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나물이야기_물외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나물이야기_물외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8.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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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풍토따라 맛·모양 다른 토종오이가 제주선 물외라 불려
'오이'와는 다른 배불뚝이...제주만의 특별한 달달한 맛 선사
수분 많아 식감도 오이보다 좋고 된장의 짠 맛과 잘 어울려
늙은오이 '노각'과 달라...칼슘·섬유질 풍부 소화·신진대사 도와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도 재확산되고 있어 긴장감이 팽배하다. 전염병의 위기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의 이동에도 제약이 많이 따르고 그에따라 제한된 공간에서만 지내게 되는 시간이 길어져 적잖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여행이 고프다(?)는 이야기도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앞으로도 최소한 2~3년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것도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됐음을 전제로 했을 때의 예측이다.

해외여행을 10년 넘게 가보지 못한 필자도 갑갑함을 느낀다. TV에서조차 해외여행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예능프로그램이 종적을 감춘 까닭이다. 어차피 일평생 세계 곳곳을 다 다녀볼 수 없는 상황에선 TV로 보면 설명까지 덧붙여줘 오히려 여행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마저도 요즘은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기껏해야 그저 스페셜 방송이라는 재방송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여행을 못가면 미디어만으로도 충분할까? 결코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정신승리(?)일 뿐이다. 여행이 어디 유명한 장소를 시각적으로 보고 오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인가. 그곳의 모든 것을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그리고 미각으로 고스란히 느끼고 담아오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니 제한된 시각과 청각만으로는 만족이 안되기에 TV에서 한번쯤은 본 그곳을 일부러 직접 가보고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특히 미각적인 부분에서는 TV나 미디어로는 도무지 느껴지지가 않는다. 후각과 촉각도 마찬가지다. 세계 곳곳엔 먹을거리도 많고 각 나라마다 손꼽는 대표적인 음식도 많다. 세계가 일일 생활권이라는 현대 사회에서 진귀한 식재료를 구하려 마음만 먹으면 못 구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실제 그것을 구해다가 집에서 직접 요리해보면 진짜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주재료 뿐만 아니라 부재료는 물론 양념들 하나하나까지 전부 공수해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그 요리를 오랫동안 해왔던 이들의 능숙한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맛을 구현하기가 어렵다. 같은 사과라도 나라마다 생김새며 맛이 조금씩 다 다르다. ‘스페인 하숙’이라는 TV예능에서 요리에 능숙한 차승원도 그 흔하디흔한 파 한단을 스페인 마을에서 구하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결국 파 비슷한 걸 구입했는데 그것이 진짜 파였는지 아닌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적어도 식감이나 생김새가 우리가 알고 있는 파와는 좀 달라보였다. 해외의 수많은 한식당들이 제대로 된 맛을 현지에서 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사연들이 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를 자주 여행하는 이들이 제주가 제주다운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주민의 눈으로도 그 이야기에 공감하며 똑같은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아직도 제주에는 제주다운 것이 많다. 그것은 그저 TV나 미디어를 통해서 제한된 시각과 청각으로는 다 설명 못할 미각, 후각, 촉각적인 부분에서 그렇다.

제주 물외는 시중에 나와있는 오이보다 배가 불룩하다. (출처_제주감귤 공샘이농장 블로그)
[사진1-1]제주 물외는 시중에 나와있는 오이보다 배가 불룩하다. (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br>
제주 물외는 시중에 나와있는 오이보다 배가 불룩하다. (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제주에는 ‘물외’라는 것이 있다. 무미건조하게 설명해본다면 ‘오이’다. 맛에 둔감한 필자같은 이들이 맛보기엔 그저 ‘오이’다. 그러나 그저 오이라고 설명하기엔 ‘물외’만의 특별한 제주 맛이 있다.

‘1970년대 초로 기억한다. 여름이면 마을 가까운 밭에 물외가 지천이었다. 길을 가다가 물외 하나 따서 먹어도 큰 소동이 없던 시절이었다. 물외 하나를 반으로 뚝 꺾어서 입으로 대충 껍질을 벗겨낸 후 먹으면 달달했다.(중략)

이듬해 여름부터 물외가 사라지고 오이가 번지기 시작했다. 농가들이 너도나도 물외 대신 오이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대유행이었다. 마을 주변에 물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오이 줄기가 땅에 세운 대나무나 나무막대를 휘감고 올라가며 오이를 만들어 냈다.

물외는 땅에서 자란다. 땅에는 농촌 냄새나는 이런 저런 퇴비도 있다. 물외는 퇴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이는 나무막대에 올라가며 퇴비와 거리를 뒀다. 오이도 물외처럼 구부러진 것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은 키도 크고 늘씬한 몸매를 지녔다. 

물외는 농촌사람이고 오이는 도회지 사람처럼 보였다. (중략)

수분이 많은 물외의 씹는 질감은 오이에 비할 데가 아니다. 오이는 된장에 찍어 먹어도 융합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지만 물외는 다르다. 된장의 짠 맛을 물외의 수분으로 녹이면서 맛이 더 살아난다.

그러니 술상에서도, 밥상에서도 나의 손은 늘 물외로만 간다. 여름이 맛있는 것이다.’(박상섭, 물외의 추억. 제주일보 2019.08.18.)

토종오이는 조선오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각 지역으로 퍼져서 각각의 풍토에 적응해 아주 조금씩 모양과 맛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지역 이름과 함께 청주오이, 강화오이... 이런 식으로 불려진 것이다. 그리고 제주에선 ‘물외’라 불렀고 다른 지역의 물외와 구분하기 위해 ‘제주 물외’라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외’는 ‘오이’의 변형된 말이다. 그러니 똑같이 쌍떡잎식물 합판화군 박목 박과에 속한 ‘참외’의 ‘외’가 이해가 됐다. 경험을 떠올려보니 맛없는 참외는 오이맛이었다.

노각(늙은 오이)을 물외라 부른다고 잘못 알려진 정보도 많다. 하지만 노각은 노각일 뿐 물외가 아니다. 물론 늙은 물외도 있긴 하지만 물외는 시중에 나와있는 오이보다 배가 불룩하다. 누래지도록 늙은 오이가 커질때로 커져 물외의 모습과 비슷해지니 혼동이 있는 것인데 못말리는 것은 일상에서 제주사람들도 명칭에 대해서는 크게 구애받지 않고 혼동해서 그냥 쓴다는 것이다.

‘노각은 일명 늙은 오이라고 하는데 일반 오이보다 2~3배 정도가 굵고 길이는 10~15㎝ 뭉뚝하게 생겼다. 제주에서는 ‘물외’라고 하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물외는 수분 함량이 90% 이상으로 아주 많고 칼슘과 섬유질이 풍부해 여름철 갈증을 해소하는데 좋은 채소 중 하나다. 

물외는 칼륨이 많아 체내 노폐물 배출에 도움이 되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줘 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또 찬 성질이 있어 목이 마르고 목구멍이 아플 때 섭취하면 좋다. 민간요법으로는 여름철 더위로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될 때 물외 씨 부분을 굵어낸 뒤 즙을 내어 마시면 곧 가라앉는다고 한다.

물외는 여러 가지 식재료로 이용하는데 그 중 가장 으뜸은 자리물회 만들 때 오이 대용으로 생채로 이용하는 것이고, 날 것으로 이용해 무침을 할 때는 고추장 양념으로 무쳐야 특유의 쓴 맛을 제거 할 수 있다. 예전에 제주에서는 여름철 밭에 갈 때 물외와 된장만 있으면 냉국과 생채로 밑반찬을 해결했었다. 물외는 다른 채소와는 달리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어린아이를 “물외처럼 빨리 자란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허종민, 여름 제철 채소 노각(물외)을 아세요? 미디어제주, 2014.05.22.)

[사진2] 제주에서 여름 점심에 물외무침을 반찬으로 식당에서 몇 번 먹어봤는데 달달하게 무쳐서 입맛에 꼭 맞았다. (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br>
제주의 식당에서 여름철 점심 반찬으로 물외무침을 몇 번 먹은 적이 있는데 달달한 맛이 입을 즐겁게 했다. (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사진3]제주 음식에 오이가 들어가는 것들은 원래는 물외가 들어갔던 것이다. 특히 더운 여름철의 냉국엔 오이보단 물외가 더 제주의 맛에 가깝다.(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br>
제주의 오이 음식에는 원래 물외가 사용됐다. 특히 더운 여름철 냉국엔 오이보단 물외가 더 제주의 맛에 가깝다.(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제주 음식에 오이가 들어가는 것들은 원래는 물외가 들어갔던 것이다. 특히 더운 여름철의 냉국이 그러하고 물회(물회에 오이대신 물외가 들어갔다는 것인데 글자가 비슷해 혼동스러울 수도 있겠다)가 그랬다. 그리고 물외무침이 그렇다. 제주에서 여름 점심에 물외무침을 반찬으로 식당에서 몇 번 먹어봤는데 달달하게 무쳐서 입맛에 꼭 맞았다. 목구멍으로부터 올라오는 몸속의 열기를 물외무침이 진화(鎭火) 하는 느낌이랄까. 아주 정성을 기울인 식당에선 여기에다가 배를 썰어 함께 넣었는데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오이였는지 물외였는지 알 길은 없었다. 다만 오늘 오이는 제주 물외이니 먹어보라고 단골 이주민에게 권해보는 식당 주인의 넉넉한 마음씀이 있어서 그것이 물외인지 알고 먹은 것이다. 하지만 먹어보면 안다. 오이무침과는 묘한 차이를...

이젠 제주에서도 물외보기가 쉽지 않다. 상품성에 있어서 오이가 훨씬 앞서기 때문에 어쩌다 먹어볼 수 있는 것이 돼버렸다. 하지만 제주의 땅과 제주의 물과 제주의 하늘밑에서 자란 토종 물외가 얼마 안남은 진짜 제주 맛 아닐까?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요즘, 사람들이 비행기 타고 여행할 수 있는 제주로 눈을 돌리고 들 있다. 제주에 직접 와 제주만의 미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팁 하나가 바로 제주 물외에 있다. 제주는 점점 아열대에서 열대로 가는 느낌이다. 여름철 제주 여행은 바깥을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에선 결코 쉽지가 않다. 더위먹기 딱 좋은 여름 제주여행의 점심은 제주물외 무침이 나오는 제주밥상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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