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 메밀잎편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 메밀잎편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12.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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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메밀 주산지는 봉평이 아니라 제주... 메밀 6차산업화 잠재력 커
신화에 농경여신 '자청비'가 지상으로 가져온 종자...스토리 있는 구황작물
데친 메밀잎 된장·다진마늘·참기름으로 무친 '모멀입무침'은 일상의 반찬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룬 TV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한적한 마을 한가운데로 맑은 물이 흐르고 마을은 온통 초록의 빛깔이 물들어 있으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고풍스런 목조 주택들이 띄엄띄엄 있어 마을이라기보다는 중세시대를 예쁘게 잘 재현해 가꿔놓은 공원 같아 보였다. 그 마을에선 교통난이나 주차난 같은 것들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유럽의 웬만한 마을들이 다 이런 식으로 비슷비슷하니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훌륭한 시인이 나오지 않을 수 없고, 어떻게 훌륭한 화가가 안 나올 수 있을까 감탄했더랬다. 여행이란게 그렇다. 각박하고 숨막히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잠시 낯선 곳에 가보면 그동안 주변에 보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고 그 하나하나가 다 감탄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탈도시도 꿈꾸는 것이겠고.

제주 이주 열풍은 그렇게 시작이 됐다. 노란 유채꽃밭, 초록의 청보리밭, 높다란 야자수, 옥색의 바다빛, 푸르른 하늘... 이런 것에 그만 홀딱 빠져들다못해 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제주로 이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제주가 관광지가 아닌 일상의 영역이 돼버리면 이곳이 결코 꿈에 그리던 낙원은 아니라는 것을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노란 유채꽃이나 청보리들, 야자수, 옥색의 바닷빛에 설레지 않게되면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주 안에도 치열하고 바쁜 일상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 한적해보였던 유럽의 마을들도 나름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보게 된다.

하지만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도 잠시 잠깐 숨을 쉬게 해주는 것은 역시 제주의 기가막힌 풍경들이다. 제주시에 살면 서울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시 풍경이지만 그래도 제주에는 넓은 하늘이 있고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면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제주의 밭들은 쉴새없이 작물들을 바꿔가면서 재배한다. 그러니 어제의 밭이 오늘의 밭과 다르다. 서울에서 살면서 넓은 밭 보기가 쉽지 않지만 서울만 조금 벗어나면 밭풍경 하나만으로도 감탄이 흘러나올 때가 많은데 제주는 이런 눈요기가 사시사철 일상 속에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메밀밭은 수도권에서는 정말 보기드문 풍경이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을 고등학교 때 입시준비 차원에서 강제로(?) 읽은 적이 있지만 도통 메밀꽃을 본 적이 없으니 그 소설의 느낌을 반의 반도 느끼지 못했다. 작가는 메밀꽃을 '소금 뿌려놓은 듯하다'고 묘사했는데, 제주에 와 살면서 메밀밭에 꽃 핀 광경을 보고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메밀의 주생산지는 강원도 봉평이 아니라 제주다

매일 출근하는 일상에서 메밀의 파종부터 개화, 수확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본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훌륭한 사진작가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겠나 감탄하면서 말이다.

‘제주에서의 메밀은 제주 농경여신인 자청비가 지상으로 내려올 때 오곡을 가지고 왔는데 잊어버리고 못 가지고 온 종자가 있어서 다시 가지고 온 것이라고 신화에 등장하는 작물이다. 척박한 제주 토양의 구황작물로서의 역사, 출산 후 산모들이 먹는 음식 등 제주인의 삶과 함께 신화적, 역사적, 생활적 이야기를 갖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 작물이기도 하다.

메밀은 예로부터 제주지역에서 중요한 식량작물로 재배하였으며 1938년 재배면적은 4,874㏊로 대두보다 많았다. 1960년대 말까지도 제주에서는 부족한 식량의 자급자족을 위해 메밀은 중요한 식량 작물이었다. 1970년대 이후에 메밀 재배면적이 줄기 시작해 1990년대 이전에 500ha 정도로 재배되다가 2005년에는 51ha까지 감소하였다.

그러나 최근 메밀에 대한 소비의 증가와 함께 제주지역에서는 월동채소 재배면적이 확대되면서 월동채소 뒷그루 작물로 메밀 재배면적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메밀 재배면적은 중산간 지역으로 까지 확대되고 있어 재배면적 및 생산량이 전국 대비 36.5%(2015년 기준)로 전국에서 제일 많이 재배하고 있어 제주지역 메밀 생산은 명실상부한 전국 1위(생산량 전국 1위, 재배면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주메밀을 산업화할 수 있는 발전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현재 제주에서 생산되는 메밀은 원물 상태로 강원도 봉평으로 보내어 가공되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최근 제주메밀 명품만들기 일환으로 생산에서부터 가공 유통까지 총망라한 제주메밀의 명성을 찾고 6차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이 진행 되고 있다.’(이성돈, 제주 잡곡류 재배의 역사. 2020.02.06. 헤드라인 제주)

모멀입무침(메밀잎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제주가 메밀 생산량 1위의 주산지인만큼 제주에선 메밀을 이용한 요리들이 많다. 게다가 쌀이 주식이 아니었던 제주에선 메밀가루가 웬만한 음식에 다 들어갔다. 그러니 그 많은 메밀잎 역시 그대로 두었을 리 없다.

당연히 메밀잎을 나물로 활용했는데 그것이 ‘모멀입무침(메밀잎무침)’이다. 물론 강원도를 비롯해 메밀농사를 짓는 곳엔 메밀잎나물이 있다. 주로 된장에 무치는 것도 비슷하다.-메밀잎이 된장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에선 지금도 워낙 메밀 농사를 많이 짓고 메밀을 활용한 음식도 많기에 다른 지역보다도 메밀잎무침이 여전히 일상의 밥상에 더 친숙하다는 점을 내세워볼 수 있겠다.

‘제주인의 지혜와 맛-전통향토음식’의 설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모멀입무침’은 새순의 여린 잎들을 따다가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친다. 이 때 잎과 줄기를 따로 데쳐주면 더 좋다. 줄기에 맞춰 데치면 잎이 물러진다.

데친 메밀잎은 바로 냉수에 헹군 후 물기를 꼭 짜주고 나서 된장과 다진마늘을 넣어서 무친다. 여기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추가로 넣으면 더 좋고 입맛에 맞게 살짝 고추장을 넣거나 아예 쌈장으로 무쳐도 좋다.

매일 출근하는 길에 밭들이 있기에 메밀의 파종부터 개화와 수확까지의 전 과정을 일상에서 지켜본다. 그 넓은 밭들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메밀꽃을 보면서도 말라버린 감성으로 시 한편, 그림 한 폭 그려볼 엄두를 내진 못한다. 다만 잠깐 차를 세우고 자주자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훌륭한 사진작가가 안 나올 수 있겠나 감탄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요리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이런 광활한 먹을거리를 앞두고 훌륭한 요리가 안 나올 수 있겠나 하는 감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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