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돼지고기 이야기(4)
[류양희의 수다 in jeju]-돼지고기 이야기(4)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9.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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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요리의 기본은 우선 좋은 식재료에 있겠으나 꼭 그것만이 충분 조건은 아니다.

보통의 경우 제주 재래흑돼지와 일반 돼지고기의 맛 차이를 느낄 정도라면 절대 미각의 고수라 할수 있다. 일반 돼지고기도 상당히 맛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돼지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구이용에 맞게 대부분 어미 계통인 ‘요크셔’ ‘랜드레이스’종을 교배한 후 아비계통인 ‘듀록’과 교배하는 ‘삼원교잡’으로 생산된다. 맛있게 지속적으로 품종 개량을 해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아비 계통을 ‘듀록’이 아닌 재래돼지 흑돈을 적용하면 더 고급육이 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삼원교잡돈이 널리 생산되고 있다.

제주에 오기 전까지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수입산 냉동 삼겹살을 주로 먹었다. 싸고 양많은 것이 우선이라는 대식가로서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제주산 돼지고기 삼겹살(정확히는 흑돼지 아닌 일반 돼지고기 오겹살, 제주에선 흑돼지와 구분하기 위해 일반 돼지고기를 '백돼지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먹어보고는 이젠 도저히 다른 건 못먹겠다. 아내도 거기에 동의했다. 몇푼 아끼겠다고...다른 거 먹지말고 제주산 돼지고기를 먹자고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제주에선 돼지고기에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제주도엔 제주산 돼지고기와 일부 수입산 냉동육만 판매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2002년 4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국내 다른 지역산 돼지고기가의 반입이 금지돼 왔다. 이것은 돼지열병(돼지콜레라)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3년간 돼지열병이 발생한 사실이 없거나 예방접종을 실시하지 않아 돼지에서 항체가 소멸한지 6개월이 넘은 경우 돼지열병 청정지역으로 공포했다. 제주는 1999년 돼지열병 비백신 청정지역임을 선포하고 2000년 5월에는 OIE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절차가 굳이 필요했던 것은 제주산 돼지고기를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도는 돼지열병이 발생하지 않았고,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타(他)지역산 돼지 반입만 금지하면 돼지열병 청정지역의 지위를 유지해나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까지 제주엔 타지역산 돼지고기를 찾아볼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정작 제주가 돼지열병 청정지역 지위를 잃은 지 이미 오래됐음이 지난해 뒤늦게 드러나 많은 제주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한국농어민신문과 제주지역언론인 제주신보의 관련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다른 지역산 돼지고기의 반입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이미 OIE의 돼지열병청정지역 리스트에 제주가 올라있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OIE가 돼지 열병 청정지역 인증 기준을 개정하면서 기존 청정지역 승인이 무효화됐던 것이다. 2013년 5월 OIE총회에서 돼지열병을 ‘보고후 인증대상 질병’에서 ‘평가후 인증대상 질병’으로 변경 의결해 개정전 인증됐던 제주를 포함한 모든 국가와 지역이 자동 청정지역에서 해제됐다. 이에 대해 제주특별자치도는 농식품부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해 몰랐다고 해명한 반면 농식품부는 분명히 통보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2016년에 이미 제주는 돼지열병이 발생했고 따라서 자격을 원천적으로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돼지열병만 잘 통제한다고 수출이 되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구제역이 매우 잦게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백신 접종을 실시해 어차피 일본으로의 수출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들을 관계기관이나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몰랐을 리 없다는게 맞을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런 사실을 감춰온 것은 도내 양돈산업 보호 차원이지 않겠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주도의회 고정식 의원은 지난해 9월 11일 열린 제354회 제주도의회 임시회에서 “양돈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다른 지역 돼지고기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 조치를 풀어야 한다”며 “제주도민들은 한우보다 비싼 제주산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고 지적했다(제민일보 2017.9.20.)

여기에서 언급된 제주산 돼지고기의 가격문제는 또 제주일보의 2017년 10월10일 보도내용을 보면 이렇다. ‘(2016년)기준 도내에서 하루평균 3444마리 돼지가 도축됐다. 그중 70%는육지로 반출됐고 30%는 도내에서 소비됐다. 도내 소비에선 제주산이 76% 수입산이 24%비중을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주산은 전국 평균보다 훨씬 비싸다. 올해(2017년) 9월 지육 경매가만 해도 1Kg당 전국 평균은4886원인데 비해 제주 일반돼지와 흑돼지는 각각 7227원과 8245원에 달했다’

도내 양돈산업보호를 목적으로 그동안 관계당국과 도에서 모른척해 왔다면 이제와서 이 사실을 드러내고 타 지역산 돼지고기를 받아들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 악취 민원으로 인한 양돈장 주변 방제모습(제주특별자치도청 자료)

지난해 양돈농가들의 축산폐수가 크게 문제가 됐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한 양돈 농장에서 무려 8500톤에 달하는 축산분뇨를 ‘숨골’에 무단 방류한 사실이 밝혀지며 도민들의 공분을 샀다. 8500톤이면 제주종합경기장 실내수영장에 네 번이상 물을 가득 채울수 있는 방대한 양이라고 제주인터넷언론인 헤드라인제주에서 보도한 바 있다.

제주의 상수원은 육지처럼 강물에서 얻는게 아니다. 제주의 상수원은 지하수와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용천수이다. 곶자왈 지형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숨골’이라면 지하 깊숙한 곳과 지표면이 직통으로 연결된 곳이다. 결국 섬 지역의 유일한 취수원인 지하수 물에 돼지똥물을 갖다 부었다는 거다. 그것도 수영장을 네 번이나 채우고도 남을 똥물을 말이다. 당시 언론들은 공통적으로 이같은 행위에 대해 ‘엽기적’이란 표현으로 충격적인 범죄 사실을 보도했다.

이 사건의 파장은 생각보다 아주 컸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도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도에서도 여론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타지역산 돼지고기의 반입을 허용하게 된 건 이러한 도민사회 여론의 맥락에서 찾아봐야 한다.

지난해 10월 제주특별자치도 이우철 농축산식품국장은 타지역산 돼지고기 조건부반입허용방침을 발표하면서 “타도산 돼지고기의 장기적인 반입금지로 도민들의 불평불만이 높아지고 있고 최근 불법폐수 배출로 양돈농가에 대한 도민 반감여론 등을 반영해 조건부로 반입금지를 해제했다(뉴시스 2017.10.10.)”고 밝힌 바 있다.

양돈장의 환경영향 문제는 비록 제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제주가 관광지역인데다 청정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축산 농장의 악취는 크나큰 골칫거리였다. 제주는 다각적인 악취저감 조치외에도 본격적인 나들이철인 5~11월 사이에는 축산사업장 방제단을 구성해 풍향이나 기온 등에 따라 사전 방제활동을 펴는 한편, 민원발생 1시간 이내에 현장에 출동해 조치에 나서는 등 24시간 방체 체제에 들어가는 노력 등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자치도는 도내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악취 배출원과 민원현황조사, 복합 악취 측정 및 분석을 실시하고 악취확산 모델링 및 악취 발생도면 작성에 나서는 한편 악취 실태 조사결과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한 경우 악취관리지역 또는 신고대상 악취 배출 시설로 지정 고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대해 양돈농가들은 “개선이 아닌 퇴출이 목적”이라며 반발했다는 보도(축산신문)도 있다.

제주산 돼지고기는 맛있다. 그걸 아는 까닭에 많은 이들이 제주산 돼지고기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 맛있는 고기를 얻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가를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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