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바꾼 삶의 방식과 파괴된 자연을 되살리는 행동 의지 중요
생물다양성·교육·홍보에 초점 두고 위기의 식량시스템 개선 방안 집중 논의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시 파르코도라서 22~26일 5일간 성대히 열려


이탈리아 토리노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국제슬로푸드협회는 짝수 해마다 세계 최대 미식(美食) 축제인 '테라 마드레 살롱 델 구스토(Terra Madre Salone del Gusto)'를 개최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년엔 어쩔 수 없이 열리지 못했다가 4년만에 지난달 22~26일 5일간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토리노시 파르코 도라(Parco Dora, 도라공원)에서 성대한 막을 열었다. ‘테라 마드레 2022’는 그동안의 답답함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연일 수십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등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테라마드레는 전세계 슬로푸드 대표(델리게이트, delegate)들이 초청되고, 이들에겐 테라마드레재단의 기금으로 6박7일간의 숙식이 제공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의 대표단에게는 왕복항공권까지 지원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누구나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평등과 공정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기자는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원 17명과 함께 한국대표단으로 합류해 '재생(Regeneraction)'을 주제로 한 5일간의 슬로푸드 페스티벌과 4일간의 관련 미식 여행에 참여했다. 재생과 관련한 컨퍼런스를 통해 슬로푸드 운동의 철학과 다양한 활동을 알게 됐고, 맛의 방주와 프레시디아(Presidia) 등재식품 전시장에서는 슬로푸드를 중심으로 한 세계 식품산업 트렌드와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맛워크숍, 미각교육 등을 통한 조리 및 음식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고, 슬로푸드 네트워크 모임에서는 Non-GMO 운동이 필요한 이유와 세계 각국의 활동 사례를 직접 보고 들으며 종의 다양성이 갖는 가치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탈리아 북서 지역의 슬로푸드 생산지 견학을 통해서는 소규모 생산자들의 철학과 지구를 살리는 농업 및 식품을 대하는 그들의 진실된 자세를 읽을 수 있었다.
한국식품정보신문_푸드아이콘은 창간 5주년을 맞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테라마드레 현장을 체험하고 얻은 생생한 정보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미래 우리나라 농업 및 식품산업의 방향을 모색하는 장으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 주>

땅은 곧 생명을 품고, 잉태하고 양육하고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뜻의 ‘테라 마드레’ 행사의 2022년 주제는 '재생'이다.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모토로 하는 슬로푸드 운동의 최종 목표인 지속가능한 농업을 바탕으로 한 음식활동을 통해 오늘날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구와 인류의 건강을 되찾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는 의미와 일맥 상통한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일순간 바꿔진 우리 삶의 방식과 더욱 악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농업의 재생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번 테라마드레가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종덕 회장은 "재생은 오랜 전염병 이후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눈과 새로운 열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것이다"며 "음식은 이 재생의 중심에 있어야 하고, 평화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리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철강산업 단지가 공원으로 변신한 파르코도라의 '재생' 상징성
‘테라 마드레 2022’ 페스티벌이 열린 파르코 도라(도라공원)는 행사 주제인 ’재생(REGENERACTION=REGENERATION+ACTION)‘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삶의 현장이다. 축제가 벌어지는 바로 그 장소가 곧 재생된 공간이라는 상징성이 감동으로 전해온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곳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Fiat)의 철제부품 공장과 미쉐린(Michelin) 타이어 공장 등이 모여 있던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후 관련 산업의 쇠락으로 제철소가 문을 닫으며 도라 강이 발견됐고, 쓸모 없이 버려진 땅을 살리기 위한 '스피나 센트랄(spina centrale) 프로그램이 시행돼 도라 강을 중심으로 한 공원으로 거듭난 것이 바로 파르코 도라이다.
거대한 철강 공장을 받치고 있던 기둥들과 바닥, 산업 단지를 잇는 이동수단이었던 모노레일, 건물을 철거하다 남은 콘크리트벽과 그래피티 벽화 등의 잔재물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것이 공원의 일부로 녹아 있다. 그것들은 곧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순간 바뀐 삶의 방식과 파괴된 자연을 재생하는 행동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한때 공장 연기와 산업의 소음이 지배하던 공간이 이제는 지역시민과 더불어 자연을 누리도록 복원돼 지속가능한 농업과 환경, 정치 및 식량의 미래를 얘기하고, 논의하는 장소가 됐다는 것은 의미 심장한 일이다.
주최 측은 2020년과 2021년이 ‘회복’의 해였다면, '테라마드레 2022'는 '재생'이란 주제에 걸맞는 혁신과 진정한 농업생태학적 전환이 시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슬로푸드 전략의 세 가지 기둥, 즉 △생물다양성 △교육 △홍보에 초점을 두고, 체계적인 친환경 접근과 그것이 우리 음식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후·건강·지정학적 위기의 식량시스템을 다양한 관점에서 '재생'시키기 위한 방안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과 가공식품은 물론 사라지는 토종 종자를 살리기 위해 힘쓰는 농부 및 식품 생산자들의 노력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그 선한 영향력이 세계 만방에 퍼져 나가도록 하는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테라마드레 2022는 또 토리노 여행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전 세계 슬로푸드 네트워크의 활동을 공유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도 병행 개최함으로써, 재생의 의미에 직접 만나는 기쁨 외에도 지구에 대한 책임과 사랑, 보살핌의 행위까지 담았다는 점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테라마드레는 그동안 160개국 7000여명의 슬로푸드 회원(관람객 제외)이 초청됐으나, 아직 팬데믹의 어두운 그림자가 걷혀지지 않은 탓에 올해는 130개국 3000여명으로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하지만 연일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줄을 이으면서 이전 행사보다 더 활기를 띠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