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산업 진흥 정책을 위한 제언
국내 식품산업 진흥 정책을 위한 제언
  • 정광호 (주)아이엔비 대표
  • 승인 2018.01.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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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주)아이엔비 대표

초콜릿은 유럽산을 최고로 쳐준다. 전 세계 국가별 초콜릿 소비량을 보면 스위스를 필두로 유럽 국가들이 모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가 나지도 않는 유럽에서 초콜릿 생산과 소비가 활발한 이유는 획기적인 가공기술 개발 때문이다. 1828년 네덜란드 화학자 반 호텐은 물에 타 먹는 음료형태로만 섭취하던 초콜릿 대신 코코아빈을 새롭게 가공하여 유지와 파우더를 분리하고, 설탕을 넣어 굳히는 형태의 새로운 초콜릿 가공기술을 개발했다. 이로써 휴대하기 편리하게 된 초콜릿 산업은 급격히 발달해 유럽의 대표적인 상품이 되었다.

코코아는 남아메리카에서 수입되어 코트디부아르, 가나 같은 아프리카지역 노예농장에서 주로 재배되었다. 현재는 이들 나라 외에도 적도에 걸친 열대나라에서 코코아가 주로 재배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초콜릿이 거의 소비되지 않으며 수확한 카카오빈은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돼 가공된다. 초콜릿은 상대적으로 고가의 식품군에 속하며, 고가로 창조되는 고부가가치의 대부분을 가공공장이 있는 유럽에서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원료인 농산물에서 식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품화 시스템에서 부가가치의 대부분을 가공식품에서 가져가는 만큼 우리나라 정부도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식품산업 진흥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농식품 R&D기술개발 투자를 비롯한 각종 진흥 정책을 펼쳐왔으나 아직까지 그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그 이유를 다음의 세 가지 요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국산 원료의 수급불안 및 품질의 불안정성

가공식품에 사용되는 원료는 대부분 수입산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지만,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국산 원료를 사용하려고 해도 품질균일화나 수급안정성을 따질 때 수입산을 쓰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2014년 국내 식품업계를 뒤흔들었던 가짜백수오 사건은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 승인 시 사용한 원료는 국산 백수오였으나, 국산 백수오가 중국산 이엽우피소와 정확히 구분되지 않고 유통되다 보니 재배농가는 중국산을 국산 백수오로 알고 재배했을 정도다. 만약 품종관리나 재배이력관리가 잘 되었더라면, 이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공식품업계에서 보는 국산원료란, 가격은 비싼데 품질도 썩 믿을만하지 않고, 안정적인 공급도 기대하기 힘든 문제 많은 원료다. 게다가 무농약, 유기농 인증도 믿을 수 없고, 농가 직거래시 공급 계약위반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아예 믿을 수 있는 중간공급업체와 거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상황에 정부 정책이 생산자편향적이라는 점도 국산 원료를 사용하기 어렵게 한다. 일례로, 얼마 전 농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쌀값을 인위적으로 갑자기 올렸는데, 이런 식의 갑작스런 원료가격 변동은 국산 원료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2. 현장에 즉시 적용 가능한 생산기술과 설비 부족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산물을 효율적으로 가공할 수 있는 단순한 가공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단순한 기술은 일선에서 쉽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처리비용이 저렴한 기술은 상품가격을 낮춰 판매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R&D 과제는 논문위주, 특허위주, 신규 중심으로 선정되다 보니 단순하지만 효과가 큰 기술, 당장 필요하지만 예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기술 등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현장에서 필요한 농식품 기술들은 주로 학계에서 개발하는 비싸고 고급한 기술, 먼 미래를 대비하는 기술들이 아니다. 세균을 효과적으로 살균할 수 있는 방법, 추출을 저렴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등 간단하고 비용이 덜 들어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들은 품질은 유지하면서 생산가를 낮추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장에서는 현안 해결을 위한 R&D과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생산설비도 마찬가지다. 업체마다 사용특성에 따라 구비해야 하는데, 농기계처럼 이리저리 옮겨 놓을 수도 없는 것을 다른 곳에 있다는 이유로 보조금을 지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특이한 스펙과 규격이 다른 설비를 사다 보니 정작 현장에서 필요한 단순하고 저렴한 기술장비보다는 전시해놓기 좋은 값비싸고 특수한 설비들이 자꾸 들어온다.

3. 기초소재에 대한 관심 부족

식품기초소재는 여러 가지 식품에 공통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한번 시장에 안착하면 대량소비,안정적 성장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설탕, 물엿, 식용유, 전분, MSG, 핵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기초소재의 대부분은 농산물을 가공한 것으로서, 전체 농산물 생산량 중 소재 형태로 사용되는 양은 60~80%를 차지할 정도다. 이런 이유로 식품선진국들은 앞선 식품가공기술을 바탕으로 자국 농산물 또는 수입농산물로부터 기초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국산 농산물을 이용한 기초소재는 변변찮은 수준인데, 가장 큰 이유는 가격경쟁력이지만, 생산기술과 시설부족도 한몫 담당한다. 쌀만해도 중국에선 전분과 단백질, 전분당 등 기초소재로 만들어 내수 및 수출용으로 활용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쌀이 남는다고 걱정만할 뿐, 대량 소비를 일으킬 수 있는 쌀가공 소재 활성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신소재 사업은 사용특성에 맞춰 제품을 개선하고, 응용기술까지 함께 개발하고 제공해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 최근 농협에서도 쌀가루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설비와 생산량이 크다고 잘 굴러갈 수가 없는 것이 소재사업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농산물 소비를 대폭 늘릴 수 있는 기초소재 개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결과적으로 국내 식품산업 진흥 정책은 국산 농산물을 가공해서 제품만 열심히 나오게 하면 알아서 팔리겠지 수준에서 머물러 있기 때문에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국산 농산물은 상거래에 필요한 상품으로서의 특성이 결여되어 있고, 소비자 및 가공식품회사를 위해 규격화 되어 있지 않다. 그때그때 개별 생산자 환경에 맞는 상태로 생산되다 보니 규격과 품질이 뒤죽박죽이라 받는 쪽에서는 처리해내기가 매우 힘들다. 반면 수입농산물은 규격에 맞게 크기와 품질이 일정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가공식품회사에서 사용하기가 훨씬 더 편리하다.

생산자들의 소득을 늘리는데 초점이 맞춰진 정부의 식품산업 진흥 정책은 가공식품 원료로서 더 싸고 더 품질 좋고 규격화된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더 비싸게, 더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스타상품 개발을 촉진시켜 국산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식품산업 발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원료부터 제품까지 통일된 전략에 의한 정책 접근이 있어야 한다. 막연하게 신기술이 필요하다는 등의 뜬구름 잡는 얘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정광호 (주)아이엔비 대표
-서울대 농화학과 석사
-용인대 식품영양학과 박사 수료
-해태제과ㆍ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농식품바이오 기술 사업화 및 창업 컨설턴트
-l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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