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해산물 이야기_황게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해산물 이야기_황게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4.01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강 참게, 서해 꽃게, 동해 대게가 있다면 제주엔 황게가 유명
표준 이름은 '금게'... 크기 작지만 속은 알차고 껍질 부드러워
내장 쓴맛 강해 게딱지는 제거... 비린맛 덜한 쫀득한 감칠맛 일품
성읍민속마을 최가네 돌집식당 '황게 간장게장' 강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갑각류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밥도둑이 되었다.』

아름다운 시어로 장난을 친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도 없지 않지만 뒤늦게 제주에서 간장게장의 맛을 알아버리고 난 다음 딱 그 심경을 표현하기엔 김춘수 시인의 작품만한 것이 없었다.

유년시절부터 집에서 간장게장은 아주 지겹도록 봐왔다. 지금은 꽃게로 간장게장을 많이 담그지만 경기도 김포가 본 터전이었던 집안에서는 늘 참게로 간장게장을 담갔다. 참게는 민물에서 살지만 알은 바다에서 낳는다. 그러니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오가는 참게가 한강 하구에 위치한 김포에서 흔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기에 참게는 게 중 으뜸으로 쳤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어린 입맛에는 간장게장의 참맛을 잘 몰랐다. 그저 집게발이 무시무시했을 뿐이고, 입안에서 껍데기를 깨뜨려 입 밖으로 뱉어내야 하는 일이 성가실 따름이었다.

편식을 해도 누구하나 뭐라하지 않을 어른이 되어서는 더욱 게장을 입에 댈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김포에서 강 건너 북쪽인 파주와 일산에서 살게 되면서 우연찮게 또 간장게장을 접해볼 일이 생겼다. 파주와 일산의 참게는 바로 김포의 그 참게였다. 사람들이 간장게장을 두고 하도 밥도둑, 밥도둑 하길래 다시한번 맛봐야겠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한정식 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이런 낭패감이라니... 비릿한 맛으로 순간 비위가 확 상했다. 체면상 곧 뱉지도 못하고 한동안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공기밥 뚜껑에다가 슬쩍 뱉어놓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성인이 된 후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간장게장 경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의 최가네 돌집식당 간장게장 백반 상차림 (출처_돌집식당 홍보사진)

제주에 내려와보니 거의 모든 해물요리에 게가 들어간다. 그런데 어릴 때나 지금이나 게를 먹기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밥 한 끼 먹기 바쁜데 꼭 이 번잡스런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 싶었다. 그것 먹는 시간에 먹을 다른 맛있는 반찬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맛은 둘째치고라도 들인 수고에 비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너무 적다는 것도 큰 불만 중 하나다.

그런데 먹기 싫은 음식을 꾸역꾸역, 그것도 맛있다는 표정까지 지어가며 먹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어려운 상사들 앞에서 그 음식을 먹는 것이다. 제주에 내려와 상사들과 점심을 먹는데 육지 사람이라고 늘 친절하게 이것저것 잘 챙겨주는 상사 한 분이 하필 간장게장을 권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꼭 먹어봐야 한다며 직접 젓가락으로 건져 필자의 밥 위에까지 얹어 주면서 말이다. 그러자 다들 반응이 궁금했는지 모든 시선은 나에게 집중된다. 아...

어금니 한번 꽉 깨물고 나서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우두둑 소리와 함께 살들이 밀려나오는데, ‘아! 어쩌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였을까? 생각보다 첫 느낌이 비리지 않았다.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고나니 간장게장이란게 아주 짜지도 않고 적당히 짭조롬한 것이 딱 밥 한 숟가락 생각나게 만든다. 그래서 얼른 밥 한 숟가락을 떠 넣었는데 따뜻한 밥 한 술과 어우러지는 차가운 게살들의 촉촉한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남은 고민은 역시 입 속의 껍데기 처리 문제였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난감했는데 전에 먹어보았던 게장들과 달리 껍질이 그렇게 딱딱하지 않은데다 어릴 때와는 달리 몇 번의 혀굴림만으로도 능숙하게 잘 분리되어 깔끔하게 뒤처리까지 잘 되었다.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게장을 예전부터 능숙하게 잘 먹었던 사람처럼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간장게장을 즐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밥 한 숟가락 더 뜨려는데... 어라? 밥그릇에 밥이 없다.

성읍민속마을에 있는 돌집식당 최가네 간장게장(왼쪽)과 주인장 (출처-최가네 돌집 간장게장 홍보사진)

필자에게 간장게장의 맛을 알게 해 준 그 식당은 성읍민속마을에 있는 '돌집식당'이다. 실제로 식당 건물 외벽이 다 돌로 덮여 있다. 성읍민속마을에서 ‘최가네’하면 유지들이어서 그 일가들이 곳곳에서 큰 사업장들을 여럿 운영하고 있는데 돌집식당 역시 최가네다. 특히 돌집식당은 일찍부터 젊은 딸이 물려받아 장사를 하는데, 이 젊은 여사장의 이름을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 얼굴만큼 예뻤기 때문이다. 바로 그 유명했던 탤런트와 같은 이름의 ‘최진실’이다. 이 젊은 사장은 ‘밥 잘사주는 누나’ 컨셉트로 친절하게 손님 한 사람 한사람을 맞이해주는데 그 친절에 ‘진실’이 묻어난다.

제주 황게(금게)(출처_새우몰 홍보사진)

한강에는 참게가 있고 서해에는 꽃게가 있고 동해에는 대게가 있다면, 제주에는 황게가 있다. 그래서 이 집 간장게장은 꽃게가 아니라 제주의 ‘황게’로 게장을 담근다. 제주에서 잡히는 게가 ‘황게’이기 때문이다. 이 집 뿐만 아니라 제주의 간장게장은 대부분 ‘황게’로 담근다.

‘황게’의 표준 이름은 ‘금게’다. 꽃게보다는 좀 작은 느낌이 들지만 속은 꽃게보다 더 꽉 차 있고 껍질은 부드러워 먹기에 좋다. 다만 황게는 게딱지에 붙어 있는 내장에서 쓴 맛이 나기에 황게 간장게장에는 보통 게딱지가 없다. 그러나 꽃게에 비해 비린 맛이 덜해 육지에서도 간장게장을 전문으로 하는 고급 식당에서는 일부러 제주 황게를 사용하는 사례가 TV에 소개된 바 있다.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 관광객이 줄어든데 이어 최근 코로나 사태로 제주에 국내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관광업을 주업으로 하는 성읍민속마을은 타격을 크게 받았다. 이젠 성읍민속마을도 새로운 방식의 영업 전략이 필요한 때에 바로 이 돌집식당의 황게 간장게장이 온라인에서도 주문과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젊은 사장의 아이디어였지 않았을까 싶다.

황게가 간장게장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황게짬뽕을 비롯한 각종 해물요리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데다가 황게찜이나 황게튀김까지 있을 정도로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하지만 제주에서 황게 간장게장만큼은 꼭 맛보기를 강추한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다들 자기네가 밥도둑이라고 설레발이다. 그러나 확실한 제보를 믿으시라. 밥도둑은 바로 여기 제주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