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를 마시다(1)_삼다수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를 마시다(1)_삼다수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3.05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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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주스·차·맥주 등 제주음료의 기반은 화산암반수
'삼다수'는 가격 경쟁 아닌 브랜드 가치만으로 승부
1일 취수허가량 160만톤...지속이용가능량 90% 수준
난개발로 지하수 고갈 문제 직면...보존 노력 절실

제주의 먹을거리와 요리들이 다양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글을 써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계속 업데이트되는 이야깃거리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말고기, 물고기 이야기들을 거쳐 나물 이야기까지 하는데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제주의 먹을거리 탐색은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지나온 것 같다. 이제서야 제주의 가공식품들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풀어낼 때가 된 것 같다.

그중에서 우선 제주의 음료 이야기부터 풀어봐야겠다. 음료라 하면 감귤주스 같은 과일주스도 있겠고, 마시는 차(茶)와 술(酒)이야기도 있겠다. 하지만 이 모든 제주 음료의 기반은 제주의 물에서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그 집이 꽤 부잣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선 집에 방도 여러개여서 그 친구만의 방이 따로 있다는 것도 무척이나 부러웠고, 방안에 책상도 침대도 TV에서만 봐왔던 그런 전형적인 부잣집의 모습이었다. 그날 친구집에서 몇 시간을 놀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있는 내내 그 친구가 마냥 부럽기만 했던 기억은 분명하다. 

집에 돌아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신발장 위에 돌하르방 그림이 새겨진 박스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저 장난감이나 저금통 정도인 줄 알았으나 친구는 ‘물’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물이 좋아 특별히 친구의 아빠가 매번 구해다가 먹는 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생수 판매가 보편화되지 않은 당시로서는 물을 사먹는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때였다. 그게 얼마나 큰 문화충격이었는가 하면 그로부터 수 십년의 시간이 흐른 아직까지도 그때 그 장면이 이렇듯 생생히 기억난다.

시간이 흘러 식품전문지 기자를 하면서 음료산업을 맡아 취재할 때도 '먹는 샘물'하면 꼭 그때 기억이 났다. 취재하던 당시에는 이미 생수가 일반화되다 못해 수입 생수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판매되던 시기였다. 한참 먹는 샘물 시장이 커가던 그 시절, 국내 생수 중 가장 비싼 것은 ‘삼다수’였다.

원래 생수는 저관여 상품으로 구매 의사결정에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상품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편의점 냉장고에 가장 가격이 싼 제품을 골라 잡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당시에는 생수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 곧 판매량을 늘리는 마케팅의 주요 전략이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아닌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로 승부를 건 거의 유일한 생수 브랜드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삼다수’였다. 500ml 페트병 기준으로 분명 다른 생수에 비해 200~300원 비쌌음에도 삼다수의 점유율은 항상 우위를 차지했다.

가격경쟁이 아닌 브랜드 가치만으로 독보적인 승부를 걸어왔던 제주 삼다수(출처_제주삼다수 네이버포스트)

그러던 제주 삼다수를 제주에선 아주 싸게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물류 비용을 감안하면 제주의 물이니 제주에서 보다 저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주 여행을 와서 그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데 웬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삼다수가 그리 싸지 않았다. 육지보다야 100~200원 싼 값이지만 다른 생수와 차이가 없었다. 완전히 속은 느낌에 배신감이 컸지만, 편의점 제품 가격이 전국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점을 생각하니 실망할 일도 아니었다. 편의점이 아닌 제주의 일반 마트에 가본 다음에야 제주의 삼다수가 정말로 싸다는 것을 실감했다. 역시 제주는 삼다수의 고장임을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확인했다.

제주로 이주한 초기, 집에 정수기가 없을 땐 마트에서 일일이 생수를 사다 먹었다. 제주에 왔으니 한동안은 값비싼 제주 삼다수를 값싸게 먹을 수 있다는 기쁨도 누렸다. 물론 제주에는 삼다수 말고도 제주에서 생산하는 더 값싼 제주의 생수들이 있다. 게다가 기존 타 브랜드 생수들도 가격 경쟁에 뛰어들어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 좋았다.

제주 삼다수는 원래 육지에선 농심에서 유통을 맡았다가 현재는 광동제약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은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가 한다. 제주도 내에서는 유통도 제주개발공사가 한다. 그러니 가격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원래 제주에선 대한항공이 자체 지하수 관정을 통해 처음 기내용 생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퍼즐을 맞춰보면 어릴 때 친구 집 현관에서 보았던 그 생수가 아마도 대한항공에서 생산하던 제주산 생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1998년 제주특별법 시행이 되면서 대한항공을 제외하고는 제주에선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외엔 생수를 생산할 수 없다.

제주에서 나름 브랜드 관리를 한 측면이 있는 것인데, 이 때문에 제주 생수의 가치를 알고 이에 접근한 기업들과 갈등 끝에 소송까지 이어진 바도 적지 않다. 삼다수 유통에 있어서 농심과 헤어지고 광동제약과 새로 계약을 맺으며 빚어진 갈등이나 대한항공 측과의 취수 증산 문제, 최근엔 오리온 측과의 ‘제주용암수’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화산암반수라는 특징과 청정 제주의 이미지가 보태어져 제주의 먹는 물은 그 가치가 독보적인데, 사실 제주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대기업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주는 현재 지하수 고갈 문제에 직면해있다. 그동안 너무 많은 물을 뽑아 쓴 것이다. 물론 생수 생산을 위해 과도하게 물을 뽑아 쓴 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관광객이 폭증하면서 물 사용량도 급증한 탓이다.-제주에는 강(江)이라 부를 만한 하천도 없거니와 하천 대부분이 건천(乾川)이다. 근본적으로 육지처럼 강물을 수돗물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의 지하수 지속 이용 가능량은 1일 176만8천톤이다. 현재 지하수 취수허가량은 1일 1600천톤으로 지속이용가능량의 약 90% 수준이다. 문제는 도에서 밝힌 자료에서조차 취수허가량이 지속이용가능량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청에서는 아직 심각한 단계라고까지는 보고 있지 않은데,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이보다는 훨씬 더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

이미 제주 서부 지역의 경우 가뭄이 발생할 때 늘 지하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농업용 지하수 취수량 증가로 해안의 일부 관정에서는 지하수에 해수가 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이는 지하수의 수위가 얼마나 내려가 있는지를 잘 드러내주는 현상이다.

제주도는 투수성이 좋은 지질 특성으로 지하수를 모아두기에 좋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빗물 투수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빗물 투수가 가능한 블록도 시범적으로 도입 설치해보고 있고, 빗물을 일시 가두었다가 자연적으로 땅속에 침투되도록 하는 저류지도 늘리고 있지만 그에 비해 사용되는 물의 양은 훨씬 더 많고 지하수 고갈 속도는 더 빠르다는게 문제다.

빗물이 한라산에 스며들어 약 18년의 여과의 과정을 거쳐 땅 속 깊은 곳에 저장돼있다가 샘으로 솟는 제주의 물은 모두가 삼다수다. (출처_제주삼다수 홈페이지)

제주도는 비가 많다고 하지만 적당량의 비가 자주자주 오던 것에서 점점 지구온난화 영향 등으로 집중호우 횟수가 늘어나는 쪽으로 변화가 오고 있다. 이로인해 땅 속으로 스며드는 빗물보다는 바다로 흘려보내는 물이 더 많아지게 됐다. 제주도판 4대강 사업이라는 하천정비사업으로 제주도의 하천이 일직선으로 정비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환경단체들은 이를 두고 제주도의 하천이 빗물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고속도로가 됐다고 한탄한 바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제주도의 지하수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투수성 좋은 제주 토질 덕분이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토질은 지하수 오염에 취약하다는 말도 되기에 또 골치다. 양돈농가들의 축산 폐수가 아주 오랜 기간동안 제주의 지하수로 유입되어 제주 사회가 시끌시끌했던 적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화학비료 같은 것들도 바로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 오염을 더욱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제주 삼다수라고 하면 특정 상표가 붙은 제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주에 내린 비가 남쪽에서는 가장 큰 산인 한라산에 스며들어 오랜 여과의 과정-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이 과정을 거치는데 약 18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을 거쳐 땅 속 깊은 곳에 저장돼있다가 샘으로 솟는... 그래서 제주의 물은 모두가 삼다수다.

안 그래도 제주의 난개발 현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데 제주의 이 맑은 물 삼다수가 그 명성에 걸맞게 오래오래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 늘 간절하다. 한편으로는 일반 상점의 냉장고에서 더 이상 제주 삼다수를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큰 걱정이다. 삼다수의 보존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과제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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