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은갈치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은갈치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10.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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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잡아 반짝이는 은분이 그대로 있어 붙여진 이름...그물어획은 '먹갈치'
성질이 급해 잡으면 곧 죽기 때문에 갈치회는 제주도에서면 맛볼 수 있어
늙은호박에 가을갈치는 최고의 궁합...청양고추로 비린내 잡은 갈치국 일품

제주는 비가 잦다. 그래서 제주 여행을 해보면 일정 중에 비 오는 날이 꼭 하루는 끼어 있게 된다. -운 나쁘면 일정 내내 비가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난감하다. 비싼 돈 들여 제주까지 왔는데 방 안에만 눌러 앉아있자니 비행기 값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회용 우비라도 사서 입고 돌아다녀보지만 곧 제주는 바람이 세서 우비도 소용없더라는 사실만 실감하게 될 뿐이다.

이럴땐 실내 볼거리들을 중심으로 일정을 바꾸어야 한다. 제주는 실내 관광하기 좋게 박물관이 참 많기도 많다. 개중에는 조잡한 박물관도 여럿 있지만 그래도 육지에서는 경험 못할 박물관도 꽤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제주를 삼다도가 아니라 박다도(博多島) 라고 부를 정도다.

제주은갈치 (출처_제주시수협)

그 중에서도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다. 제주를 이해하는데 속성 공부도 될 뿐만아니라 볼거리도 많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들어서면 본관 입구 유리관 안에 전시된 갈치 표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려 4m가 넘는 길이의 대형 갈치 두마리다. 이름도 산처럼 큰 갈치라하여 ‘산갈치’다.-정확히는 모양새가 갈치와 닮아 갈치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분류이긴 하다-두 마리다 제주 해변에서 발견이 됐다. 이 산갈치는 그저 보통 크기의 산갈치일뿐 이보다 더 큰 산갈치도 많다고 한다. 다만 심해에 살아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뿐. 이 산갈치는 박물관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갈치는 박물관만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를 대표하기도 한다. 그 유명하다는 ‘제주 은갈치’말이다. 갈치면 다 똑같은 갈치지 왜 제주 갈치를 ‘은갈치’라고 부를까. 도서출판 예조원에서 펴낸 ‘바다낚시 첫걸음(상)’에 자세히 설명돼있다.

‘갈치도 종류가 있을까? 흔히 제주산 갈치를 '은갈치'라고 부르고 육지의 목포나 통영의 갈치는 '먹갈치'라 부른다. 생김새도 은갈치는 반짝이는 은빛이지만 먹갈치는 거무튀튀하다.

갈치는 비늘이 없고 만지면 은분이 묻어나는데, 이 은분은 구아닌(guanine)이라는 유기염 성분으로 인조진주의 광택 재료로 사용된다. 이 은분이 낚시로 잡은 갈치는 잘 떨어지지 않지만 그물로 잡은 갈치에서는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래서 주로 낚시로 잡는 제주산 갈치는 은분이 그대로 있어서 은갈치, 그물로 잡은 갈치는 은분이 떨어져 나가 상대적으로 어두워보이므로 먹갈치라고 부르는 것이다.’

실제로 맑은날 낚시로 갓 잡아올린 갈치를 보면 맑은 은빛이 눈부시게 빛나면서 꼭 긴 칼(刀) 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갈치의 ‘갈’은 ‘칼’의 변형이라고 한다. 갈치는 성미가 급해서 잡으면 제풀에 곧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갈치회를 먹기가 힘든데, 제주에선 산지이기에 갈치회를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갈치국 (출처_전통향토음식-제주인의 지혜와 맛)

웬만한 횟집에 가면 먼저 곁들이(스끼다시)로 나온 회에 갈치회가 함께 나온다. 갈치 특유의 비릿한 내음이 나긴 하지만 그것은 갈치 특유의 맛일 뿐 역하지는 않다. 물론 신선하지 않을 경우 비린내는 심하게 날 수는 있겠다.

어쨌든 곁들이로 나온 갈치회는 한번쯤 맛볼만하다. 갈치회하면 꼭 회자되는 이야기가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움베르투 코엘류다. 그는 제주산 갈치회에 푹 빠져 한꺼번에 몇 접시나 시켜먹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갈치의 비린내를 걱정하지만 제주사람들은 갈치를 아예 국으로도 끓여먹는다. 갈치국이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어렵기만 한 상사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 갈치국을 처음 맛보았다. 다들 제주사람이니 갈치국에 거부감들이 없는 모양인데, 육지에서도 갈치를 구이로 밖에 먹어보지 않았다가 갑자기 냉면기 같은 큰 그릇에 든 갈치국을 먹으려니 주저됐다. 하지만 분위기상 마다할 상황은 아니었다. 깨작깨작 국 속에 든 갈치를 젓가락으로 떼서 먹는데, 의외로 비린내도 안나고 맛이 괜찮다.

갈치는 구이로만 먹었던 고정관념을 살짝 내려놓으면 갈치국이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청양고추가 비린내를 잡고 호박, 배추 같은 것들이 갈치 특유의 감칠맛나는 육수와 어우러져 맛을 낸다. 여름에는 배추를 넣고 추석이 지나면 늙은 호박을 보통 넣는데 가을 갈치에 가을 호박이 최고의 궁합이라는게 제주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밥 한 그릇에 뜨끈한 갈치국 한 그릇이면 점심으로는 아주 든든하다.

갈치구이

갈치조림이나 갈치구이는 워낙 육지에서도 일반화된 음식이라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서울 남대문시장에 갈치조림 골목이 있어 원조라 할 순 있는데, 제주의 갈치조림이나 갈치구이는 산지에서 직접 맛본다는 점이 특장점이라 권해볼만 하다. 식재료의 신선도와 맞물려 맛을 더해주니 여행 일정 중 한번쯤 갈치로 한끼를 해결하는 것도 좋겠다.

제주로 막 이주했던 2016년에는 갈치 어획량이 급감했다. 당시 분위기로는 명태가 동해에서 사라진 것 만큼 제주에서도 갈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었다. 하지만 이는 동해의 명태와는 전혀 다른 사정이 있었다. 제주산 갈치는 보통 일본과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지점에서 전체 어획량의 3분의1 정도를 잡는데 당시 한일어업협상의 결렬로 이곳에서의 조업이 원활치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2017년에는 갈치 어획량이 급증했다. 한일어업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상황은 여전했는데 어민들이 궁여지책으로 동중국해나 대만 인근해역까지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많은 갈치가 잡혀 처치 곤란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은 갈치를 대부분 냉동 갈치로 보관해야 했다. 결국 이의 처리를 위해 2018년 ‘서귀포 은갈치축제’를 처음 열었는데 정작 축제엔 생갈치는 구경도 못하고 온통 냉동갈치들 뿐이어서 불만들이 넘쳐났다는 후문이다. 근데 올해 들어서는 또 갈치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업인 입장에서는 갈치가 많이 잡히면 잡히는대로, 적게 잡히면 적게 잡히는대로 고충이 있다. 물론 어업만 그러는 것이야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는 있다. 제주에 와서 제주 은갈치를 많이 찾아주면 찾아줄수록 제주 어민들의 얼굴도 맑은 은빛으로 빛난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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