견된 것일수도 있겠다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막걸리를 어떻게 만드는 줄 모르는 사람의 용감한(?) 실수로 인한 발견 같은 것 말이다.

어쨌든 쉰 보리밥에 누룩을 뿌려 두면 그것이 발효돼 음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마시기 위해서는 체로 걸러 한번 끓이는데, 끓이지 않고 체로 거르기만 한 것도 있다. 물론 아예 체로 거르지 않고 먹기도 한다. 예전엔 그냥 마시던 걸 비교적 살기 좋아지면서 여기에다가 설탕을 넣기도 하고 어쩔땐 요구르트를 넣기도 한다. 아예 막걸리를 섞거나, 먹을땐 또 여기에 꿀이나 잼을 섞어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도무지 표준화된 방식도 표준화된 맛도 없다. 조건에 따라 모두 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것은 막걸리 비슷한 맛을 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꼭 요거트 같기도 하다. 그러니 굳이 공통점을 추려 정리하자면 쉰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음료라는 것으로 쉰다리를 정의해 볼 수 있겠다.

이 쉰다리를 직접 먹어본 적이 있다. 제주에 있는 한 대안학교를 방문했는데 여름철 음료로 내어주신 것이 이 쉰다리였다. 이 학교는 수도권에 본교를 두고 그 학교 아이들이 제주에 와서 1년살이를 하는데 자립적인 생활을 통한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농사도 짓고 노동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직접 돌아가면서 해먹는다. 특히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의 밥을 하기 위해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 가마솥에 밥을 하는데, 늘 찬밥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전통 제주의 음료인 쉰다리 이야기를 듣고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딱 한모금 마셔봤는데 막걸리 맛이 확 났다. 생긴 모양도 맛도 꼭 그랬다. 직접 운전을 하고 갔기에 더는 마시면 안될 것 같아 내려놓았는데 예전엔 아이들도 즐겨 마시던 음료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쉰 밥을 활용했으니 쉰다리는 여름 음료다. 발효음료이기에 여름철 배앓이나 변비에 효과가 좋아 아이들도 잘 마셨단다. 따지고 보면 무슨무슨 효소라는 이름 붙은 것들에도 대부분 술냄새가 나니 아이들이 못마실 것도 없겠다 싶다. 어른들에게는 쉰다리가 숙취해소에도 좋다고 하니 ‘해장술’이라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곶자왈제주쉰다리(출처_느티나무)

그렇다면 이 쉰다리의 상품화가 과연 가능할까? 현재 제주향토기업 ‘느티나무’에서는 ‘곶자왈제주쉰다리’를, ‘제주홍암가’에서는 감귤쉰다리를 상품화해 판매하고 있다. 느티나무에서는 제주 쉰다리의 전통적인 발효과정에서 특유의 누룩냄새를 감소시키고 알코올로 전이되기 전에 정지시키는 기술로 특허 출원까지해 상품화에 성공했다. 느티나무는 쉰다리에 산딸기 발효액, 양하 발효액, 블루베리 등을 혼합해 제주 쉰다리를 전통수제 식물성요거트로 만들었다. 현재 보리쉰다리, 블루베리쉰다리, 감귤쉰다리 등 세가지 맛을 선보이고 있는데 여름철 시원하게 아이들이 좋아할 맛이다.

제주감귤쉰다리 (출처_제주홍암가)

제주홍암가는 곡물유산균발효기술과 국제특허등록한 춘화처리기술(Vernalization System)을 접목하여 각종 곡물제품들을 선보인 끝에 곡물의 영양과 기능성을 극대화한 ‘제주감귤쉰다리’도 내놓게 됐다. 제주홍암가의 설립자 홍암 이규길 회장은 이미 2013년도에는 농촌진흥정이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오른바 있고 이후에도 각종 품질인증 및 특허 등으로 탄탄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발효음식은 중독성이 있다고들 한다. 외국에 나가면 김치맛을 그리워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라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어릴적 맛보았던 쉰다리 맛을 대부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한 번 맛보면 두 번 맛보고 싶고, 두 번 맛보면 가끔씩은 맛보고 싶은... 그래서 결국엔 자주 찾게되는 음료라면 정체된 국내 음료시장에서 한번 주목해 볼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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