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나물이야기_마농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나물이야기_마농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7.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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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은 마늘의 제주 이름...전국 생산량의 10%가 제주산
난지형 남도마늘이 대부분...온난기후·바닷바람 등 천혜조건
마늘대 간장 장아찌 '마농지'는 김치와 함께 밥상위 양대산맥
보리밥에 물말아 먹을 때 최상 궁합...고등어·갈치 넣은 조림도

건국신화에서부터 마늘이 등장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물론 그 때 등장하는 마늘이 오늘날의 마늘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찌됐든 우리나라와 마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고 마늘냄새가 난다고 질색을 하는 걸 보아도 우리가 평소 얼마나 마늘을 많이 먹는지를 알 수 있다. 박찬호 선수나 안정환 선수가 미국과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동료들의 인종차별 때문에 마늘을 한동안 안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도 있다. 최근 TV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보면 이것저것 척척 요리를 해내는 차승원이 마냥 신기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하는 각양각색의 요리 양념들에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따지고보면 그것이 우리나라 요리 양념의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양념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마늘이다.

제주에서는 마늘을 ‘마농’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지역만큼 마늘농사를 많이 짓는다. 2019년 기준으로 제주에서는 3만5766톤을 생산해 전국 38만7671톤의 약 10%정도를 차지했다. 타 지역과 인구수나 재배면적을 비교해보면 적잖은 수치다. 그럼 제주에서는 왜 마늘농사를 많이 지었던 것일까.

제주 마늘(출처_낭만감귤 홍보사진)

우선 제주는 따뜻한 기후로 우리나라 월동 채소의 주산지이다. 마늘은 보통 가을에 심어 봄에 수확하는데 무 당근 양배추와 함께 제주 농민들의 주요 월동 작물 중 하나다. 제주의 마늘은 육지 북쪽의 마늘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마늘에는 한지(寒地)형 마늘과 난지(暖地)형 마늘이 있다. 마늘로 유명한 충북 단양, 충남 서산에서는 한지형 마늘을 재배한다. 육쪽마늘로 유명한 것이 바로 서산 마늘이다. 경북 의성에서도 전통적으로는 한지형 마늘을 재배해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난지형 마늘을 주로 재배하는 추세다. 전남 완도, 고흥 등 남해안에서는 난지형 마늘을 재배한다. 그러니 대략 난지형과 한지형 마늘의 경계선은 그 사이에서 그어지는데, 실제로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난지형 마늘이 마늘 전체 생산량의 80%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서산의 한지형 육쪽마늘(출처_푸르젠)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한지형 마늘의 주요특성은 경북 의성, 충북 단양산은 재배역사가 오래되고 토양이 비옥하여 구가 단단하며, 열구가 적고 겉껍질과 뿌리 부위 및 줄기 부착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구가 균일한 것이 특징이며, 저장력이 뛰어나 이듬해 햇마늘 출하 시까지 저장하여도 감모와 부패율이 다른 지역의 마늘보다 적고 매운 맛 또한 강하다. 충남(서산)산 마늘은 토지의 경도가 깊고 보수력이 좋은 황토흙에서 오래 전부터 재배하여 쪽수가 균일하고 구의 짜임새가 단단하나 뿌리 및 줄기의 부착성이 약하다.’

난지형 마늘은 ‘한지형에 비해 휴면이 짧아 8월 하순∼9월 상순에 뿌리내림이 시작되며 파종 후 곧 싹이 트고 생장이 계속되어 상당히 자란 상태에서 월동한다. 꽃차례 및 마늘쪽의 분화도 빠르고 숙기가 빨라 대부분 조생종에 속한다. 마늘쪽은 10∼12쪽이고 매운 맛이 적으며 저장성이 약하다. 현재 조숙 다수성인 남도마늘의 도입으로 재래종은 거의 재배되지 않고, 남도마늘이 70∼80%, 대서마늘이 5%, 자봉마늘이 소량 재배되며, 재래종은 10∼15% 정도이다. 최근 들어 깐마늘 판매가 늘어남으로 인해 대서마늘의 면적이 확대되고 있다. 

제주의 마늘은 바로 난지형 마늘 중 70~80%를 차지하는 남도마늘이 대부분이다. 남도마늘은 따뜻한 기후 탓에 깊게 심지 않아도 된다. 땅만 파면 돌이 나와 애를 먹는 제주도에서 재배하기 좋다. 그런데 또 난지형 마늘에 좋은 퇴비가 바로 염분이다. 실제로 난지형 마늘을 키울 때 바닷물을 희석해서 거름으로 주는 경우도 있다. 제주는 그런면에서 천혜의 조건이었다. 시시때때로 소금기 머금은 해무(海霧)가 섬을 뒤덮는 경우도 흔할뿐더러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도 난지형 마늘이 자라기엔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한지형 마늘과 난지형 마늘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마늘은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알려져있다. 살균, 항균작용이나 강장, 피로회복효과, 정력증진, 노화억제, 고혈압, 당뇨개선, 항암 항알레르기 작용 해독작용 등등 그 건강기능성은 일일이 다 손꼽을 수 없다. 그래서 마늘을 두고 일해백리(一害百利)라 했다. 강한 냄새 한 가지만 빼고는 백가지 이로움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약리작용만 따지고 보면 분명 한지형 마늘이 난지형 마늘보다 우위에 있다. 그래서 난지형 마늘을 육쪽마늘로 속여 판매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마늘을 약으로 먹기보다는 양념에 주로 쓴다. 바로 이 양념재료에 있어서는 난지형 마늘이 더 적합하다. 맛에서도 그렇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생산성에 있어서는 난지형 마늘이 한지형 마늘에 비해 훨씬 좋다. 그러니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때로는 한지형 마늘이, 어떤 면에서는 난지형 마늘이 더 좋은 것이다.

원래 제주도에서 마늘을 많이 재배한 것은 판매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각 집에서 양념 등 음식에 쓰기 위해 재배를 했던 측면이 강했다. 제주에서는 마늘뿐만 아니라 마늘잎과 마늘 줄기(마늘대)를 다 식재료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마늘 농사가 많았던 곳에서는 다 비슷했겠고 육지에서도 ‘마늘쫑’을 활용한 반찬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마농지’라 부르는 제주에서의 마늘대를 이용한 장아찌는 제주사람들에겐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다. 제주의 시인 김정숙은 제주에서 ‘마농지’를 ‘김치와 함께 밥상 위 양대 산맥’이라고 평했다.

김치와 함께 밥상위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마농지(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제주음식에서 장아찌는 흔하지 않다. 된장이나 고추장에 담그는 경우는 없고 육지부와는 달리 간장에 담갔다. 마늘, 무말랭이, 반치라고 하던 파초줄기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것마저 거의 사라졌지만 마농지만 예외다. 사계절 신선채소가 흔해서 저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농지는 집집마다 담가 놓는 제주도민의 밑반찬이었다.

겨울을 초록으로 버틴 마늘은 봄기운을 받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지 담는 마늘은 쫑이 나오기 전에 뽑아서 잎을 따내고 줄기만 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묵힌 간장에 담가 삭힌다. 무말랭이를 섞어 담기도 한다. 여름부터는 밑반찬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간장의 감칠맛이 마늘에 스며들고 발효되면서 맛이 깊어진다. 짜서 손으로 조금씩 찢어 먹었다. 저장성을 가지려면 어쩔 수 없었다.

김치와 마농지가 밥상 위 양대 산맥이었다. 보리밥에 물 말아 먹을 때는 마농지 이상의 궁합은 없었다. 목장에 가는 사람도, 밭에 가는 사람도, 학교 가는 도시락에도 마농지 하나로 통일하던 시절도 살았다. 질리게 먹다가 고등어나 갈치가 생기면 마농지를 넣고 조려 먹기도 했다. 장독대에 간장, 된장 다음에 큰 항아리가 마농지였다. 그렇게 먹고 살았어도 질려서 먹지 않는다는 사람은 못 봤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많은 먹거리가 넘쳐나도 제주사람들은 마농지를 놓지 못했다.’(김치와 함께 밥상 위 양대 산맥, 2017.4.8. 제주의소리) 

마늘 농사를 짓는 분들이 풋마늘을 뿌리째 뽑아다 주어서 마농지를 담가보았다. 물론 이주민의 입맛에 맞게 덜 짜게, 그리고 달고 새콤하게 말이다. 그런데 이게 아주 만능 반찬이다. 특히 삼겹살하고 궁합이 아주 딱이다. 밥반찬으로도 제격인데 거의 피클같은 느낌을 준다. 이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제주에선 마농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젠 먹을거리들이 많아져서 마늘잎 반찬은 보기 흔치 않은데 그래도 마늘잎나물 무침은 양념과 어우러져 제주의 시골밥상에서는 종종 오르는 반찬이기도 했다. 최근들어 알려지기 시작한 마늘뿌리의 효능까지 더하면 제주에서 마늘은 정말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다.

제주 한림읍 마늘 수확모습(출처_제주특별자치도)

다만 요즘들어 제주에서는 마늘농가들의 시름이 깊다. 월동작물로 마늘이 과잉 생산돼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매가가 책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마늘가격 폭락이 제주만의 상황은 아니다. 실제로 가격조정을 위해 산지에서 폐기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수입김치가 늘어나면서 양념으로 들어가는 마늘의 수요는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돈을 떠나서 농부가 자식같은 작물들을 갈아엎는 심정이 오죽할까. ‘먹을 것을 버리면 죄 받는다’는 말을 예전에는 참 많이 들었다. 정말 종종 갈아엎어진 마늘밭이나 다른 밭작물들을 보면 딱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 어린이집이나 초등 저학년에서 먹거리 교육에 빠지지 않는 것이 김치에 대한 교육이다. 그만큼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는 방증이겠다. 김치도 안 먹는 아이들에게 마늘을 권장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제주의 마농지같은 반찬들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권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편식쟁이 아이를 둔 아빠로써 알맹이 없는 소리인건 안다. 하지만 삼겹살 먹을 땐 마농지 하나 더 얹어주며 이 말을 꼭 잊지 않고 되새겨준다. “이젠, 마늘 먹고 사람 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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