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꿩대신 닭 ①
[류양희의 수다 in Jeju] 꿩대신 닭 ①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4.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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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말의 의미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으나 제주의 ‘닭’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조항범의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란 책에 ‘꿩대신 닭’의 설명을 살펴보면 이렇다. 

꿩고기 (제주<메밀촌>사진)

[‘꿩고기’를 끓인 맑은장국은 오래전부터 ‘떡국’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떡국’은 ‘만둣국’과 함께 설날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새해 첫날인 설날은 명절 중의 명절이다. 그래서 그날 먹는 음식은 여느 때보다 정성을 들여 맛있게 만든다. ‘떡국’에 꿩고기를 끓인 맑은장국을 넣은 것도 더욱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꿩고기’가 ‘떡국’을 맛있게 끓이는 데까지 이용된 것이다.

그런데 ‘꿩고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옛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닭고기’도 귀한데 어찌 ‘꿩고기’를 쉽게 먹어볼 수 있었겠는가. 눈먼 ‘꿩’을 줍는 경우라면 몰라도.

사정이 이러하니 아무 집에서나 ‘꿩고기’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음식 만들기에 ‘꿩고기’가 꼭 필요한데 ‘꿩고기’가 마련되지 않은 경우에는 ‘꿩고기’의 맛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에 근접하는 ‘닭고기’를 대신 사용했다.

‘떡국’을 만드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떡국’을 끓이는 데 ‘꿩고기’가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꿩고기’ 맛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근접하는 ‘닭고기’로 국물을 내서 떡국을 끓였다. ‘닭고기’ 국물로 끓인 ‘떡국’이 어디 제 맛이 나겠는가마는 그래도 우리는 ‘닭고기’ 국물로 끓인 ‘떡국’을 아무 불평 없이 먹으면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온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한국세시풍속사전에도 ‘조선 순조(純祖) 20년(1820)에 정약용(丁若鏞)이 엮은 『이담속찬(耳談續纂)』에는 “꿩을 잡지 못하니 닭으로 그 수를 채우다(雉之未捕 鷄可備數).”라고 적혀 있다.’고 언급돼있다.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달달 외웠던 생물의 분류 체계, 계(界)-문(門)-강(綱)-목(目)-과(科)-속(屬)-종(種)을 따져보면 꿩과 닭은 분류상 같은 ‘동물계-척삭동물문-조강-닭목-꿩과’의 새다. 그만큼 둘은 비슷하다.

제주의 꿩 (제주<메밀촌>사진)

제주에는 꿩이 많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전반적으로 꿩이 많았음을 각종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특히 제주의 꿩이 더 많아보이고 유명해진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철새가 아닌 텃새인 꿩은 육지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에서 육지로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제한된데다가 한라산을 중심으로 번식하기에 천혜의 환경이 펼쳐져 있어 그 수가 타지역에 비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추정을 해보게 된다. 꿩은 번식력은 좋은데 딱히 천적이 없고, 유일한 천적이다싶은 사람도 육지에 비해서는 꿩의 숫자 대비 많지 않아 제주의 꿩은 날로 그 숫자가 많아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주문화원 김봉원 원장이 제주일보에 기고한 글 중에 꿩사냥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지금은 매년 11월에서 2월까지만 꿩사냥이 허용되지만, 예전 제주도에서는 계절에 관계없이 꿩을 많이 사냥하였는데 음력 8월 초에 가장 성행하였다. 이를 ‘꿩사눙’이라 불렀다. 꿩의 새끼가 이맘때가 되면 먹기 좋게 자랐고 또 추석의 제찬(祭粲)으로 필요하고, 여름이 지난 젖먹이 어린이들의 영양보충 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사냥을 가고 싶으면 어느 누구라도 동네 높은 곳에 서서 ‘욱, 욱!’하고 큰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욱인다’고 한다. 사냥하고 싶은 사람은 욱이는 소리를 듣고 모두 모인다.

거기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패장(牌將)을 뽑으면 패장이 꿩을 날릴 사람(步軍), 망을 볼 사람(望軍), 잡을 사람(捕軍)과 사냥장소를 정한다. 사냥 장소에 인원이 배치되면 우선 꿩을 날릴 사람이 사냥개를 데리고 여기저기 산야를 누비며 꿩을 날린다. 한 번 날아가 앉은 곳을 망을 보는 사람이 지적하면 날리는 사람은 그 꿩을 또 날린다. 이렇게 하여 세 번 정도 날았다 앉으면 더 날지 못하여 숨게 된다. 이 때 개는 냄새를 맡아 숨어 있는 꿩을 찾아내고는 물어낸다.

사냥이 끝나면 모두 모여 크기를 나눈다. 이를 ‘분육’(分肉)이라 한다. 이때는 규율이 엄격하여 패장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게 상례다. 용어가 색다르다. 너 앞으로 꿩이 날아간다는 말을 ‘느 아방 간다’, 너 뒤로 날아간다는 ‘느 어멍 간다’라 한다. 또 꿩이 한 번 날았다 앉는 횟수를, ‘한 발탕, 두 발탕’으로 셈하기도 한다. 꿩의 종류로는 ‘조치’, ‘웅치’, ‘웅줄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고기를 나눌 때도 일정한 격식이 있다. 여러 마리를 못 잡고 한 마리만 잡았을 경우에는 부위 별로 각을 떼어내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큰 것을 차례로 드린다. 또 꿩을 물어온 개에게는 물어온 꿩의 창자인 ‘멀턱’을 주기도 한다. 남의 장사를 모시고 갔다가 꿩을 사냥했을 경우에는 나누어 갖지 않고 상가에 제수용으로 드린다. 상가에 드리지 않고 사취하였을 경우에는 공론에 부쳐서 벌을 받는다. (2017.11.28. 제주일보)’

제주에서의 꿩사냥은 60~70년대 외화벌이 수단으로 유명했을 정도였고 그래서 더더욱 제주의 꿩과 꿩 관련 요리는 더 유명해졌다.

꿩이 닭보다 맛있다면 꿩을 대량으로 사육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한때는 정말 꿩 사육이 붐을 이뤘던 때가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 ‘더농부(https://blog.naver.com/nong-up/)’에서 인용한 동아일보 1990년 6월 25일자 <내고향숨결> 코너의 제목은 이렇다. ‘꿩사육붐-3500원 새끼 어미 되면 4만원’

이 기사를 블로그에 올린 김재후 에디터는 ‘당시 4만원은 지금 10만원을 훌쩍 넘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나 지금은 꿩을 기르는 곳이 별로 없다. 기사처럼 많이 남았다면 치킨 대신 꿩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이유로는 꿩은 날아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날 수 없는 닭과 달리 꿩은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관리가 까다롭고 비용이 더 든다. 뼈를 발랐을 때도 닭보다 고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고 꿩 사육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덧붙여 설명했다.

제주의 대표적인 꿩요리로는 꿩메밀칼국수와 꿩샤부샤부 꿩만두 꿩엿 등이 있다. 그런데 꿩메밀칼국수와 꿩샤부샤부 같은 요리들에 꿩대신 닭을 대입시켜보면 어땠을까?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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