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나물이야기_양하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나물이야기_양하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7.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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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목 생강과 식물로 '야생강'으로 불리는 제주산 식재료
잎은 쌈 국 재료로, 꽃은 나물무침 초절임 장아찌로 즐겨

육류반찬만 먹는 아들을 둔 아빠가 있다. 아들은 채소나 나물을 전혀 먹을 생각 안한다. 아빠는 늘 속이 타지만 따지고보면 그 아빠도 채소나 나물을 즐겨먹지 않는 것은 매일반이다. 식탁 위에 밑반찬으로 나물 몇 가지와 채소 반찬이 늘 놓여져 있지만 아들이 아빠의 식습관을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실은 아빠도 육류반찬만 쏙쏙 골라먹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빠는 스스로 인식을 못한다. 밑반찬으로 놓여진 나물이 늘 시야에 들어오는 까닭에 스스로 나물을 잘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끼니에는 굳이 그걸 안 먹었을뿐 매번 전혀 안 먹는건 아니라는 인식이다. 그래도 아들과 달리 김치는 종류대로 잘 먹으니 편식은 아니라고 스스로 정신승리(?)를 해본다. 그런데 이 아빠가 얼마 전부터 제주 나물 이야기를 쓰고 있단다. 아들이 그 글을 보면 이래저래 큰일이다. 이것이 사기 아닐까 잠깐 생각도 해봤지만 떡볶이를 싫어하는 유명 떡볶이집 사장도 있다며 애써 글 쓸 명분을 찾아본다. 믿거나말거나 제주에 사는 어느 집 이야기다.

고백컨대 필자는 나물을 잘 모른다. 그러나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이라 했다. ‘알게 되면 진정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으로 보게 된다’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써가고 있는 중이다. 나물을 잘 모르다보니 웃지못할 일도 가끔씩 있다. 제주에 처음 내려와 취직을 하고 하루하루 직원들과 점심을 먹는데 40대 중년의 육지에서 온 아저씨가 편식하는 모습을 보이면 왠지 뒷담화로 흉이 날까봐 나오는대로 주어진대로 골고루 먹었다. 그런데 제주의 백반정식에는 왜 그리도 나물반찬이 많은지... 평생 먹을 나물을 그때 다 먹어본 것 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크게크게 덥석덥석 복스럽게 말이다. 물론 이것저것 다 먹더라도 순간 멈칫하게 하는 반찬도 있다. 세상에, 꽃송이가 나물이라니...

우선 그 꽃의 정체가 궁금했다. 꼭 자목련 꽃봉오리 미니미인 것 같은데 어떤 경로로 밥상까지 올라왔는지 내막이 수상했던 것이다. 게다가 목련꽃 필 무렵도 아닌데 말이다. 40대 소심남(小心男)은 그 해 차마 그 꽃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이듬해 점심에 우연히 다시 그 꽃을 발견하고는 물어볼까말까를 한 열 번쯤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러자 역시 반응은 “정말 이걸 모르냐?”였다. 하지만 그 다음은 “육지엔 이게 없나?”하는 갸우뚱도 이어졌다.

사실 뇌리에 자꾸 자목련 꽃봉오리와 오버랩되어 이것을 본적이 있는지 없는지 혼란스러웠다. 나물을 싫어하는 중년 아저씨 정체가 이렇게 탄로나려는 순간 뜻밖에도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서울 물 좀 먹어봤다는 젊은 직원들이었다. 그들의 일관된 이야기는 “서울엔 이것이 없다”라는 거였다. 그리고 몇몇은 제주에서 자랐지만 이것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제서야 얼른 그 이야기에 숟가락을 얹으며 “제주에 와서 처음 본 것!”이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괜찮았어, 아주 자연스러웠스...!’

자목련 꽃봉오리 미니미처럼 생긴 그것은 ‘양하(襄荷)’였다. 이름부터가 생소했다. 제주 사람들은 이걸 ‘양애’ ‘양외’라 부르고, 꽃을 뜻하는 ‘양하근’은 ‘양애끈’ ‘양엣간’이라 불러 표준어를 찾는데 한참 애를 먹었다. 이걸 제주사람들만 먹으니 서울사람이 모르는 건 당연했다. 물론 제주 외에 전북이나 경남 남해안에서도 일부 식용하긴 한다고 알려졌지만 말이다.

양하(출처_향토박이 업체홍보사진)

양하는 생강목 생강과의 식물이다. 그래서 생강의 줄기나 잎과 비슷해 ‘야생강’이라고도 불린다. 잎도 줄기도 다 요리로 활용된다. 잎은 쌈으로 새순은 국으로 끓여먹기도 한다는데 실제로 본 일은 없을 정도로 오랜 제주사람 아니고서는 요즘에 그렇게까지 활용하는 일은 드물다. 다만 그 꽃은 나물이나 무침, 초절임 형태의 장아찌 등으로 지금도 활용한다. 생긴 건 꽃이요 맛은 독특한 생강향이니 편식쟁이 입맛에는 맞지 않았는데 식감은 또 아삭하면서 쫄깃해 한참을 씹어야 했다. 그러니 양하는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겠다.

양하 순나물 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하지만 양하를 생강대신 활용하면 어떻게 될까. 주재료의 잡내를 잡아주는 생강을 대신해 육류요리에 양하를 쓰면 갑자기 고급스러워지게 된다. 그래서 산적에 양하를 함께 끼워 맛과 시각적인 즐거움을 모두 잡기도 했고, 최근에는 양하고추장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예전에는 떡을 찔 때 시루 밑에 깔아서 떡의 향미를 더 돋우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양하고추장(출처_수지힐링 업체홍보사진)

일본에서도 ‘묘가(茗荷)’라고 해서 식재료로 많이 쓰이는 편이고 특히 생선을 구울 때는 양하 줄기를 같이 구워서 생선을 다 먹은 후에 입 안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씹는다고 한다. 생선을 요리로 많이 활용한 제주에서 양하가 식재료로 활용된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양하는 워낙 채취기간이 짧은데다가 조금만 채취가 늦어져도 질겨져서 일본에서도 구하는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호주 등 해외로부터 수입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주에선 예전에 집집마다 초가지붕 밑에 심어 양하가 아주 흔했다한다. 꽃이 꼭 죽순처럼 땅에서 솟아 바로 피는데 꽃도 예뻐 식재료로 쓰다 남은 꽃은 그저 얼떨결에 집 마당을 꾸며주는 소박한 화단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제주 전통 초가 마당에 핀 양하꽃을 떠올리면 늦여름 초가을 옛 제주의 정취가 어렴풋 그려지는데 지금은 그러한 마당의 여유도, 정취도 많이 줄었고 그만큼 양하도 사라져 아쉬움 가득하다.

글을 쓸 때, 같은 글이라도 색다른 어휘를 시의적절하게 잘 활용하면 글이 훨씬 풍성해진다. 요리가 딱 그럴 것이다. 같은 음식, 같은 맛이라도 색다른 식재료를 잘 활용한다면 그 요리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요리는 단순히 맛으로만 먹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는 눈으로도 먹고 코를 통해서도 먹는다. 제주의 양하는 그런 면에서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의 식재료가 아닐까 두 번 세 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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