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조명 받는 천연항생제 ‘박테리오파지’
[기고] 재조명 받는 천연항생제 ‘박테리오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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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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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내성균 문제 극복 위한 자연친화적 대체재로 부상
2006년 미국FDA 식품첨가물 사용 승인 이후 실용화 가속
즉석편의식품 육류포장지에 사용시 살모넬라균 증식 한달여 방지
'안전한 바이러스' 인식 제고로 식품 안전에 폭넓게 활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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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아 박사 (한국식품연구원 소비안전연구단)

임정아 박사
한국식품연구원 소비안전연구단

인간의 수명을 증가시킨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로 항생제의 발명과 발전이 꼽힌다. 무시무시한 각종 세균의 창궐에 속수무책이었던 인류는 1940년대 항생제의 효시격인 페니실린을 발명하고 이를 대량 보급한 뒤 천연두, 홍역, 콜레라, 패혈증, 파상풍 등 인간의 생명을 위협해 온 무서운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종류의 항생제를 개발하면서 지금까지 악성 세균과의 전쟁에 맞서 왔다. 

하지만 ‘기적의 약’으로 불린 항생제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용도로 과용된 탓에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 박테리아가 생겨나 또다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00여 년 전 한때 널리 쓰인 천연항생제 ‘박테리오파지(Bacterophage)’가 최근 재조명받고 있다.

‘세균(Bacteria)을 잡아먹는(phage)’이라는 뜻을 가진 박테리오파지는 영국의 세균학자 프레더릭 트워트와 프랑스의 펠릭스 데렐이 각각 1915년과 1917년에 독립적으로 발견한 바이러스다. 세균을 잡아먹는 천연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는 박테레오파지는 얼마 후 등장한 페니실린의 대량 보급으로 단기간에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박테리오파지가 21세기 들어 새삼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항생제 내성균 문제 극복과 자연친화적인 항생제 대체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테리오파지의 효능을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도 갠지스강을 들 수 있겠다. 장례식이 많이 치러지는 갠지스 강에서 인도인들이 수시로 입수 목욕을 하고 강물을 마시는데도 콜레라 등과 같은 세균 감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세균의 천적인 박테리오파지가 강물 속에 많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테리오파지는 기존의 항생제와 비교할 때 동식물에 작용하지 못하므로 인체에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비교적 저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고, 숙주 세균만 있으면 스스로 증식하여 작용 농도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항생제 대체제와 비교했을 때도 장점이다.

이러한 박테리오파지의 세균 제어연구는 지난 2006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식품첨가물로서의 사용 승인 이후로 빠르게 실용화하고 있다. FDA 승인은 박테리오파지의 안전성과 기능성을 증명해준 것으로, 바이러스는 위험하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부터 박테리오파지는 안전하다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된 셈이다.

세균의 제어뿐만 아니라 검출에도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할 수 있다. 박테리오파지는 특정 세균만 인식해 감염시키기 때문에, 방출된 박테리오파지를 측정함으로써 숙주 세균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오염된 세균의 양이 적을 때도 검출 가능하며, 살아있는 세균을 구분하는 장점이 있다. 방출된 박테리오파지의 유전자를 측정하거나 형광을 발현하는 리포터 파지를 개발해 식중독 세균을 검출한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박테리오파지의 활용은 다른 식품안전 분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일례로 즉석섭취 편의식품(Ready-to-eat) 육류 포장지에 박테리오파지를 포함시켜 살모넬라균의 증식을 30일 이상 저해시킨 결과가 2017년 보고됐다. 또한, 조개류와 간 쇠고기, 가금육에서 장내 세균과 관련된 박테리오파지가 장 바이러스의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식품 시장의 글로벌화로 인해 새로운 식품과 제조과정이 유입돼 좀 더 복잡한 food chain이 요구되고, 즉석섭취 편의식품(Ready-to-eat) 식품과 최소 공정만을 거친 식품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미생물 오염의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식품의 품질 수명 기간과 위생적인 효과는 늘이면서 식품의 영양적·기호학적 기능에 대한 영향은 최소화하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며,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한 기술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테리오파지의 상용화를 위해선 기술개발 못지않게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유산균도 세균이지만 유익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듯이, 박테리오파지도 바이러스이지만 안전하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식품안전에 보다 넓게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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