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토털 치유문화체험장 변신 중인 영주 '호수목장'..."고난의 길, 오기가 쌓이니 철학이 되었습니다"
[탐방] 토털 치유문화체험장 변신 중인 영주 '호수목장'..."고난의 길, 오기가 쌓이니 철학이 되었습니다"
  • 김현옥 기자
  • 승인 2021.09.30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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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새들 지저귀는 대나무 숲길 걸으며 복잡한 마음 정리하는 수목원 조성
초원에 수련장 갤러리 갖춰 동물과 사람이 행복한 낙농 유토피아 탈바꿈 시도
박성수 대표 “생애 최대 25억 매머드사업...보고 듣고 느끼는 힐링명소 만들기”
안일윤 원장 “국산 종자로 키운 낙농 외국에 내줄 수 없어...2세에 물려줄 것”

 

경북 영주시 의상로 152번 길, 영주부석사로 가는 대로 변에 위치한 호수목장 전경

“요즘 내 생애 가장 크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목장에 연건평 127㎡(570평) 규모의 힐링 카페와 수목원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총 25억 정도가 투입되는 매머드급 사업이예요.”

높푸른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유난히도 두드러진 가을날 지난 15일, 경북 영주시 의상로 152번 길 호수목장에서 만난 박성수 대표는 한창 바쁘게 공사 중인 현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호수목장의 신축 건물은 지하 91㎡(300평), 지상 81㎡(270평) 규모로 지어진다. 기존 치즈 및 요구르트 공장의 생산능력을 한층 늘릴 계획인데, 치즈 공장의 경우 전체 건물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 나머지는 치유문화 체험 공간으로 조성된다.

박 대표는 호수목장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영주시의 대표 명소‘로 만들 작정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취재한다는 일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때이지만, 이곳 소백산 기슭에 자리잡은 호수목장은 맑은 물과 공기를 품고 있는 청정지역이기에 한결 마음 편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마침 착유(소의 젖을 짜는 일) 시간이라 박 대표는 목장으로 총총 걸음을 옮겼고, 대신 그의 아내 안일윤 밀크아카데미 원장이 얘기를 이어갔다. 부부는 햇볕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구릿빛으로 그을린 전형적 농부 특유의 정 많은 얼굴로 친근감을 더했다.

토털 치유문화체험 공간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는 호수목장 박성수 대표(오른쪽)와 안일윤 밀크아카데미 원장 부부

■ 38년째 목장 운영... 젖소 개량·깨끗한 목장 가꾸기 운동으로 국내 낙농업 선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발효되어 맛과 영양이
더욱 풍부한 수제 영주요거트와 치즈 제품.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착유가 가능한 종자 소 4마리로 낙농업에 뛰어든 박성수 대표는 올해로 38년째 목장을 운영 중이다. 그는 체형과 유질이 우수한 젖소개량은 물론 깨끗한 목장 가꾸기 운동을 통해 지금은 250여 마리(착유우 100두 육성우 150두)에서 하루 3톤에 달하는 고품질의 원유를 생산, 공급하는 친환경 목장주로 유명하다.

호수목장은 5445㎡(1만 8000여 평) 부지에 젖소를 성장단계별로 구분 사육하는 대형 축사 4개와 여기서 갓짜낸 신선한 원유로 수제 치즈와 발효유를 만드는 가공공장 외에도 소비자들이 목장을 둘러보고 치즈를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주에서 최초로 생산된 '소백산 수제요구르트'는 호르몬제나 유화제 안정제 보존료 등이 일절 첨가되지 않고 소량의 정백당만 첨가될 뿐이다. 또한 요구르트나 치즈를 발효시키는 동안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아 부드럽고 안정적인 맛과 영양, 품질을 구현하는 것이 호수목장 유제품의 특징이다. 

그래서 이곳은 정부가 추진한 6차산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선진 낙농 목장을 지향하는 낙농가들이 모델로 삼기 위해 호수목장을 견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대표 부부는 이 정도면 느긋하게 노후를 준비하며 여유를 즐길 때도 되었건만, 국내 그 어떤 목장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일에 온 힘을 다해 도전하고 있다.

호수목장은 종축 개량을 통해 체형과 유질이 우수한 젖소 250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호수목장 젖소들은 성장단계별로 구분 사육되고 있다.
태어난 지 2개월이 지나 이유기에 들어간 어린 송아지들
호수목장 잔디광장에서 바라본 축사. 지붕이 모두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 청정목장 발판 동식물 어우러진 자연 속 쉼터... 사람 살리는 치유공간 변신 채비

호수목장이 힐링 문화 공간으로 변모시켜 낙농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동안 체험목장을 통해 만난 숱한 소비자들로부터 일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가 피폐해져 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안정과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두 번째는, FTA 시장 개방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국내 낙농업을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통 큰 전략의 일환이다.

“그동안 UR이나 DDA, WTO, FTA 등 농업과 관련한 협상 때마다 가장 먼저 시장을 양보한 것이 낙농이었어요. 그 결과 1980년대 3만8000여 개에 달하던 낙농가가 이제는 5000여 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우유를 포함한 식량은 국력이고 국부이기 때문에 더 이상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확 들더라구요. 그래서 청정 목장을 기반으로 하는 힐링 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안일윤 원장의 말투에서 국내 낙농업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가늠케 했다.

“사실 25억이라는 공사 자체가 워낙 큰 탓에 겁도 났는데, 아내가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진행하게 됐습니다” 박 대표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안 원장의 결심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강조한다

1년 365일 한시도 젖소를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목장 일도 그렇지만, 이를 바탕으로 사람을 살리는 치유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부가 따로 놀아서는 절대 안 된다. 안주인인 안 원장의 결단이 그만큼 값진 것이다. 다른 농업도 그렇지만, 특히 낙농업의 경우 부부 상호 간 이해와 협력, 배려가 절대적으로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는 불문율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호수목장 수목원엔 안일윤 원장이 '그리운 금강산'으로 이름 지은 연못이 있다.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전경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호수목장 수목원엔 안일윤 원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기념비가 이를 대변해준다.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호수목장 앞마당에 1000여평으로 꾸며진 수목원 입구.

● 대나무 숲길 지나면 아롱다롱 꽃과 나무·연못이 반겨...틈틈이 모아온 조경석·관상수가 소중한 자산

호수목장 수목원에서 바라본 축사 전경
태양광 패널 지붕이
마치 최첨단 과학관을 연상케 하는
호수목장 축사 전경

안 원장은 “20여 년간 무심코 모아온 각종 모양의 돌과 나무들이 오늘날 이렇게 소중한 자산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틈틈이 수집하고 심어온 소나무 은행나무 등을 비롯한 관상수며 조경석, 야생화와 희귀꽃들이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분지 형태의 땅을 개간해 언덕을 만들고 경사 높은 곳에 젖소들의 축사를 둔 호수목장 앞마당엔 박 대표 부부가 지난 1년간 땀 흘려 가꿔온 1000여 평의 수목원이 모양을 갖추고 있다. 거기엔 각종 꽃들과 새들이 둥지를 틀고 지저귀는 나무들,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연못이 있다. 안 원장이 ’그리운 금강산‘으로 이름 지은 곳은 흡사 풍경이 수려한 금강산을 빼닮은 모형이다.

수목원 한 쪽 담벼락을 따라 심은 대나무 모종 340그루가 하늘 높이 치솟아 숲을 이룰 즈음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바람결에 사각사각 부딪히는 대나뭇잎 속삭임을 벗 삼아 일상에 쫓긴 가쁜 숨을 고르며 산책하게 될 것이다.

또한, 수많은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는 상대를 떠올리며 큰 소리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일명 ’욕 항아리‘를 곳곳에 배치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도록 한다는 것이 안 원장이 구상하는 힐링 공간이다.

그동안 목장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했던 이웃 집터를 매입해 치즈 체험장으로 연결되는 잔디밭을 시원하게 확장할 수 있게 된 호수목장에선 사계절에 어울리는 각종 음악회와 콘서트 등 문화행사가 계속 열리게 될 것이다.

건물 지하에 들어갈 체험 공간은 무릎을 다스리는 수련장과 갤러리로 구성되고 60평 규모의 세미나실도 마련해 영주시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를 유치할 예정이다.

● '경상북도 제1호 체험목장' 책임감이 '글로벌 경쟁력 갖는 낙농' 변신의 꿈 키워

박성수 호수목장 대표
박성수 호수목장 대표

“호수목장은 경상북도 제1호 체험목장입니다. 그만큼 업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고, 고민한 끝에 토털 치유문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목장은 코를 찌르는 축산 분뇨 냄새 때문에 지역민들로부터 기피시설로 취급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 대표 부부는 이러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한편 볼거리와 즐길 거리, 배울 거리 등을 갖추어 온 가족이 찾는 명실상부한 자연친화적 지역 문화 공간으로 바꿔놓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박 대표는 "사람 사는 곳에 사람 냄새가 있고, 동물 사는 곳에 동물 냄새가 날 수밖에 없어요. 낙농업은 축분 냄새가 동반될 수밖에 없는데, 그 냄새로 인해 생활에 불편을 주고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라면 오히려 살아 있는 동물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삶이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호수목장의 입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탓에 박 대표는 축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지역민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심어주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7년부터 매년 우유사업에서 얻어지는 수익금 중 200만원을 떼어 관내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금으로 희사하고 있는 것도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호수목장의 미션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안 원장은 장학금을 정액으로 책정한 이유에 대해 수익금의 일정 비율로 조성할 경우 사업성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 있기 때문이며, 1년에 1000만 원을 기부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박 대표 부부는 호수목장을 혐오시설로 인식해 소수서원, 부석사, 선비촌 등 영주시 유명 관광명소 벨트 내에 위치한 것을 못마땅해 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지역민들과 끊임 없는 소통을 통해 영주 시민은 물론 지역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하여금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역발상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 '식량안보' 중요성 깨닫는 순간 2세에 물려주기로 다짐...가족기업으로 대 이을 것

안일윤 호수목장 밀크아카데미 원장
안일윤 호수목장 밀크아카데미 원장

“우리나라에서 낙농업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생스럽기 때문에 50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식한테 물려줄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오기가 생기고, 그 오기가 쌓이니 철학이 되더라구요.” 안 원장의 말이다.

시장 개방으로 경쟁력 없는 소농이 대거 사라지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대농 중심으로 정리되면서 국내 낙농업은 수직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종자(씨앗)가 곧 금”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국내 내로라하는 종자회사들이 하나둘 외국계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 것을 지켜야겠다는 오기가 생겼고, 이제는 그 오기가 경영철학으로 녹아들었다는 설명이다.

“오죽하면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을까요.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입니다.”

안 원장은 “1980년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 정액을 수입해 젖소를 길렀지만, 오랜 세월 종축 개량을 통해 지금은 국내산 씨수소를 쓰고 있다.”며 “종자 개량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시장 개방으로 선진 낙농국에 밀려 우리 것이 사라진다면 곧 우리의 역사와 가치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미치니 결단코 지켜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부터 아들들에게 교육하기 시작했고, 다행이 둘째 아들이 부모의 뜻을 받들어 농업을 물려받기로 약속했다. 박 대표 부부는 내년 9월부터 2세가 본격적으로 참여하면 대를 이어 가족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새로운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에겐 순하디순한 까만 눈의 젖소와 사랑스러운 송아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화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얘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지요. 소 여물이나 우유를 주면서 동물과 교감하면 어느새 시름이 사라지고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됩니다. 아이들은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 놀고 어른들은 음악을 들으며 수목원을 거닐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그것이 미래 호수목장이 추구하는 목가적인 풍경입니다."

다음에 이 곳을 방문할 때는 일이 아닌 진정한 휴식을 맛보기 위한 여정이 되기를 바라면서 호수목장의 성공적 변신과 영원한 발전을 염원한다.   

아무리 화나고 기분나쁜 일이 있어도 귀엽과 사랑스러운 어린 송아지들을 보면 입꼬리가 올라가게 된다. 사람이 동물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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