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고사리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고사리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7.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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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전체가 한라산... 산도 바다만큼 삶의 기반이고 터전
소고기 맛·식감내는 제주산 먹고사리는 값비싼 궁중 진상품
장마철이 곧 고사리철...며느리도 모르는 비밀 장소서 꺾어
삶아서 말린 '건고사리'로 보관해 제수용으로 쓰기도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의 의식 속에 바다만큼 크게 자리잡고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기반이고 산은 삶의 터전이다.

제주는 섬이다. 그것도 육지와는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섬이다. 그러니 제주는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이어왔다. 그런데 또 이 곳엔 큰 산이 하나 있다. 그것도 남쪽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산은 제주 사람들의 의식 속에 바다만큼 자리잡았다.

가끔씩 어디부터가 한라산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제주사람들은 한결같이 “제주도 전체가 한라산!”이라고 답한다. 그렇게 놓고 보면 제주 사람들에겐 집터가 곧 한라산이고 밭이 곧 한라산이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의 먹을거리는 바다에서만큼이나 산에서도 난다.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기반이고 산은 삶의 터전이다.

그러니 이제 산에서 나는 먹을거리 이야기들을 한번 풀어낼 차례가 된 것이다.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할까? 또 막막함부터 먼저 앞선다.

어머니가 제주에 오셨다가 되돌아가실 땐 꼭 고사리를 하나 가득 사 가신다. 이젠 아들이 제주도에서 산다는 걸 이웃들이 다 알아서, 아들네 간다고 하면 되돌아올 때 제주 고사리를 좀 사다달라는 청이 꽤 있는 탓이다. 게다가 제주 여행 기념으로 주변에 선물할 것도 마땅하지 않은데 고사리는 선물로도 손색이 없어 이래저래 매번 고사리를 잔뜩 사가시는 거다. 그 덕에 제주산(한라산) 고사리가 얼마나 유명한 지를 알게 됐다.

전국 어디에나 고사리가 있는데 어떻게 제주의 고사리가 유명해졌을까? 고사리를 역사적 기록들에서는 ‘궐채’라고 했는데 여기서 쓰인 한자는 ‘고사리 궐(蕨)’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이들이 이를 ‘대궐 궐(闕)’로 알고 있다. 즉 궁궐에서 사용하던 나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정말일까? 그런데 이것이 재밌게도 사실이다. 고사리야 흔히 먹는 식재료였으니 당연히 대궐에서 자주 사용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하필 제주의 고사리를 특별히 궁궐로 올리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주의 고사리가 대궐의 나물이었다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게 된 것이다.

제주의 고사리에는 흑고사리와 백고사리가 있다. 이를 ‘먹고사리(자왈고사리)’와 ‘볕고사리(벳고사리)’로 제주에서는 불렀는데 이중 먹고사리가 궁중에 진상되었던 것이다. 먹고사리와 볕고사리는 확연히 구분된다. 먹고사리는 곶자왈이라고 부르는 수풀 속 음지에서 주로 자라며 줄기 부분에 분명한 흑색을 띤다. 볕고사리는 햇볕이 내리쬐는 너른 들판에서도 자란다. 줄기는 연두색을 띤다. 둘을 놓고 비교해보면 먹고사리의 줄기가 훨씬 더 두껍다. 재밌는 것은 둘이 품종이 다른게 아니라 어디서 자랐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제주의 고사리에는 흑고사리와 백고사리가 있다. 이를 ‘먹고사리(자왈고사리)’와 ‘볕고사리(벳고사리)’로 제주에서는 불렀는데 이중 먹고사리가 궁중에 진상되었다.(출처_제주땀 업체홍보사진)

제주의 먹고사리는 그 두꺼운 줄기로 소고기 맛과 식감이 두드러진다. 정말 그렇다. 필자는 오히려 그래서 고사리가 싫었다. 나물에서 고기 맛이 난다니 고기를 애정(?)하는 입장에서는 고사리의 도발(?)이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고 질긴 그 식감이 불쾌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고기가 귀했던 옛날에는 어땠을까? 소고기가 흔해진 요즘 고사리는 오히려 소고기보다 비싸다. 

육지에서의 장마는 연중 한번이다. 물론 가을장마까지 치면 두 번이다. 그런데 제주는 여기에다가 봄철인 4월 전후해서 비가 지속된다. 제주사람들은 이 때를 ‘고사리장마’라고 부른다. 제주는 가뜩이나 비가 잦고 습한데 제주 고사리는 특히 고사리 장마 비를 듬뿍 맞고 자란다. 습한 음지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인 고사리에게 제주는 안성맞춤이었고 그래서 제주의 고사리가 더 맛있었던 것 아닐까.

다 자란 고사리가 아니라 막 싹을 틔운 새순을 먹는 고사리는 그래서 고사리장마철이 곧 고사리철이다. 제주는 곳곳에 풀이 조금만 있으면 고사리가 널렸는데 필자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안보이는 것을 제주사람들은 기가 막히게도 찾아낸다. 예전에 신당동 떡볶이 양념 비법은 ‘며느리도 몰라’라고 해서 광고에까지 등장했던 할머니가 화제였는데 제주에서는 상등품의 고사리가 있는 곳은 며느리에게까지도 비밀이란다. 임자없는 바닷 속 해초들을 채취할 때는 누가 먼저 따가느냐의 경쟁이듯이 제주의 고사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무에게도 안알려주는 자기만의 비밀장소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소고기보다도 비싼 고사리를 빨리 먼저 꺾으면 꺾을수록-제주에서는 고사리를 ‘꺾는다’고 말한다-짭짤한 수입원이 되기에 고사리 철에는 육지에서도 고사리를 꺾으러들 많이 온다. 예전엔 제주에 ‘고사리방학’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니 제주에서 이런 경쟁은 생각보다 치열해서 가끔씩 연로하신 할머니들이 길을 잃는 사고들도 발생한다. 고사리를 찾으러 남들이 알지 못하는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보면 길을 잃는 것이다. 산 속 깊은 곳에서는 휴대폰도 무용지물이다. 고사리를 꺾기 위해서 등산로를 따라 들어간 것도 아니니 길은 더 오리무중이 된다. 등산로만 따라 들어갔다고 해도 오를 때 길과 반대로 되짚어 내려올 때 길의 느낌이 전혀 다른데 아무리 제주 사람이라해도 길도 없는 산속까지 들어갔다가는 길눈이 밝은 사람들이라 할찌라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제주엔 뱀도 많은데...

제주에선 고사리를 꺾어오면 삶아서 말려 건고사리로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다.(출처_제주땀 업체홍보사진)

이렇게 고사리를 꺾어오면 삶아서 말려 건고사리로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다. 고사리가 암을 유발한다는 괴담이 한때 돌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국립암센터까지 나서 해명자료를 낸 바 있다. 고사리가 남성에게 안 좋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정설로 받아들이는 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새순을 따서 삶고 말려서 쓰는 우리나라 조리방식으로는 고사리가 암을 유발하지도 남성의 힘을 약화시키지도 않는다. 만약 괴담이 사실이라면, 고사리가 주변에 널렸고 그래서 각종 음식에 고사리를 넣어서 먹는 제주사람들은 암환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두드러지게 많고 출산율은 뚝 떨어졌어야 한다.

제주에선 많은 음식에 고사리가 사용되었지만 특히나 제수용으로는 꼭 필요해서 고사리를 두고두고 잘 보관했다. 그래서 고사리를 보는 대로 꺾지만 절대 무덤가의 고사리는 꺾지 않는다. ‘고사리는 아홉 성제(형제)’라는 제주 속담은 고사리는 꺾어도 아홉 번이나 다시 난다는 말이라고 하니 그 집안 사람의 제사상을 위해 최소한의 고사리는 남겨둬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던 것이다.

제상에 올랐던 음식으로는 육지의 제사상에서 보듯 고사리나물이 대표적이다. 제주에선 이를 ‘고사리탕쉬’라 불렀다. 삶은 고사리에 청장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을 넣고서는 이를 한 번 볶아내면 된다. 여기에다가 고기를 넣으면 ‘고사리고기지짐’이되고, 나물에다가 나중에 계란을 덧입혀 부치면 ‘고사리전’이 된다. 그 밖에도 보말을 함께 넣기도 하고 마늘대를 함께 넣어 볶기도 했다.

하지만 고사리하면 뭐니뭐니해도 육개장이 떠오른다. 영화 ‘식객’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등장하는 육개장에 대해 영화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탕에는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 조선의 민초요, 고추기름에는 맵고 강한 조선인의 기세가, 어떤 병충해도 이겨내는 토란대에는 외세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고사리에는 들풀처럼 번지는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고사리의 생명력은 온갖 침탈의 역사를 겪었지만 절대 꺾여도 꺾이지 않았던 제주 민초들의 생명력과 닮은 데가 있다고 한다면 또 지나친 제주 고사리 예찬이 될까? 제주 여행 마치는 길에 제주 건고사리 한봉지 사서 집에서 한라산의 생명력를 잔뜩 받아들여 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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