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나물이야기_수박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나물이야기_수박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10.2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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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은 엄연한 채소...제주에선 된장에 찍어 먹어
껍질 속 흰살 부분 무침 요리로 밑반찬 만들기도
현대적 재배방식 이전 '팟지' 수박 활용법이 시초
도내 수확량의 60%가 애월산...신품종 도입 추진
흑미수박 복수박 이어 애플수박 특화 작목 재배

이혼 소송을 위해 판사 앞에 선 신혼부부가 있었다. 첫 다툼의 원인이 된 것은 어이없게도 ‘감자’였다. 아내가 감자를 쪄 왔는데 소금을 찍어먹으라고 같이 가져왔다. 그런데 남편은 감자에 설탕을 찍어 먹어야지 무슨 소금이냐며 핀잔을 준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감자에 소금을 찍어 먹어왔던 아내 입장에선 감자에 설탕을 찍어 먹는다는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우리 집은 대대로 소금을 찍어 먹어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도 이에 질세라 “우리 집도 대대로 설탕을 찍어 먹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내는 남편에게 “거, 참... 대대로 이상한 집안이네...”했단다. 이에 질세라 남편도 “당신네 집안이야말로 대대로 이상한 집안!”이라며 응수했다. 결국 집안까지 들먹이며 싸움이 커져 이혼 소송에 이르게까지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연을 쭉 듣던 판사가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볼 땐 두 집안 다 이상하네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감자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데요...” 강원도에선 감자를 고추장에 찍어먹었다고.

수박껍질 된장무침(출처_사찰음식을사랑한사람들)

제주에선 수박을 된장에 찍어 먹었다면 감자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이다. 우선 찬찬히 따져보면 이렇다. 수박은 과일가게에서 팔지만 엄연한 채소다. 이런 채소들을 보통 과채류(果菜類)로 분류한다. 과채류는 말 그대로 열매를 먹는 채소를 뜻한다. 토마토, 딸기, 수박, 참외, 메론 등이 여기에 속하고 고추, 오이, 호박, 파프리카, 가지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니 채소를 된장에 찍어 먹었다고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수박과 참외가 비슷한데 참외는 또 오이와 비슷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두다 박 과(科)에 속한다.

수박을 된장에 찍어먹었다고 해도 설마 빨간 속까지 된장에 찍어먹었단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물론 아무 맛도 없는 덜 익은 수박을 쪼개서는 된장에 찍어서 먹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는 있다. 다만 보통은 수박 껍질 안쪽 흰 속껍질 부분이야기인데 중장년층에게는 이 부분을 활용해서 수박무침을 밑반찬으로 먹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니 그리 낯선 것은 아니겠다.

‘수박(학명: Citrullus vulgaris Schrad.)은 남아프리카 열대, 아열대의 건조한 초원지대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에 씌어진 〈연산군실록〉에 수박에 대한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널리 재배해왔던 것으로 추정하여 약 530년 전이고, 제주 지역은 조선시대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1950년대의 주산지는 조천읍 함덕과 신촌 지역으로 1970년대 이후 접목기술이 도입되지 않아 연작장해가 발생하면서 재배가 어려워져 감귤 등 다른 작물로 전환 되었다. 그 이후 자연적으로 애월읍 신엄리 지역으로 바뀐 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성돈, 제주 과채류 재배의 역사. 헤드라인제주 2020.03.05.)

문제는 제주 지형에 수박 재배가 맞는가이다. 수박을 재배할 때는 햇빛이 강렬할수록 당도는 올라가게 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제주가 월등하다. 한여름 제주 바다에서 아무 생각없이 웃통 벗고 놀다가는 햇볕 화상으로 며칠을 끙끙 앓아야 할 정도니 수박이 익기엔 딱 좋은 햇빛인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너무 햇볕이 강하면 수박이 터져버리는 열과 피해가 발생한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것이다.

수박은 또 습기에 취약하다. 찌는 듯 더운 날,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물에 수박을 동동 띄워놓고 물놀이를 즐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낭만일 뿐이다. 그렇게하면 수박의 당분이 물에 다 빠져나가버린다. 하물며 재배 중 잦은 비와 높은 습도는 어떨까? 당연히 당도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것이다. 게다가 탄저병 등 병충해에도 취약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여름은 기록적으로 긴 장마였다. 당연히 수박의 품질과 맛은 여러면에서 예년보다 덜했다. 문제는 제주의 기후특성상 평소에도 늘 습도가 높다는 것이다. 화산토라서 물빠짐이 좋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수박이 그 맛을 잃으면 그저 동그랗고 큰 오이에 불과할 따름이다. 제주의 수박이 현대적인 재배방식을 도입하기 이전까지는 상품성 떨어지는 ‘팟지’수박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이 팟지 수박들을 어떻게 할까? 곯거나 맛없는 속은 깨끗이 긁어내고 속껍질을 제주의 가장 만만한 양념이자 소스인 된장에 찍어먹거나 무치는 것이다. 그럼 훌륭한 밑반찬이 되었다.

몇 차례 언급했지만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당도가 올라간 제주의 고추는 금방 병충해가 들끓어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바탕으로 한 요리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반면 겨울철에도 발효균이 죽지 않아 얼마든지 맛좋은 된장을 만들 수 있었던 제주에서는 대부분의 음식이 된장과 연을 맺고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박 속껍질도 된장과 어우러지게 된 것이다.

여름철 제주공항에 내려 협재나 금릉, 곽지해변 쪽을 염두에 두고 서쪽으로 가다보면 조금 한적해진 일주서로 변에 수박을 놓고 판매하는 모습을 연달아 볼 수 있다. 그 부근에 다다르면 노점 뒤편을 슬쩍 너머 넓은 수박밭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가 제주도내 수박의 60%이상을 생산하는 애월읍 신엄리다. 그러니 이 수박들은 밭에서 바로 따서 파는 수박들이다. 제주의 수박들은 대부분 여기서 난다. 예전엔 육지로도 수박이 많이 나가서 신엄리 사람들은 감귤농사가 아니라 수박농사로 아이들을 공부시켰다고 할 정도였다.

한여름 신엄리에서는 수박축제를 열었다. 다만 행사홍보나 마케팅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제주에 살지만 수박축제를 언제 어디서 하는지 제 때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을 정도다. 아마도 이제는 직거래장터로 행사가 많이 축소된 느낌인데 올해는 코로나19영향으로 더더욱 썰렁한 느낌이다.

다만 신엄리에서는 새로운 품종의 도입 등을 통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껍질이 새까만 흑미수박도 그렇고 속이 노란 복수박, 미니 사이즈인 애플수박 재배도 새로운 노력들의 일환이다. 흑미수박의 경우는 당도에 있어서 일반수박보다 높은데다가 껍질이 얇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이점이 있다. 육지에서도 명품수박으로 알려져 호응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요즘엔 육지에서도 흑미수박 재배가 많이 늘어났다.

이에 제주도는 2018년부터 특화작목으로 애플수박을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1인가구가 늘어나고 다이어트나 외식이 늘어나면서 집에서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소비하기엔 부담스러운 시대라 수박의 구입은 늘 고민이 앞선다. 그런데 애플수박은 크기부터가 경쟁력이 높은 것이다. 심지어 애플수박은 이름대로 사과처럼 깎아먹을 수도 있다. 처음 봤을땐 영락없는 ‘개구리참외’인줄 알았다.

흑미수박(출처_제주농업기술원)
애플수박(출처_제주농업기술원)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수박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박의 종류는 훨씬 다양하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수박은 먹고나면 껍질이 늘 처치곤란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면 무게도 많이 나가고 부피도 크다. 그리고 왠지 아까운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밑반찬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주식으로 된장에 무쳐보는 것도 여름철 별미로는 딱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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