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난시·시금치편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난시·시금치편
  • 류양희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11.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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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제주 나물은 먹을 수 없는 것도 차차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변화
장날 할망들이 직접 채취해 파는 '난시(냉이)' 뿌리 흙냄새서 봄내음 느껴
겨울에 얼지 않으려고 스스로 이파리에 당도 높이는 시금치는 감귤보다 달아
제주의 완연한 검은 빛깔의 흙색 위에 또렷한 초록빛깔들은 서로 완벽한 보색(補色)이 되어 오랜만에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출처_2019제주밭담 세미나 포스터 사진)

단풍이 지고 겨울이 가까워오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우리나라 색깔은 갈색과 흙색이 대세다. 그것은 잎을 잃어버린 나무의 색과 낙엽이 떨어져 땅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산(山)의 색깔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우리나라는 대부분이 산으로 이뤄졌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니 봄이 오기까지 눈이 오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온통 그 색깔이다.

하지만 제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색깔은 조금 다르다. 제주의 완연한 검은 빛깔의 흙색 위에 또렷한 초록빛깔들은 서로 완벽한 보색(補色)이 되어 오랜만에 제주를 찾은 여행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거기에 한라산 상층부의 하얀색까지 더해지면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장관이다.

월동작물의 주산지인 제주는 한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물기에 겨울에도 밭에는 온통 초록빛이다. 잠시 쉬는 밭이라도 풀들은 꾸준히 자라서 초록의 공백을 메꾼다. 억새가 지고 한라산의 나무들이 잎을 잃어도 이 초록빛을 이기지는 못한다.

이 초록빛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먹을 수 있는 것은 나물이 되어 밥상에 올랐다.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도 웬만하면 차차 먹을 수 있는 것이 되어 갔다. 그것이 바로 제주 나물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은 식상하다는 뜻의 다른 표현인 동시에 우리 일상에서 나물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알 수 있는 표현이다. 제주 나물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제주만의 색다른 이야기들을 부각시키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제주 땅이 육지와 다른 듯해도 닮은 구석도 많다. 그래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땅이라 하지 않는가.

난시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그러니 제주에도 ‘그 밥에 그 나물’이라 불릴만한 흔한 나물들이 있다. 이 나물들이 육지에서도 흔한 나물이라 식상함에 언급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그것은 제주 나물의 절반만 이야기하는 것이 되리라.

나물이라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패턴 상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기엔 품이 많이 드는 요리들이다. 그래서 과거엔 아주 흔했던 나물반찬들이라도 요즘 밥상에선 뜸해진 것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냉이’다. 봄이 오면 다들 냉이를 캤다. 그래서 냉이는 봄의 전령사(傳令使)였다. 하지만 원래 냉이는 가을에 싹을 틔워 추운 겨울을 난다. 차가운 날씨에도 잘 견뎌 냉이(冷伊)다.

제주에서는 냉이를 ‘난시’라고 부른다. 육지는 아직 겨울이라도 제주는 육지의 초봄 같은 날씨에 가뜩이나 흔한 냉이가 더더욱 잘도 자란다. 제주에서도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난시로 무침을 해먹거나 된장국을 끓여먹는다. 난시를 잘 다듬지 않으면 뿌리에서 흙냄새가 나고 입에서 흙이 지금지금 씹히기도 한다. 그게 귀찮아 잘 다듬어진 냉이를 사서 요리하는게 대세인데 원래 냉이뿌리에서 느껴지는 그 흙냄새조차도 냉이 맛과 향의 일부로 봄내음을 느끼게 해준 것이었다. 이젠 전국 각지에서 시설 재배를 해 사시사철 맛볼 수도 있지만 봄에 곱은 손으로 일일이 들에서 캐다가 장날에 내다 파는 할망들의 난시는 아직도 옛 정취 그대로다.

냉이처럼 추운겨울을 나기 위해 땅바닥에 납작하게 들러붙어 방사형으로 잎이 자라는 식물들을 보통 로제트(rossette)식물이라 한다. 잎이 꼭 장미(rose)모양으로 난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민들레, 냉이 등이 대표적인데 그 중에 시금치도 포함된다.

우리나라 시금치는 포항이나 남해, 신안 비금도산이 제일 유명하다. 모두 남해안이나 남해에 가까운 해안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지 시금치는 경남(2014년 기준 61%)과 전남(25%)에서 대부분 생산되고 있다.

해풍이 시금치에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한데 기본적으로 따뜻한 기온에 일찍 싹을 틔운 시금치가 겨울에 얼지 않으려고 스스로 이파리에 당도를 높여 이들 시금치는 제주 감귤보다도 더 당도가 높다. 남해안의 해풍이라면 제주도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순 없겠다. 제주에서는 그래서 시금치 농사를 겨울에 많이 지었다.

 시금치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시금치는 조선시대부터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고 제주에서 재배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배추와 상추 등 다른 엽채류와 마찬가지로 겨울철 생육이 가능한 이점이 있다. 1961년 21ha에서 2004년 가장 많은 126ha까지 재배되기도 하였으나 2014년에는 2ha에서 31톤이 생산되었는데 0.2ha정도는 하우스에 재배되었다.

1980년대까지는 재래종이 재배되었으나 현재는 겨울 재배용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2000년 들어 겨울철 공급을 위한 하우스 재배가 일부 이루어졌으나 확대되지 못한 상황이며 내한성이 강한 서늘한 가을, 겨울 재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앞으로 여름철 고온에 대한 저항성 품종이 보급되면서 월동채소, 마늘 등의 전 작물로 여름시금치 재배가 이루어질 여지가 있다.’(이성돈, ‘제주 엽채류 재배의 역사’ 헤드라인제주 2020.2.27.)

육지와는 달리 제주는 논이 극히 드물다. 그러니 밭농사가 농업의 중심이고 그 밭에서는 각종 푸성귀들이 자란다. 그중에는 제주만의 특성이 있는 작물들도 있고 흔하디흔한 것들도 있다. 흔하디흔한 것들로 색다른 반찬을 만들어내는 것도 있고 흔하디흔한 것들도 흔하디흔한 반찬이 되는 것들도 있다.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오늘도 제주의 밥상에 오른다.

차려놓고 보면 그저 평범한 밥상이다.

그러나 원래 특별함이란 평범함에서 그려내는 법이다.

제주만의 특별함은 그래서 평범한 일상에 그 비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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