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무칼로리 다이어트식품_우뭇가사리
[류양희의 수다 in Jeju]-무칼로리 다이어트식품_우뭇가사리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6.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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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소의 털처럼 생겨 牛毛라고 불린데서 유래된 이름
전국 생산량 90%가 제주산...주요 수출국 일본선 '1등급' 대접
검붉은 우뭇가사리 햇볕에 말린후 삶아 굳힌 불투명 묵이 '한천'
미생물배지·화장품·활성탄대체재로...치매치료 의약품으로도 활용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 사회가 누리는 풍요가 옛날 임금들이 누리던 것보다도 훨씬 더 풍요롭다고 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가끔씩 우리집 식탁에서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이것이 곧잘 화두가 된다. 보통은 매끼 육류 반찬만 찾는 편식쟁이 큰아이에 대한 훈계 차원에서 시작하는데 산만하기 이를데 없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곧잘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어가곤 해서 아직까지 결말을 못 맺고 있다.

수라상을 12첩 반상이라 한다. 그러나 정말 매끼를 그렇게 먹었을까? 금욕에 가까운 절제된 삶을 살았던 조선의 정조는 매끼 반찬을 4가지가 넘지 않도록 했다한다. 그의 이런 습관은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배웠다하고 반찬도 보통 나물 위주였다하니 적어도 영조와 정조 임금보다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더 잘 먹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현대에 들어서기 이전까지 동서양의 대부분은 하루 두 끼 식사가 보통이었다고 한다.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하루 두 끼에다가 농번기 같은 노동량이 많을 때에는 점심으로 보충했는데 이 때에는 간단하게 허기를 달랠 정도로 먹는 게 보통이었다. 왕실에서는 하루 다섯끼를 먹었다고 하지만 점심을 간단하게 먹는 것은 이런 흐름과 같았다.

옛날 임금들이 여름철에 즐기던 우무냉국(출처_제주정석원농장 블로그)

임금들은 이 더운 여름, 점심에 무엇을 먹었을까? 여름철 임금들이 즐겼던 것 중에 하나가 ‘우무 냉국’이었다. 특히 정조 임금이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우무는 우뭇가사리를 의미한다. 제주에서는 ‘우미’라고도 부르는데 우뭇가사리가 ‘소의 털’처럼 생겼다고 우모(牛毛)라고 부른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뭇가사리는 그 자체로 무침을 하거나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기도 하지만 보통은 묵으로 만들어먹는데 이것이 바로 ‘한천’이다. 검붉은 우뭇가사리를 탈색이 될 때까지 햇볕에 말린 후 이것을 삶은 물을 굳히면 묵처럼 되는데 이 때는 불투명에 가까운 젤리형태가 된다.

검붉은 우뭇가사리를 햇볕에 말린 후 삶아 굳히면 불투명한 젤리형태가 된다. (출처_제주정석원농장 블로그)

한천은 아무 맛이 없다. 생긴 것이 젤리나 푸딩을 연상시키기에 그 실망감은 아주 컸다. 그런데 우리가 모든 음식을 꼭 맛으로 먹지는 않는다. 밀가루나 쌀밥도 사실 아무 맛이 없다. 오래 씹으면 단 맛이 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밀가루로 된 면이나 쌀밥만 먹는 이는 없다. 밀면은 그것을 어떤 국물에 넣어 끓이느냐이거나 어떤 양념과 어우러지느냐가 관건이다. 쌀밥도 어떤 반찬과 함께 먹느냐가 중요하다. 한천도 마찬가지다. 한천 자체엔 아무 맛이 없다. 하지만 한천과 어우러진 각종 채소와 양념의 맛으로 함께 먹는 것이다.

말린 우뭇가사리와 한천(전복마을 업체홍보사진)

한천은 신비롭기까지한 그 불투명한 빛깔이 눈을 즐겁게 하고 씹는 탱글탱글한 식감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여름철 콩국이나 냉국에 넣어보면 그 투명한 빛은 꼭 얼음을 연상시켜 시원해 보인다. 실제로 얼음도 함께 어우러지면 시각적인 청량감은 더 끌어올려진다.

‘조선 세종 7년(1425년)에 편찬되기 시작한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울산 기장현의 '토공(土貢)으로 우모(牛毛) 등이다'고 하여 우뭇가사리가 처음 기록되었다. 또 세조 때에는 국가의 구황식품으로도 여겼다. 또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진도 특산물로 소개되었다. '홍길동전' 저자인 허균이 1611년에 지은 '도문대작'에서는 "바닷가에서 나는 해초에 우모(牛毛)라는 것이 있는데, 열을 가하면 녹기 때문에 그 성질을 이용해 묵으로 만든다."고 하여 그 유래를 언급한 바 있다.

특히 1814년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 에는 '해동초(海東草)'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바다의 풀로 그 모양새와 제조방법까지 적었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우뭇가사리를 깨끗이 씻어 쌀뜨물에 3시간 담갔다가 약간 끓여 대야에 옮겨 담고 짓이겨 다시 솥에 넣어 끓이며 찌꺼기를 제거한다. 응고된 것을 알맞게 썰어 죽순, 버섯, 무, 생강, 상치, 미나리 등을 잘게 썰어 쟁반에 담고 초장을 쳐서 먹는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족편이다."라고 우무묵인 수정회(水晶膾)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을 적었다.

우무묵무침 (전복마을 업체홍보사진)


일제강점기 때의 최영년은 '해동죽지'에서 "우모초(牛毛草)는 해마다 여름이면 남해안에서 생산되는데 우뭇가사리로 투명한 우무포(牛毛泡)를 만들어 궁궐에 진상하며, 묵을 가늘게 썰어 초장을 쳐서 냉탕으로 만들어 마시면 상쾌하기 때문에 더위를 씻을 수 있고 갈증도 덜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왕의 여름음식 ‘우무냉국’, 자영스님, 충북일보 2018.8.20.)

우뭇가사리는 전국 생산량의 90%가 제주산이다. 제주에선 2016년 735톤, 2017년 2421톤, 2018년 1023톤, 2019년 586톤을 채취했다. 수확량의 차이가 나는 것은 귤처럼 해갈이를 해 2~3년을 간격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일본으로 수출하는데 일본에서도 제주산 우뭇가사리를 1등급으로 인정한다. 제주에선 4월에서 6월까지가 한창인데 해녀 1년 소득의 절반을 우뭇가사리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때 쯤 해녀들은 예민해진다. ‘봄 잠녀(潛女, 해녀)는 건들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천은 열량이 없다. 당연히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한천을 코리아 디저트 푸딩으로 관광 상품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하지만 우뭇가사리는 단순히 음식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미생물 배양에 쓰이는 배지로도 활용하고 화장품이나 활성탄 대체재로 주목받고 있다. 치매 치료에도 효과가 확인됐고 각종 의약품으로도 활용된다.

임금보다도 더 풍요롭게 사는 요즘, 임금이나 즐겨먹었다던 귀한 식재료나 음식들은 잠깐 손가락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래도 여전한 것은 ‘수라상 마케팅’이다. 임금님 밥상에 올랐던 쌀이 여전히 인기이고 임금님 밥상에 올랐다던 무엇무엇이라고 하면 여전히 일반 사람의 주목을 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로 제주의 우뭇가사리도 있다. 그런데 탐라가 육지에 복속된 이후 역대 왕들도 공통적으로 못해본 것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제주를 직접 여행하는 것이다. 제주에 여행와 우뭇가사리 요리를 맛보았다면... 그건 왕보다 한수 위가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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