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고칫입나물편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고칫입나물편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12.1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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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충해 습도 등 기후조건 제주도 환경은 고추 농사에 안맞아
제주 전통음식에 고춧가루 드물고 귀한 식재료 취급 받아
4.3 사건 때 동굴로 피신할 때 고추 챙겨갔다는 일화 유명
'고칫입나물'은 어렵사리 지은 고추농사의 본전...대 잇는 밑반찬

대안학교 교사시절 학교 텃밭농사에서 빠뜨리지 않았던 작물은 고추였다. 심자마자 금방 결실을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엔 그만한 게 없었다. 아이들이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매운 것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그래도 자기들이 직접 농사지은 것은 먹지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일부러 더 심기도 했다. 특히 맵지 않은 오이고추는 고추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고추 농사라는 게 정말 손이 많이 간다. 농촌에선 기본으로 짓는게 고추농사인데 이게 실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추 모종은 사올 때부터 기분이 좋다. 꽃이 피어 있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고추가 벌써 달려있는 것도 있다. 성미가 급한 아이들은 이미 텃밭에 옮겨심을 때부터 고추가 달려있으니 곧 수확을 거두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매우 즐거워한다.

그런데 옮겨심고 나면 이미 달려있는 고추는 그대로 쪼그라들거나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더 크고 많은 수확을 얻으려면 밑에 자라있는 고추를 따서 버려야 한다. 그래야 줄기도 쑥쑥 자라고 꽃도 많이 피게 되며 결과적으로 많이 핀 꽃에서 고추도 큼직큼직하게 달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과정마다 수시로 돌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키가 부쩍부쩍 크는데 줄기가 약해 고춧대를 세워 묶어주어야 한다. 이 작업을 적어도 두세번은 반복해야 한다. 어린 학년의 경우 옥상 텃밭도 함께 관리토록 했는데 그 곳은 또 물과의 전쟁이다.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물을 흠뻑 주지만 어느새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에 집에 갈 때 보면 뙤약볕에 시들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과의 전쟁이 끝나면 풀과의 전쟁이 이어진다. 생태교육 삼아 짓는 농사이기에 당연히 제초제나 농약, 비료를 주지 않았다. 그만큼 품은 더 늘어나기 마련이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텃밭에 비닐멀칭을 해 풀을 억제해보기도 했지만 생태적인 방식과 거리가 멀어 두 번 다시 그 방법은 쓰지 않았다.

비료를 주지 않으니 풀을 잡지 않으면 고추는 안자라고, 땀 흘려 풀을 잡으면 고추는 잘 자라는데 며칠 지나면 키는 훌쩍 크고 잎은 무성해서 저학년 아이들이 돌보기에는 불편한 높이가 된다. 반면 어른이 손을 보기엔 또 자세가 엉거주춤이어서 허리에 부담이 간다.

고추농사를 짓다가 체력이 달려 며칠 텃밭농사를 미루면 풋고추가 금방 붉게 물들어버린다. 그럼 풋고추로도 못먹고 그대로 빨갛게 익도록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고만고만한 양으로 고춧가루를 얻을 것도 아닌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홍고추는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비가 잦아지면 병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땐 그대로 폐기 수순을 밟는다.

고추가 제 맛을 내는 것은 또 그야말로 운(運)이다. 처음엔 물을 제 때 안줘서 고추맛이 더 매워지는 줄 알았다. 아이들한테 오이고추라 하나도 안맵다고 먹어보라고 했다가 몇몇 아이들 눈물을 좀 뺀 경험이 있다. 함께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이웃 도시농부들에게 여쭤보니 물을 안줘서 매워졌다기 보다는 안 매운 고추하고 매운 고추하고 가까이 키우면 안 매운 고추도 매워지고 매운 고추도 안 매워지는 거란다.

초보 농부가 고추만 보고 그것이 청양고추인지 오이고추인지까지 구분할 능력은 안되지만 이웃 도시농부들은 다들 김장때 쓸 고춧가루를 염두에 두고 심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민폐였다. 분명 심은 것은 오이고추인데 결과는 꽈리고추가 되는 경우도 흔했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초보 농사꾼의 경험상 실제 상품화할 수 있는 고추농사란게 만만치 않다는 걸 그 때 절실히 깨달았다.

그 일천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제주도는 고추농사를 짓기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이래저래 품이 많이 들어가는 고추농사를 짓기엔 바다에서 물질도 해야 하는 상황에선 제주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제주에선 고추가 자라기에 병충해나 기후조건이 맞지 않다. 햇볕이 좋아 당도가 올라간 고추는 그만큼 덜 매웠고 반면 벌레들은 많이 꼬였다.

이래저래 제주는 태양초나 고춧가루가 큰 인기를 끌 수 없는 조건이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지 농업기술이 발전하고 품종이 개량된 지금도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출처_제주원시몰 제주고춧가루)

또 습도가 높은 기후 탓에 탄저병 등에 취약하기도 했다. 제주도는 또 밭에서 일년동안 이모작 삼모작 하는데 그런 밭을 몇 개월씩 자리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고추농사 특성상 제주농민들에겐 이래저래 환영받을 순 없었다. 제주 전통음식에 유독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드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추(학명: Capsicum annuum L.)는 중부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흔히 오랜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먹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시대(1614년) 일본에서 도입되었고, 제주도에도 이 시기에 재배가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 초에서 1980년대 까지 대정읍 인성, 안성, 보성 등에 주산지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긴 장마와 태풍 등의 기상 때문에 면적은 증가하지 않았다. 최근 애월읍, 한림읍을 중심으로 노지터널 재배가 되고 있으며, 1950년도까지는 재래종이 재배되었고, 매운맛이 약했다.’(제주 과채류 재배의 역사, 이성돈. 헤드라인제주 2020.3.5.)

한 때 귀농하겠다는 생각에,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귀농한 부부와 오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다. 이분들이 고추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는데 내용인 즉 이랬다. 친환경으로 어렵사리 뙤약볕에 고추농사를 짓고 그 고추를 수확해 건조 역시 자연그대로 햇볕에 말렸더니 정작 고추가 강렬한 햇빛에 그만 새까매지더라는 것이다. 당연히 고춧가루도 검은 빛이 돌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친환경임을 강조해도 사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씁쓸한 경험담이었다. 결국 그 고춧가루는 지인들에게 돌리며 인심을 썼는데 그마저도 반응이 안좋았다고...

제주도가 딱 그럴 것이다. 제주에서 햇볕에 고추를 말리면 작렬하는 태양빛에 그만 새까맣게 타 버리고 말 것이다. 이래저래 제주는 풋고추를 빼곤 태양초나 고춧가루가 큰 인기를 끌 수 없는 조건이었다.-오해하지 말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그랬다는 것이지 농업기술이 발전하고 품종이 개량된 지금도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하지만 바꿔말하면 제주에서 고춧가루는 그만큼 귀한 식재료였다는 뜻도 된다.

제주 4.3사건때 난리를 피해 동굴로 숨어들어갈 때도 말리던 고추를 챙겨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귀하니까 고추농사가 신통치 않더라도 계속 짓는 것이다. 그러니 고추농사를 지었으면 고춧잎이라도 잘 활용을 해야 본전이라도 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칫입나물’이다. 물론 고춧잎나물은 제주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흔히 활용되는 나물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지역보다도 제주에선 아직 고춧잎나물이 활용빈도도 높고 웬만한 식당에 밑반찬으로도 자주 올라온다.

사진2-고칫입나물(고춧잎나물. 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제주에선 활용빈도만을 놓고 봤을 때 고추보다 고칫입나물을 위해 키웠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어릴 때 입맛이 평생을 간다. 그리고 그 입맛은 대를 이어 내려간다. 입맛은 변치않아 제주에선 여전히 고칫입나물이 대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전국적으로 흔한 나물이라도 아직까지 제주에선 고칫입나물이 분명한 제주전통식품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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