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밥에그나물?-녹듸나물 편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밥에그나물?-녹듸나물 편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2.0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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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쉬는 성질로 인해 조선시대 변절자 '신숙주' 이름서 유래
제주에선 숙주나물보다 옛이름 ‘녹듸ᄂᆞ물’ 그대로 불러
구좌읍 김녕이 주산지...제사상에 오를 정도로 친숙한 나물
녹듸나물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숙주나물을 처음 경험했던 것은 아주 어렸을 때 제사 음식에서였다. 콩나물국, 콩나물무침, 콩나물밥 등 오직 콩나물 밖에 모르던 그 때 처음 보았던 숙주나물은 영락없는 콩나물의 아류(?)일 뿐이었다.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으로 차린 밥상에서 맛본 숙주나물은 콩나물의 식감과 맛을 기대하고 먹었던 탓에 실망감이 더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제사 음식에 콩나물을 두고 왜 굳이 숙주나물을 올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년시절 집에 냉장고가 없었기에 제사 음식 처리는 늘 골칫거리였는데 제일먼저 숙주나물부터 버렸던 기억이 난다. 제일 먼저 쉬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많았기에 나중에서야 들은 조선시대 세조의 왕위 찬탈 앞에 변절했던 ‘신숙주’의 이름과 관련한 사연은 금방 이해가 되었다.

지금도 신숙주의 후손들은 숙주나물을 두고 ‘녹두나물’로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역사적으로도 숙주나물보다는 ‘녹두나물’로 더 많이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콩에서 싹이 터 나온 나물을 ‘콩나물’이라 부르듯 녹두에서 나온 나물을 녹두나물로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겠다.

보통 제주의 언어에는 예전 언어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우리나라 언어사(言語史)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곤 한다. 제주에선 ‘녹두나물’이 그대로 남아 숙주나물보다는 ‘녹듸ᄂᆞ물’이라 지금도 불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일반 식당에 밑반찬으로 녹듸나물이 자주자주 오른다. 육지에서 콩나물 반찬이 오르는 것만큼 말이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은 콩나물만큼이나 녹듸나물이 친숙하다.

보통 제사상에는 귀한 음식이 오르기 마련인데 콩나물은 제사상 근처에도 가지 못한 반면 녹두나물은 전국 어디서나 제사상에 오르는 것을 보아서도 예로부터 녹두나물이 어떤 위치였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주식(主食)이 쌀이 아니었던 제주에서 조, 보리, 메밀, 콩 등 잡곡류들의 위상은 쌀에 버금갔다. 콩류에도 대두뿐만 아니라, 팥, 녹두 등의 중요성 역시 매우 컸던 것은 당연했다.

‘제주에서 콩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왔다. 여름철 재해 피해에 참깨보다 안정적이고 노도역이 절감되며 맥류와 2모작을 할 수 있는 작물이다(중략)

녹두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고 내건성(耐乾性 : 가뭄에 견디는 성질)이 강하여, 성숙기에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기 알맞다. 또 생육기간이 길지 않으므로 조생종은 고랭지나 고위도지방에서도 재배할 수 있다.

(중략) 제주에서 녹두재배는 1975년 328ha에서 1988년에는 2,744ha까지 증가하였다. 이후 면적이 계속 감소하여 현재는 140여 ha에서 재배되고 있다. 녹두재배에서 가장 애로사항이 숙기가 일정하지 않아 일시수확이 안되고 3∼4회에 걸쳐 수확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수확인력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시수확이 가능한 품종보급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주도에서 녹두의 주산지는 구좌읍 김녕 지역이다.’(이성돈, 제주 콩류 재배의 역사. 헤드라인제주 2020.05.21.)

제주산 녹두(출처_식재료 올레몰 홍보사진)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제주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녹두나물은 콩나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녹두나물이 훨씬 더 보편적이다. 베트남 쌀국수에도 고명으로 얹는 게 숙주나물이지 않은가. 녹두나물에 비하면 콩나물은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조차 콩나물이 녹두나물의 위상을 앞지른 것은 고작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음식 맛없기로 소문난 지역을 손에 꼽으라면 제주도가 꼭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제주 출신의 한 인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것이야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기에 그러한 자평(自評)까지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다만 나물만 놓고 보자면 이렇다. 제주 나물은 육지에서는 드물지만 제주에선 아직도 흔하게 살아남은 나물이 있고, 육지에서도 흔하긴 하지만 제주에서는 좀 남다른 의미로 남아있는 나물도 있다. 그 나물 하나하나가 자극적인 양념을 최소화한 채 원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각자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나물 하나하나에 어떤 것은 순 제주어(濟州語)로 또 어떤 것은 오랜 옛 이름 그대로로 붙어있다. 그러니 제주의 나물은 맛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아주 귀중한 자료들이다. 물론 그중에 녹듸나물도 포함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풍성한 식재료들을 미처 글재료로 다 옮겨오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이쯤에서 한 단원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리고 짧은 총평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본다면 이렇다.

“제주는 나물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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