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 이야기_돌문어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 이야기_돌문어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12.10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에는 바람 여자 돌도 많지만 문어도 많아
라면 짬뽕 짜장 심지어 돈가스에도 문어가 들어가
비늘 없는 물고기 중 유일하게 제사상에 올려져
잔치상에도 빠지지 않아...스페인 뽈뽀는 쇠고기와 비슷

(일주일에) 하루라도 라면을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우리집 식구들 이야기다. 제주에 내려와 첫 한 달 동안 혼자 생활할 때, 정말 한 달 꼬박 저녁을 라면으로 때웠다. 육지의 살림이 아직 내려오지 않아 밥솥도 없어 남은 밥을 보관할 방법도 없는데다가, 아침밥은 거르고 점심은 출근해서 먹으니 저녁 밥 한 그릇 짓기엔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물 맞춤부터가 쉽지 않아 그렇게 지냈다.

밥이 먹고 싶은 날에는 즉석밥 한 그릇을 라면에 말아 먹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희한한 건 한달 내내 라면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었다. 여러 라면을 번갈아먹는 것도 아니다. 매운맛을 싫어하는 탓에 꼭 류현진이 광고했던 라면의 순한맛만 먹는데 먹어도 먹어도 맛있다.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개발한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1910~2007) 닛신식품(日清食品)회장도 생전에 평생을 점심식사로 라면을 먹었다고 하는데 실제 해보니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이쯤되면 라면 중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맛의 대표적인 인스턴트 라면으로 제각기 다른 손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지같다. 표선에서 맛본 해물라면에도 문어가 들어갔다.

그런데 라면 중독자로서 처음 제주에 내려와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문어라면’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닷가에는 해녀 할망들이 해녀 식당을 열어 해산물들을 바로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여럿 있는데 보통 이런 식당에 빠지지 않는 것이 ‘문어라면’이다. 해녀 할망들이 바다에서 직접 거둬온 문어로 끓여주는 라면 맛은 어떤 맛일까? 정답은 '할망 손맛에 따라 다 다른 맛'이다.^^

유럽 와인이 왜 그렇게 유명할까? 만드는 사람마다, 만든 장소마다, 만든 시기마다 각기 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김치가 왜 그렇게 유명한가? 역시 만드는 사람마다, 만든 시기마다 만든 지역마다 맛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표준화되지 않은 세계에서 유일한 맛을 보게되는 것이니 그 희소성의 가치는 대단한 것일텐데,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맛의 대표적인 인스턴트 라면으로 제각기 다른 손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지가 아니겠느냐고 한다면 지나치다못해 흰소리가 되고 말까?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많아 젊은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월정리 바닷가에서 젊은 입맛에 맞춰 개량한 문어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해물라면이었는데, 각종 해물이 잔뜩 들어간 라면의 정중앙에 문어가 한 마리 떡하니 얹어져 있었으니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신기한 것은 해물로 잔뜩 뒤덮여 라면 면발은 뒷전인데 나중에야 면발을 건져 먹는데도 면이 별로 불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면중독자 넷이서 먹는데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가격이 라면치고는 비싼 것이 흠이었는데 들어간 해물을 따져보니 딱히 비싼 것도 아니었다. 며칠 후 집에서 생물 문어를 사다가 라면을 끓여보려 했으나 가격을 보고는 바로 계획을 접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월정리 바닷가에서 젊은 입맛에 맞춰 개량한 대왕해물짬뽕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 각종 해물이 잔뜩 들어간 라면의 정중앙에 문어가 한 마리 떡하니 얹어져 있었으니 맛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제주에 내려와 이렇게 저렇게 인연이 맺어져 하나 둘 지인이 늘어가고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분식집을 차렸다. 가게는 작았지만 인테리어도 세련됐고 무엇보다 김밥과 라면의 수준이 소위 ‘강남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해물라면을 끓이는데 역시나 문어가 떡하니 들어간 것을 7000~8000원선에 팔았다. 비결을 물으니 새벽마다 성산에 가서 바다에서 직접 문어를 건져온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이주민으로서, 아마추어인 그가 그 정도로 건져올 정도라면 과연 제주에 문어가 얼마나 많다는 말인가.

한동안 문어라면이나 문어 들어간 해물라면의 매력에만 푹 빠져 살다가 짬뽕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원래 매운맛을 싫어하는 탓에 짬뽕을 그리 즐겨하지 않았는데, 맵지 않으면서도 진한 짬뽕 국물을 한번 경험하고 나서는 한동안 문어 들어간 짬뽕만을 찾았다.

성산의 모구리 야영장 인근 ‘해적’이라는 중식당이었다. 이곳의 가장 간판 메뉴는 ‘보물섬 짬뽕’이다. 원래 이 메뉴를 처음 내놓았을땐 짬뽕에 문어가 들어갔다. 해물라면에 들어가는 모든 해물이 다 들어가는데다가 면발도 중면으로 식감이 라면보다 앞섰다. 게다가 가격이 그야말로 중식당에서 제일 저렴한 짬뽕값이니, 맛과 가성비 면에서 해물라면이나 문어라면을 압도했다.

성산의 모구리 야영장 인근 중식당 ‘해적’의 간판 메뉴 ‘보물섬 짬뽕’

다만 현재는 문어 가격의 압박으로 문어 대신 한치를 주로 사용한다. 보물섬 짬뽕을 개발한 식당 사장 역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한동안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생전에 비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고인의 친척 아우가 여전히 맛을 내고 있으니 꼭 한번 가볼만 하다.

이렇듯 제주는 라면이나 짬뽕에도 넉넉히 넣어먹을 만큼 문어가 많다. 심지어 문어짜장, 문어돈가스도 있다. 물론 제주에만 문어가 많은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주에 와서 문어를 제대로 맛보고 있는 중이다. 제주는 문어를 모르던 이도 춤추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잡히는 문어는 크게 대문어와 참문어로 나누어볼 수 있다. 색이 붉어서 피문어라고도 불리는 대문어는 말그대로 크기가 커서 사람 크기 만한 것도 있을 정도다. 몸무게도 50kg에 이르는 것도 있다하니 이런 문어를 바다 속에서 만난다면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대문어는 우리나라 동해안에 주로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잡히는 문어는 크게 대문어와 참문어로 나뉘어진다.(출처_tvN 수요미식회 방송화면)

참문어는 돌 틈에서 주로 살아 돌문어라고도 불리고 왜문어라고도 불린다.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편이지만 실은 우리나라 전 연안에 걸쳐 고루 산다. 크기는 딱 라면냄비에 얹어지기에 좋을 정도 크기다. 보통 3kg를 넘지 않는다. 제주에선 돌문어로, 더 익숙하게 불리는 이 참문어가 바다에 흔한 것이다.

문어는 잡기가 쉽다. 섬마을 체험을 컨셉트로 한 TV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가끔 보았듯이 밤에 적당한 미끼를 통발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거두어보면 문어 한 마리 정도는 들어가 있다. 흔한데다가 쉽게 잡을 수도 있으니 문어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문어라면’ 같은 것도 생겨나게 되는 것이리라.

전통적으로 보면 제주에서도 제사상에 문어가 올라간다. 물론 제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경상도 쪽은 제사상뿐만 아니라 잔치상에도 올리기로 유명하다. 경상도 지역 외에도 바다를 접하고 있는 지역이라면 제사상에 문어 올리는 일은 흔할 것이다.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제사상에 올리는 걸 꺼려하는 것이 보통인데 문어만큼은 예외였다.

문어(文魚)는 선비를 상징하는 먹물을 뿜기 때문에 이름에 ‘글월 문(文)’이 들어갔고 그러한 이유에서 제사상에 올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도권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 점점 제사지내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반면 제주는 여전히 집안 연중행사 중 제사가 가장 우선시되고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제사상에 올라간 문어숙회를 접할 기회가 잦다.

문어숙회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기름장에 찍어먹든지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인데, 제사음식 영향인지 문어는 날로 먹기보다는 이렇게 숙회로 먹는 것이 보통이다. 문어는 잘못 삶으면 질겨진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래서 길어도 보통 3분~5분을 넘기지 않는다.

문어숙회(출처_VISIT JEJU ‘순정문어’식당)

그런데 스페인식 문어요리 뽈뽀(pulpo a feira)는 한 시간 이상 익혀 문어의 콜라겐과 젤라틴이 녹아들도록 해 오히려 부드러워지게 한다. 물론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어를 이렇게 오래 삶아 부드럽게 하면 문어 특유의 맛은 사라지고 소고기의 식감과 비슷해진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지인들로부터 낚시 같이 가자는 제안을 몇 번 받아본 적이 있다. 낚시에는 별 재미를 못 느끼는데다가 출렁이는 배에 공포감이 있어 매번 꺼려하고 있다. 게다가 물고기를 낚더라도 이것이 먹을 수 있는 고기인지 먹을 수 없는 고기인지, 잘못 잡았다가 물고기에 쏘여 통증을 얻게 되지나 않을는지 등등의 괜한 걱정을 사서 하게 되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아 앞으로도 별로 가 볼 생각은 없다.

그런데 문어와 관련해서도 핑계가 하나 더 늘었다. 파란고리문어 말이다. 보통 열대바다에서 사는 이 문어가 해수온도 상승으로 이젠 제주에 거의 정착하다시피 했다. 이 문어는 온 몸에 파란 고리 무늬가 있지만 평소에는 보호색으로 위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돌문어인 줄로만 알고 잘못 만지게 된다. 그런데 이 파란고리문어는 청산가리의 10배, 복어독의 1000배에 달하는 독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문어에 대해 잘 모르는 여행객들은 바닷가 돌틈에서 문어를 발견했거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문어의 조상은 외계 생명체였다는 주장이 2018년 저명한 과학자들로부터 제기된 바 있다. 그만큼 문어의 외양이나 습성이 독특한데다가 다른 생명체들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 문어의 심장이 3개라는 사실이라든지, 지능이 높다는 점, 뇌의 명령 없이도 스스로 판단을 내려 움직일 수 있다는 문어의 다리들... 등 몇 가지만 나열해 놓고 보아도 참 독특하다. 다만 이 독특한 것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다보니 그 독특함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뿐이겠다.

그런데 어디 문어뿐이겠는가. 제주에선 일상화된 독특함이 아직 곳곳에 많이 숨겨있다. 아마도 그런 신비로운 일상이 오늘도 제주에서 살아가는 재미인지도 모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