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식량안보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
[기고] 식량안보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필요하다
  • 정광호 (주)아이앤비 대표
  • 승인 2020.07.27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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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주)아이엔비 대표
현, 청원생명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연구소장
-서울대 농화학과 석사
-용인대 식품영양학과 박사 수료
-해태제과ㆍ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농식품바이오 기술 사업화 및 창업 컨설턴트
-l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연구위원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식량 공급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일부에서는 농산물 교역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국내 농산물 소비가 늘어나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식량자원의 수급 측면에서는 수출이 이전처럼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국내 식량 생산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국내 식량자원 생산기반 확충은 매우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일이지만, 그저 당위론에만 그칠 뿐 구체적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제시된 것이 없어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해 지금까지 거론되었던 방안들에 조금 더 생각을 보태어 고찰해 본다.

1. 국내 식량자급률이 낮은 이유, 첫 번째 농토가 절대 부족하다

쌀을 제외한 기타작물의 국내자급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식량자급률을 올린다고 쌀재배면적을 줄여 기타작물을 심어봐야 타 작물의 생산량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쌀 자급률만 형편없이 줄어들 것이다. 쌀은 단위면적 10아르당 생산량이 500kg 이상으로 최고수준인 곡물이다. 이에 비해 밀은 동일면적 생산량이 350kg에 불과하고, 보리는 그보다도 적다. 논을 타 작물 용도로 전용한다면,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계산해봐도 전체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결국 농지의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전국의 농토는 부동산 개발 등으로 형질 변경되어 계속 감소하고 있는 데다가 아직 미개척 농토로 남아 있는 새만금 간척지는 사업성 부족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한편, 4대 식량 작물 중 옥수수는 성장 속도가 빠르고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가장 많지만, 지력 상실을 최고로 유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평야가 넓지 않고 비옥하지 않은 땅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농지확보부터 해야 할 일이다.

2. 잘못된 유통전략이 식량자급률 하락 초래

국내 밀 생산량은 연간 1만 톤 남짓인데, 이것도 매년 남는다고 재고로 쌓아두는 형편이다. 연간 200만 톤 이상의 밀을 수입하는 국가가 1만 톤도 소화 시키지 못해서 남는다니 아이러니하지만, 국산 밀은 가공과 유통이 수요자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서 그 소비가 소량의 국산밀 수요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벌어지는 일이다.

밀 소비 확대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생산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이다. 쌀은 쪄서 밥으로 먹는 것이 주 용도이기 때문에 품질이 다소 떨어져도 소비가 가능하다. 하지만 보리와 밀 등은 가공용 소비가 절대적으로 많아 수요처인 가공공장에서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맞춰야만 유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 국내 식량자원은 쌀 중심의 생산관리 마인드로 수십 년 농사를 지어 왔는데, 이젠 거기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자급률을 올려야 하는 밀과 보리는 철저히 상품화를 목적으로 생산되어야 한다. 곡물의 상품화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인데도 불구하고 생산자든 유통이든 국내 농업 현장에서는 상품화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다들 제대로 된 상품화 프로세스를 알지 못하다 보니 우리 밀이 몸에 좋고 신토불이라는 막연하고 개념적인 얘기들만 돌아다닐 뿐 실제 상품화에 필요한 품질규격과 관리개념이 탑재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밀가루 품질등급은 크게 15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고 각각의 분류마다 정해진 용도가 있다. 일부에서 글루텐 함량이 적어 과자 용도로나 쓸 수 있는 국산 밀을 빵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는데 시장에서의 평가는 냉혹하다. 그런 제품은 품질이 떨어지면서 가격은 비싸 소비자가 외면할 수밖에 없다. 국산 밀도 시장 분류체계에 포함되도록 만든다면 최소한 ‘품질이 맞지 않아서’라는 얘기는 듣지 않을 것이다.

쌀이 가공품으로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쌀 가공품이 활성화되려면 상품화를 목표로 생산되어야 하고, 그 자체로는 가공식품 중심인 시장에서 요구하는 품질기준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에 가루나 전분 등으로 소재화해야 한다. 몇 년 전 밀 생산 농가를 방문했을 때 밥에 섞어 잡곡밥으로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밀을 밥처럼 먹어서는 과잉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가루로 만들어서 빵이나 국수로 이용해야 소비가 늘어난다.

보리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경우 보리의 최대 소비처는 맥주회사다. 맥아로 소비되는 보리가 어마어마한 규모에 달한다. 누가 봐도 맥주보리를 생산해야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맥주보리로 소비되는 보리가 그다지 많지 않다. 맥주회사에서는 도의상 국내 보리를 수매하긴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품질도 맞지 않은 데다 생산 시기별로 들쭉날쭉해 전체 사용량의 일부만 국산 보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보리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맥주보리용 품질과 가격을 최우선으로 맞춰준 다음 다른 용도로 판매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쌀과 함께 섞는 보리밥 형태의 소비 방법은 양도 적을뿐더러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다. 철저하게 가공식품의 원료 및 소재화로 가야 한다.

3. 부산물을 활용한 국산 사료 자원의 적극적인 개발

국내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은 사료용 곡물의 수입 급증이다. 일반 농사로는 충분한 소득을 올리기 힘들고, 국민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육류소비 증가로 축산업에 뛰어드는 농가가 제법 많다. 현재 밀과 옥수수 등 수입 곡물 중 사료용이 식용과 비슷하거나 더 많다. 사료용 곡물 수입을 줄이지 않으면, 식량자급률 상승은 어림도 없다.

사료곡물 수입을 줄이려면, 우선 국내 바이오매스 자원을 활용해 사료용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볏짚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매스의 약 10%를 차지하며 주로 TMR 사료로 소비된다. TMR 사료업체들의 고충은 공급가와 단위 중량의 불안정 문제에서 기인한다. 대규모 사료업체는 벼생산 농가들과 직거래하는데 농가들이 볏짚을 말아줄 때 부르는 가격도 일정치 않고, 롤당 무게도 다르기 때문에 차라리 수입 건초를 쓰는 것이 속 편하다고 말한다.

볏짚 말고도 국내 식품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사료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데, 이런 부산물들은 환경부에서 산업폐기물로 분류해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수익이 낮은 일반 농사를 기피하는 바람에 축산농가가 상대적으로 증가해왔는데, 식량자급률을 올리기 위해서 이러한 축산농으로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식량자급률 제고가 최우선 목표라면 그렇게라도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4. 식량 생산 담당 농업경영체의 대규모화는 필수

식량 작물의 장점은 대규모 기계화 영농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미 쌀재배를 통해 농가에 농기계가 다량 보급되어있는 만큼 약간의 조정과정을 거쳐 전환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식량 작물 생산여건은 미흡하다.

먼저 경작농지의 대규모화를 이뤄야 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생산단체 육성사업인 들녘경영체를 활용하면 된다. 식량자급률을 올리려면 밥으로 소비되는 물량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가공용으로 가는 것이 옳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로트별, 지역별 품질 편차는 최소화하고, 수확물 분류과정에서도 세세하고 체계적으로 품질등급을 나눠 용도에 맞게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자체적으로 품질검사와 연구능력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일들을 추진하려면 생산자는 규모화되어야 하고 품질관리와 연구를 위한 스탭 조직을 갖추는 게 필수다. 주요 식량 수출국들은 최첨단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생산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재배부터 수확, 저장, 이용 등의 기술발전이 더디고 관심도 적다.

식량 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면 하나의 기업이 최소 읍면 단위 농지를 관리하게끔 생산자단체가 대형화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지원금 조금 주고 농민들이 알아서 뭉치라는 식으로 방치하면 안된다. 정부가 들녘경영체 육성 목표를 정해놓고 생산자들을 자의반타의반 반강제로라도 뭉치도록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탄탄한 식량자원 생산기반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듯 식량자급률 올리는 일은 절대 단순한 일이 아니라 해방 이후 내려온 농업농촌시스템의 개조까지도 포함할 만큼 어마어마한 역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상황에서 소규모 농가들이 각자 수입산과의 전투에 임한다면 가격과 품질로 무장한 수입농산물에 일방적으로 깨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민간이 최선을 다해 맞서야 한다. 예를 들어 농민들, 생산자단체들이 규모화를 통해 생산가격을 낮춰 수입 곡물의 2배 정도로 가격을 맞출 수 있다면,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 화답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가격이 안되니 다른 방법을 찾자는 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쌀의 국제 유통 시세는 국내 유통가의 약 1/5 정도다. 그래서 정부가 쌀 관세를 513%로 정한 것인데, 쌀가격 인하 노력은 게을리한 채 국내 쌀값만 더 올린다면 어느 순간 관세장벽으로도 막을 수 없이 수입쌀이 밀려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공식품부터 초토화될 것이고, 점점 줄어드는 집밥 소비추세와 맞물려 쌀 생산 농가들은 하나둘 생산을 포기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쌀 생산을 포기하고 타작물로 전환한들 수입 곡물이 차지하고 있는 가공식품 시장에 진입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 즉시 줄줄이 양곡 창고행이 된다면, 국내 식량자원 생산기반은 무너지고 우리나라는 식량 순수입국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남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수입 곡물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생산자원 재배치와 시스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말로만 식량 위기라고 떠들 것이 아니라 수입 곡물을 이기기 위한 실행전략을 세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5. 해외 식량자원 개발은 또 하나의 대안

국내 식량자급률은 한정된 농지면적으로 인해 아무리 올리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소비하는 식량자원은 이 좁은 국토에서는 다 생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현재 대한민국 경계 안에서 생산되는 식량만 신경 써서는 식량자급률 제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외 식량자원개발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바로 위 만주 땅은 농사를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비옥한 땅이다. 거기에 농사를 시작한 것이 우리의 조상들이고 현재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농산물 생산지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경제협력에 의한 만주개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역시 곡창지대로서 만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잘 진행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대신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 남쪽의 개발도상 국가들과 자원교류와 개척이 시급하다. 아세안 국가를 대상으로 한 남방정책의 필요성이 농업 분야에서도 절실히 요구된다. 90년대 중반부터 국내 재벌기업이 이런 관점으로 해외자원개발을 시작했으나 이미 60~70년대에 동남아 자원개발에 진출한 일본에 비하면 미미하다. 포스코 인터내셔널은 미얀마에 연간 20만 톤 규모의 쌀을 생산하는 미곡처리공장을 준공하여 본격적으로 해외 수출에 나선다고 한다. 날로 증가하는 유럽의 가공용 쌀시장을 겨냥하여 파보일드라이스 수출을 계획하고 있어 전망이 밝다.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한국기업들의 성과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정부에서는 남방정책을 국산농산물 수출시장 개척으로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그 나라들로부터 우리가 필요한 식량과 농산자원을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데에 더 신경써야 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소재와 부품의 반가공과 중개무역으로 국가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나라이다. 앞으로도 그 전략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그에 걸맞는 해외 자원공급처를 확보하고 국내에는 소재가공, 부품화, 관련 장비를 일컫는 이른바 ‘소부장 산업’을 대폭 발전시켜 전 세계 제조가공업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이 사업을 잘하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도 자국에서 나오는 자원은 별 볼 일 없지만, 제조가공으로 최고수준의 경제를 이뤘다. 60~70년대 일본 국내에서 발달한 제조업에 원료를 공급해주기 위해 일본의 상사들은 전 세계를 누볐고, 적어도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만큼은 그들이 맹주다. 그들이 어떻게 경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 글을 맺으며...

식량안보 얘기는 오래 전부터 참 많이 나왔는데, 여태까지 실현된 것이 하나도 없는 건 구체적인 실행 계획 없이 그저 중요하다는 얘기만 하고 있어서이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처럼 말로만 떠들어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식량자급 시스템을 갖추는데 과학자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만들려면, 학자뿐만 아니라 현장운동가도 필요하고 정부 정책 당국자의 의지도 함께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각자 알아서 할 일을 하라고 하면 책임만 미룰 뿐 어느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될 것이다. 학자가 학자로만 그쳐서는 안되고, 현장전문가도 되고, 정부 정책에도 관여하는 등 자기의 역량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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