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를 마시다(2)_감귤주스①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를 마시다(2)_감귤주스①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3.2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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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삼다수와 감귤의 콜라보는 감귤주스의 필요충분 조건
제주 감귤 재배는 1천년 역사... 본격 재배는 오래지 않아
4.3 사건때 폐작됐다가 1955년부터 재배에 관심 갖기 시작
1974년 재배면적 1만1200㏊로 1964년 대비 27배 고도 성장
제주의 카페, 야시장, 푸드트럭 등에서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음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제주 감귤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출처_비짓제주 아날로그감귤밭 홍보사진)

지역을 대표하는 농축산식품과 그 가공품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름진 옥토(沃土)와 고른 햇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바로 그 고장의 물맛이다.

경기도 여주·이천 쌀이 유명한 것은 이 지역을 휘감아 도는 남한강과 그 지류의 물맛이 예로부터 유명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이 지역에 진로 소주 공장이 자리 잡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포천 백운계곡의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포천 이동과 일동 쪽으로 가보면 포천 이동막걸리가 유명하고 ‘산사춘’ 등으로 유명한 전통주 업체 배상면주가도 이곳에 ‘전통술박물관’을 갖고 있다. 역시 이곳에도 풀무원 샘물 공장이 들어서 있다.

이미 제주의 삼다수를 소개하며 제주 물맛의 독보적인 위상을 서술한 바 있다. 음료에 있어서 물의 비중이 절대적이니 물맛이 좋으면 이미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럼 제주의 물맛에 어떠한 것을 더하면 훌륭한 음료로 재탄생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제주는 감귤의 고장이니 제주의 물과 감귤의 콜라보(collaboration)는 훌륭한 감귤주스의 충분조건이 되겠다. 그렇다면 제주에서 감귤이 처음 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제주 감귤재배는 보통 1000년의 역사로 본다. 하지만 1500년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도 있고, 2000년 역사를 말하는 이도 있다.

‘제주사람이 감귤을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가 명백히 확인되는 것은 1000여 년 전부터이다. … (중략) … 제주의 감귤재배도 2000여 년이나 1500여 년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논의가 있기는 하다. 이들 논의는 일본의 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서기 70년 충신이 상세국(常世國)으로부터 귤을 얻어 가 천황에게 바쳤다는 내용과 아울러, 일본 야사에 해당하는 ‘비후국사(肥後國史)’에 삼한에서 귤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음을 근거로 든다.

또한 이들 기록에 나오는 귤의 원래 출산지를 제주로도 본다. 이로써 감귤나무가 제주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를 4세기 이전부터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또한 제주 지역의 ‘방물(方物)’, 곧 토산품이 476년 삼국시대의 백제에 바쳐진 이래 통일신라와 일본 및 고려와의 관계 형성에 따라 이용됐음도 각종 사서에 나온다. … (중략) …

그러나 이는 후대에 감귤이 제주의 토산물로 정착된 이후의 선입관이 빚어낸 추정의 결과일 수도 있다. … (중략) … 반면 제주의 감귤재배가 100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봄은 확실하다.’ (김일우, 제주 감귤재배 1000년의 역사…고려 때부터 '귤의 고장' 뉴제주일보, 2016.12.28.)

지난해 1월 당시 양윤경 서귀포시장이 롯데칠성음료 제주공장을 방문하여 시설 등을 둘러봤다.(출처_서귀포시청)

그러나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감귤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현재 많이 재배되고 있는 온주밀감과 만감귤은 도입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2년 프랑스 출신 엄탁가[Emsile, J. Touguet] 신부가 … (중략) … 1911년 제주산 벚나무를 일본에 있는 신부에게 보내고 그 대가로 온주밀감 15주를 심은 것이 현재 제주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 온주밀감의 효시이다.

같은 해 서홍동 출신 김진려는 일본 구마모토[熊本]에서 접목 강습을 받고 온주밀감과 워싱톤네이블을 가지고 와서 식재하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규모를 갖춘 큰 농장으로 개설된 것은 서귀읍 서홍리에 일본인 미네[峯]가 개원한 현재의 제주농원이다. … (중략) … 일제 탄압 하의 농가의 여건으로 보아 고도의 기술과 자본 조달이 필요한 감귤원을 개원한다는 것은 특수한 농가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 (중략) …

해방 후 감귤 재배에 대한 의욕이 싹트기 시작했으나 1948년 발생한 4·3사건은 제주도 농촌을 폐허로 만들었고, 심어져 있던 감귤도 폐작(廢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해방 후 1955년까지 10년간은 감귤 산업이 침체되어 면적의 확대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국산 감귤의 수입 금지로 수익성이 보장되고 4·3사건의 여파도 가라앉은 1955년부터 감귤 재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중략) … 제주의 감귤은 1965년부터 증식 붐이 조성되어 그 식재열이 최고조로 달한 1970년에는 매년 제주도에 식재된 본수가 282만 본에 달하였다.… (중략) … 1964년에 413㏊에 불과했던 감귤 재배면적이 10년 후인 1974년에는 1만1,200㏊에 달하게 되어 27배라는 전례 없는 고도의 성장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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