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국산 밀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제언
[특별기고] 국산 밀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제언
  • 정광호 (주)아이앤비 대표
  • 승인 2019.08.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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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아이앤비(주) 대표
◇정광호 (주)아이엔비 대표
-서울대 농화학과 석사
-용인대 식품영양학과 박사 수료
-해태제과ㆍ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농식품바이오 기술 사업화 및 창업 컨설턴트
-l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연구위원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밀 생산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밀 생산자들에게 또 하나의 희소식이 생겼다. '밀산업육성법'이 지난 20일 국무회의에 상정 의결되었다고 한다. 이 법은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 2월 공포될 예정인데, 정부에서는 국회와 정부 모두 국산밀 활성화를 위해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희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선에서 들리는 얘기는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생산자인 농민들은 과연 밀을 재배하면 쌀보다 소득을 더 올릴 수 있을 지에 대해 불확실성을 갖고 있고, 국산밀의 주 수요처가 되어야할 가공식품업체들은 이미 국산밀을 사용했다가 가격, 품질 등의 문제로 포기한 전례가 있어서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생산자와 수요자 모두 공통된 의견은 하나다. 정부가 지원해주면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지금 이 상태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데, 20일 발표된 정부 보도 자료를 보면, 뭔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밀 품질 관리 강화가 급선무

정부와 식품기업들은 2010~2014년 국산밀 활성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제빵 업계의 양대 산맥인 SPC그룹과 CJ제일제당은 각각 경남과 전남 지역국산밀 농가와 산업화 협력을 위한 MOU를 맺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여기에 이전부터 국산밀을 수매 보급하던 동아원 등 제분회사까지 가세해 2011년도 국산밀 생산량은 4만3000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나 2012년 이후부터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지금은 연간 생산량이 1만 톤을 간신히 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공식품업체들은 무엇보다도 국산 밀의 품질 문제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당시 국산밀로 만든 빵은 제대로 부풀어 오르지 않거나 노화가 빨라지는 등의 품질 문제가 계속되자 업체들은 사용량을 점차 줄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국산밀은 수입밀과는 달리 유독 쭉정이가 많고 등숙률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정부는 20일 발표한 보도 자료에서 우수한 밀을 품질기준에 따라 분류 관리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정부의 의지가 잘 반영되는 것 같진 않다. 밀 공공비축이 작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밀에 대한 구체적인 품질기준과 표준농법이 정해지지 않아 비축된 밀 품질은 생산자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만약 밀 품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그저 생산량만 따져 수매하게 되면 농가에서는 ‘백중’같은 다수확품종만 집중 재배하거나, 수매품종이라 하더라도 표준농법대로 하지 않고 쌀처럼 재배하면 글루텐 함량이 낮은 저품질 밀만 대량 양산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밀 수매품질 기준을 정해 당장 내년 수매 비축 분부터라도 품질관리를 실시해야한다. 또한, 종자는 세대를 거치며 환경적응, 교잡 등을 통해 당초 갖고 있던 특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파종용 종자는 특별히 관리해야하고 반드시 국가가 직접 종자를 지급하고, 민간에서 자가 채종한 종자는 수매를 하지 않는 등의 종자관리시스템을 반드시 확보해야한다.

■ 밀은 통곡 아닌 가루로 소비하는 것이다

또 정부는 국산밀 육성 대책으로 잡곡처럼 쌀에 섞어 혼식을 장려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으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다. 일단, 급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교의 경우를 따져보면 학생들이 잡곡밥을 잘 먹지 않고 심지어는 그대로 버리기까지 한다. 밥에 통밀을 섞겠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게다가 국산밀은 수입밀보다 글루텐이 적어 알러지 발생확률이 낮다고 했는데, 알러지는 유발원의 양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유발원 함유 유무 및 접촉빈도에 따라 발생하므로 상식과 어긋난다. 또한, 최근 출산율 저하와 이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학교급식에서 소비되는 쌀 역시 급격히 줄고 있다. 이런 판국에 쌀을 덜어내고 밀을 섞을 경우 국내 쌀소비 부진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므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밀은 전 세계 공통으로 가루로 만들어 다양한 식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곡물이다.

국내 식품용 밀 소비량 200만 톤 중 대부분이 수입산이며, 국산밀 자급률은 고작 0.5%에 불과하다. 밀 산업을 발전시켜야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바로 자급률을 높여야한다는 데에 있기 때문에 밀가루로 소비되는 수입 밀을 대체해야 맞다. 지금까지 국산밀로 수입밀을 대체하겠다는 명분만 있었지 구체적인 전략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어서 번번이 실패했다. 이를테면, 국산밀 100%인 빵을 만들어 수입밀가루 빵을 대체하자는 식이었으나, 절대적으로 잘못된 전략이다.

수입밀은 전량 제분회사에서 밀가루로 만드는데, 그 밀가루는 100% 단일산지 밀이 아니라 글루텐과 회분 함량을 고려해 여러 산지의 밀을 혼합해 만든다. 밀 품질은 봄밀과 겨울밀, 북반구와 남반구, 위도 등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데, 이것들을 적당히 조합하면 대략 15가지 종류의 다른 밀가루를 만들어낼 수 있고, 용도에 따라서 수 백 가지 밀가루도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유통되는 밀가루 가공품 중 ‘미국밀 100% 빵’, ‘호주밀 100% 국수’ 등의 제품은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국산 밀은 순수 100%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제분 시 조합되는 여러 가지 밀 품종의 하나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펴는 것이 맞다. 그래야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분 시 다른 수입밀들과 혼합 사용되려면 균일한 글루텐 함량과 회분함량이 나올 수 있도록 국산밀을 철저하게 품질 관리해야한다.

■ 국산밀 중심 제분공장 설립 등 가공설비 확충 필요

제분사업 수익구조를 분석해보면, 밀가루 판매수입이 전부는 아니다. 제분 시 발생하는 겨나 쭉정이, 불합격품 등의 부산물 판매 수입이 꽤 많다. 밀 부산물은 인근 지역에 사료로 판매되어 가축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으로 사용된다. 사료로 조차 소진되지 못한 것들은 비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제분공장을 단순히 밀가루 공장으로만 보면 안 된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제분공장은 지역 바이오 자원 순환 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 가공센터로서, 밀 자원의 안정적 수요처로서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 자원 재활용과 소득창출, 식량자원 공급 등 매우 중요한 역할로 운영된다.

현재는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수입밀을 쓰기 때문에 지역 농민들에게 주는 경제적 이익효과가 거의 없지만, 국산밀을 가공하는 제분공장을 설립하게 되면 지역경제에 주는 긍정적 효과가 대량으로 생겨날 것이고, 지금 정부에서 구상하고 있는 푸드플랜 계획에도 부합되는 바이다.

국산밀 생산자들 대다수가 소규모 제분 공장 또는 기존 제분공장에 임가공 의뢰해 밀가루를 만들고 있다 보니 높은 생산가격과 안정적인 품질관리의 어려움 등에 시달리고 있다. 국산밀 제분은 기본 생산 비용과 부대 수익등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을 갖춘 직접 가공형태가 바람직하다.

일본에서는 국산밀 제분을 위한 설비가 현 단위 농업기술센터에 설치되어 있어 생산된 밀을 맡기기만 하면 밀가루를 위탁 생산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밀자급률은 15%수준까지 올라섰다. 밀은 설탕, 전분당류, 유지등과 더불어 가공식품산업의 4대 주요 소재이며, 의약품, 화장품, 제지, 플라스틱과 도료 등 화학 산업 등에 사용되는 바이오 소재을 공급하는 중요한 천연자원이다.

국내 철강소재산업의 진흥을 위해 국가가 직접 포항제철을 만들었듯이, 밀도 산업 생태계 조성 및 연관 산업과의 연계 발전을 위해 국가가 직접 기초소재공장을 설립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동안 밀, 쌀 등의 식량작물에 대해 식량문제 해결이나 농가소득 창출이라는 단순히 1차산업적인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식량과 그 외 연관 산업으로의 확장 이용 등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개별 농가나 영농 조합 등 민간 경제주체 대상 직접 지원은 정부가 계속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미봉책일 뿐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밀 산업이 발전되려면 국가가 산업의 기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시스템 구축은 개인이나 기업이 하려면 역량이 달려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내 농산업이 발전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시스템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밀산업육성법’ 제정을 통해 국내 밀 산업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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