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해산물 이야기_홍해삼
[류양희의 수다 in Jeju]-해산물 이야기_홍해삼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5.25 0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삼의 모양도 맛도 없지만 놀랍게도 '사포닌' 성분 함유
제주 홍해삼은 해삼의 왕좌...뻘에 서식하는 흑해삼과 구분
칼슘·인·마그네슘 등 청해삼의 2배...항산화·항암·면역질환개선 효과도
바이오산업과 결합 '홍해삼 겔·분말환' 등 건강기능식품 출시

섬(島)은 바다가 곧 밭이다. 농부는 땅에 씨를 뿌리지만 섬에선 바다에 씨를 뿌린다. 농부는 땅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만 섬에선 바다를 중심으로 세상을 배운다. 그러니 육지에서는 땅에서 얻는 걸 섬에선 바다에서 거둔다.

해삼(海蔘)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생겼을까? ‘바다의 인삼’이라는 뜻인데 정작 해삼에게선 인삼의 모양도, 인삼 맛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해삼에 정말 인삼과 같은 사포닌 성분 등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해삼에 인삼의 성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근래 들어서 과학적 분석의 결과일 텐데 해삼이란 이름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해삼은 보통 멍게, 성게와 더불어 도매금으로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각기 전혀 다른 개성 넘치는 모양에도 불구하고 이 셋을 헷갈려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래도 명색이 바다의 인삼이라는데 해삼이 들으면 퍽이나 자존심 상할 대목이다.

제주 해삼은 해삼 중에 최고로 치는 홍해삼(紅海蔘)이다. 붉은 색을 띠는 해삼으로,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흔한 청해삼이나 흑해삼과 구분된다. 홍해삼은 홍조류를 주로 먹기에 붉은색을 띠고 흑해삼은 뻘에 주로 서식해 검은색을 띤다.

제주 해삼은 해삼 중에 최고로 치는 홍해삼(紅海蔘)이다.(출처_제주명품 업체 홍보사진)

우리나라 해삼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청해삼은 암청록색을 띠는데 연안의 해초와 암초 지대에서 살다가 점점 커지면 깊은 모래지대로 나가 살면서 그런 색을 띤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다 똑같은 해삼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각각 별개종이라는 상반된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어 논란이 많다.

얼마 전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백해삼’이 잡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백해삼이 단순히 색소 유전자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하는데, 해삼을 잡는 해녀조차도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해삼이라는 점에서 예전부터 이것을 먹으면 불로장생이나 득남한다는 속설이 파다했다. 물론 가격은 그래서 ‘부르는게 값’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과학적인 속설들 말고 실제 제주 홍해삼에는 어떤 기능성이 있을까? 제주하이테크산업진흥원 산하 제주생물종다양성연구소가 2007년부터 진행한 ‘홍해삼을 이용한 산업화 소재 탐색 및 개발, 가공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제주산 홍해삼은 청해삼에 비해 칼슘, 인, 마그네슘과 같은 무기영양성분이 2배 가량 높게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속설로만 전해져왔던 항산화, 항암활성 등의 기능성은 물론 면역질환 개선효과도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제주 홍해삼은 앞으로 본격적인 바이오산업과의 결합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된다(출처_제주웰링 짜먹는 홍해삼 겔 홍보사진)

어디 이뿐일까? 어느 식재료든 그 안에 들어있는 기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하면 자칫 식상해질까봐 되도록 자제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대목에서 꼭 등장하는 ‘동의보감’에 따르면 임산부와 태아에게 좋고 혈액순환 및 강장효과가 있다는 언급이 있을 정도로 그 효능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받아왔다. 물론 이러한 언급들에서 조금씩 연관되는 대목을 종합해보면 당연히 남성에게 얼마나 좋을지는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이밖에도 당뇨나 고혈압, 비만 등의 치료물질로 주목을 받는 한편 홍해삼 추출물로 주름개선이나 피부미백 효과 등이 있는 화장품 원료로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

홍해삼은 제주 이외에는 울릉도와 독도 부근에서 잡히는데 접근성 면에서 제주 홍해삼이 훨씬 더 높기에 더 유명할 수 밖에 없다. 다만 해삼은 찬물을 좋아하고 물이 따뜻해지는 여름철이면 여름잠에 들어간다. 그러니 제주에서 홍해삼은 겨울철이 제철이다.

안타깝게도 꽤 오래전부터 농사만을 지어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1차 산업인 농업을 2차 가공 산업으로 확대시키고 더 나아가 3차 산업과 결합시켜 이를 아예 ‘6차 산업’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제시한지도 오래됐다. 어업도 마찬가지다. 해삼이 아무리 좋다한들 그저 여행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해삼회 몇 점 팔아봤자 한계는 분명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홍해삼을 본격적으로 양식해 중국에 수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제주도는 이미 2013년부터 우도의 비양동, 상하고수동, 하우목동, 서천진동 등 4곳을 중심으로 총 50ha에 이르는 홍해삼 양식어장을 조성해왔다.

해삼을 음식으로 활용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대표적인데다가 당시에는 제주에 중국 관광객들이 막 늘어나고 있었으니 이 계획은 꽤나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게다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일본 수산물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계획은 시의적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실제로 2013년엔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대상으로 건해삼 수출계약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인들은 홍해삼을 선호하지 않은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중국인들은 해삼을 먹지만 주로 뿔해삼을 먹지 홍해삼을 반기질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주특별자치도의회도 2018년 예산안 심사에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이 자리에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뿔해삼을 제주 홍해삼 양식장에 도입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이는 자칫 외래종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문제가 우려돼 실제 도입까지 이뤄지진 않았다.

제주에 불어닥친 산업구조의 변곡점 앞에서 일종의 시행착오를 겪은 셈인데, 그래도 이러한 변화의 몸부림은 긍정적으로 봐줄만 하지 않을까. 제주에서는 최근 여름철 하면에 들어가는 홍해삼의 관리를 위해 하면제어기술 등에 집중하는 등 기술 발전을 꾸준히 노력하는 한편, 생산원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양식산업 경쟁력 확보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언젠가는 본격적인 바이오산업과의 결합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미 지금도 홍해삼을 분말환으로 만들어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홍해삼은 제주를 대표하는 특산물에만 단순히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다. 제주의 새로운 가능성은 바로 이런데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섬(島)은 바다가 곧 밭이자 공장이다. 그리고 섬은 바다에서 내일을 맞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