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해산물이야기_소라(1)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해산물이야기_소라(1)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5.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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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해변 돌틈에서 아이들이 '정글의 법칙'으로 잡은 소라의 추억
고둥 알맹이의 몇배나 되는 통통한 나선형 살이 입맛 다시게 해
표면의 지저분하게 끈적이는 타액선과 내장은 식중독 원인 물질
얕고 맑은 물결이 넓게 쫙 펼쳐지는 김녕 성세기해변

제주도에 사는 자부심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릴 지는 모르겠지만, 제주 풍경에 익숙해지면 웬만한 다른 풍경에는 감흥이 잘 일지 않는다. 주변 제주 토박이들이 기껏 해외여행 가서는 제주를 기준 삼아 풍경을 품평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해외에 멋진 바다를 앞두고는 협재 해수욕장만 못하다느니,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을 보고서는 제주의 흔하디 흔한 초원들과 뭐가 다르냐느니 하는 식의 말들이다.

제주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실제로 제주의 풍경 또한 대단한 것이 사실이다. 여러 논란으로 한참동안 시끄럽기도 했으나, 어쨌든 제주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중 한 곳으로 뽑히지 않는가. 제주에 살면서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씩 멋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대체 어디서 찍었을까 궁금한 곳이 아직도 많다. 특히나 야외 촬영한 웨딩 사진을 보면 평소 자주 봐왔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풍경은 더더욱 딴 세상, 전혀 색다른 느낌이다.

김녕 바다는 파란하늘 아래 풍력발전기와 가까이서 오가는 관광객용 요트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제주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누차 언급했듯이 에메랄드빛이 아주 이국적으로 나오는 곳이 많다. 협재금릉해변도 유명하고, 곽지해수욕장도 뛰어나며 표선해비치나 함덕해수욕장도 멋지다. 그런데 얕고 맑은 물결이 넓게 쫙 펼쳐지며 에메랄드 빛이 두드러지는 한 곳 꼽으라면 단연 김녕 성세기해변이다.

그 바다를 배경으로 결혼을 앞둔 남녀가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 나온다. 바닷가 파란하늘 아래 풍력발전기와 가까이서 오가는 관광객용 요트 역시 이런 풍경에 운치를 더하는 맛이 있다. 그래서 김녕 바다에 있다보면 ‘제주도 푸른밤’ 노랫말처럼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게 된다.

이러한 이국적인 풍경과 바다 빛깔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단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야 제대로된 사진이 나온다. 김녕 바다를 가면 시야가 확 트이는데, 그것은 주변에 그늘 하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모래는 흰 빛에 가까워 햇빛이 모래에 반사되면 그야말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은 제주 와서 생기기 시작한 얼굴의 기미가 대변한다.

이제는 낭만이고 풍경이고 다 제쳐두고서 김녕 해변을 갈 땐, 검은색 장우산과 캠핑 의자,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는 반드시 챙긴다. 예쁜 제주 바닷가 모래사장 딱 한 가운데다가 캠핑의자 펼쳐놓고 짙은 선글라스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도 모자라 우중충한 대형 우산 쓰고 앉아 풍경을 방해하고 있는 이를 발견한다면 아마도 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꼭 아는척 해주시길...^^

작년 김녕 해변에서 아이들이 돌 틈에서 소라를 주웠다며 들고왔다.

작년 초여름 김녕 해변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돌 틈에서 소라를 주웠다며 들고왔다. 큰 아이가 한때 ‘정글의법칙’을 빼놓지 않고 보았는데 제주에 살면서 비슷한 느낌이 드는지 바닷가에 가면 뭘 자꾸 잡겠다고 설레발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주 제대로 된 걸, 그것도 두 개나 잡아온 거였다.

주먹만한 크기의 소라는 지금껏 껍데기만 봐왔지 실제 살아있는 것을 직접 바다에서 발견한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제주 바닷가에 가면 큼지막한 소라 껍데기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속 알맹이까지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살아있는 소라는 대부분 해녀 할망들의 레이더(?)에 걸려, 이내 껍데기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햇빛이 작렬하는 시간은 야행성인 소라가 활동할 시간도 아니다. 그러니 소라 상태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어 다시 바다에 놓아주자 했지만 아이들은 이후의 놀이도 포기한 채 빨리 집에가서 삶아먹고야 말겠단다.

변변한 물병 하나 없어 대충 운전석 옆에다 놓아두었더니 소라 상태가 더 미심쩍었다. 아이들은 소라가 죽으면 그때부터 부패가 시작되니 신선한 소라를 맛봐야 한다며 아빠의 과속을 자꾸 부추겼다. 그래도 10년이 훌쩍넘은 노쇠한 차는 아이들의 초조함을 들어줄 리 없었다.

집에 돌아와 수돗물에 소금 한 숟가락 넣고 얼른 해감을 하고선 1차로 삶았다. 통째로 라면에 넣어 끓일까하다가 소라 껍데기 안 쪽 상황이 어떨지 몰라 우선 한번 삶아보기로 한 것이다. 너무 삶으면 소라 특유의 맛이 사라질까봐 살짝만 삶아 건져냈다.

소라껍데기는 아주 뜨거워져있어서 손으로 후후 불며 건져냈는데 소라 알맹이를 아주 딱딱한 아가미 뚜껑이 철저히 봉쇄하고 있었다. 과일 먹을 때 쓰는 포크를 아가미 뚜껑 틈으로 겨우 넣어 푹 찔렀다. 그러니 드디어 알맹이가 딸려 나오는데 고둥 알맹이의 몇 배나 되는 크기의 살들이 나선형의 모양을 유지 한 채 딸려나오는데 모락모락 김까지 나면서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초고추장에 그대로 찍어 한입 베어 물고 싶었지만 지저분하고 기분나쁘게 끈적이는 것이 표면에 묻어 있어 일단 물로 씻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라독’이라는 낯설지 않은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얼른 검색을 해보니, 아... 큰일 날 뻔했다.

지저분하게 끈적이던 것은 타액선(침샘)이라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이 타액선과 내장에 독이 있어서 식중독을 유발하는데 다행히도 타액선은 불쾌감에 본능적으로 제거를 했고, 시커먼 내장은 보나마나 쓴 맛이 날 것 같아 제거했다. 하마터면 소라 먹다가 설사와 복통에 시달릴 뻔했다. 이것저것 제거하고 나니 정작 먹을수 있는 게 얼마 안된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미 아빠의 소라독 설명에 입맛이 떨어졌는지 손도 안댄다. 결단코!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다음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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