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멸치(2)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멸치(2)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1.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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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젓'은 쉽게 부패하는 멸치 오래 보관하기 위한 전통방식
제주 흑돼지 오겹살구이는 강렬한 향 '멜젓'과 먹어야 제맛
갓잡은 멸치로 끓인 '멜국' 깊은 맛과 '생멜 조림'도 밥도둑

제주에서는 꽃멸치와 멸치를 다같이 ‘멜’이라 부른다. 하지만 ‘멜’을 ‘멜치’라고도 부르니 ‘멸치’와 크게 다른 이름은 아니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는 ‘멜치’를 ‘며르치’ ‘메르치’라고도 부르니 이름은 거기서 거기다.

제주에서는 ‘멜’로 젓을 담근다. ‘멜젓’이다. 물론 멸치젓갈이 제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장철에 흔히 넣는게 멸치액젓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대화된 공정을 거친 멸치액젓만을 생각했다가 멜젓에 큼지막하게 통으로 담겨있는 ‘멜’을 보고나면 아주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멜젓이라고 모두가 육안으로 볼 정도의 통 ‘멜’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이미 완전히 양념 속에 삭아들어서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많다. 게다가 원래 다른 지역 멸치젓갈에도 멸치가 통으로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멜젓’을 직접 맛 한 번 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바로 양치를 하더라도 하루종일 입안에서 멜젓의 강렬한 향이 남아있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회적인 입맛으로는 멜젓의 강렬한 맛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제주 흑돼지 오겹살 구이를 먹을때에는 한쪽에 멜젓을 함께 놓아 끓이면서 바로 여기에 찍어먹어야 제대로 된 제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제주 흑돼지 오겹살 구이를 먹을때에는 한쪽에 멜젓을 함께 놓아 끓이면서 바로 여기에 찍어먹어야 제대로 된 제주의 맛을 느낄 수 있다.(출처_제주명품 멜젓(꽃멸치젓갈) 홍보사진)
제주 흑돼지 오겹살 구이를 먹을때에는 한쪽에 멜젓을 함께 놓아 끓이면서 바로 여기에 찍어먹어야 제대로 된 제주의 맛을 느낄 수 있다.(출처_제주명품 멜젓(꽃멸치젓갈) 홍보사진)

멜젓은 보통 봄멸치를 소금에 버무려 한두달 숙성시킨 후 고춧가루나 다진마늘, 풋고추 등에 양념해 먹는다. 멸치는 잡은 후 바로 죽기 때문에 즉시 삶는 과정을 거친 후 말리는데 이것을 ‘니보시(煮干し)’ 처리라 하며 보통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방식으로 본다.

다만 이보다 훨씬 앞선 조선후기 기록들이 있어서 멸치 건조의 역사와 관련해 논란이 팽팽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멸치하면 우선 말린 멸치부터 떠올릴 만큼 보편화된 것은 아니어서 마른 멸치가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멜젓은 쉽게 부패하는 멸치를 오랜 기간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고안해 낸 오래된 전통 방식이라 하겠다.

멸치는 부패가 빠른데다가 일단 오래되면 비린내도 강하기 때문에 멸치를 바로 잡은 것이 아니면 국에 넣어 끓여먹기가 힘들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그게 가능했으니 이름하여 ‘멜국’이 그것이다. 멜국 역시 제주에서의 다른 생선국 끓이는 법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그러나 다시국물을 내기 위해 일부러라도 마른 멸치로 육수를 끓이는데 신선한 생멸치가 들어간 국은 얼마나 깊은 맛이 날까를 생각해본다면 그 선택에 후회는 없지 않을까? 마른 멸치로 육수를 낼 때도 그러하듯 생멸치로 국을 끓일때도 머리와 내장은 제거한다. 그러니 비린내나 쓴 맛 걱정은 안해도 된다.

멜국(출처_VISIT JEJU 앞뱅디식당 홍보사진)
멜국(출처_VISIT JEJU 앞뱅디식당 홍보사진)
(사진위왼쪽부터 시계방향)
멜지짐, 마른멜지짐(출처_제주인의 지혜와 맛 전통향토음식),
멜튀김, 멜조림(출처_VISIT JEJU 앞뱅디식당 홍보사진)

제주에도 당연히 멸치조림이 있다. 그것을 ‘멜지짐’이라 불렀는데 원래 멜지짐은 흔히 생각하는 멸치볶음과 비슷한 개념으로 생멸치로 하는 멜지짐과 마른 멸치로 하는 ‘마른멜지짐’이 있다.

다만 지금 제주의 일반 식당에서 하는 ‘멜조림’은 갈치조림이나 고등어조림 같은 양념 조림이다. 생멸치로 하는 조림이니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밥도둑으로 소문이 났는데, 반건조된 양미리로 조림을 해도 맛있으니 생멸치 조림이라면 그 맛이 어떨지는 그저 상상에 맡기겠다.

그밖에도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현대음식으로 멜튀김이 있어 주전부리 음식으로 먹어볼 만 하고 제주 멸치에 대해서 알고난 후 먹는 제주에서의 멸치국수는 또 다른 맛이지 않을까 다시 권해보고도 싶다. 제주시 국수거리에서 고기국수 못지않게 멸치국수 원조집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녕에는 예로부터 ‘멜후림소리(멸치 후리는 노래)’가 노동요로 내려오고 있어 제주 무형문화재 10호로 지정됐다. 제주에서 일상의 삶이 어떻게 멸치와 밀접하게 이어져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멸치 또한 우리의 식습관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재료다. 하지만 일상적인 식재료들에 대해서 평소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제주에서의 멸치를 그저 일상적인 식재료라고 스쳐보기엔 굉장히 다른 맛과 매력이 있다. 비로소 제주 멸치에 대해서 조금 알고 돌아본다면 제주의 멸치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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