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를 마시다(7)_백년초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를 마시다(7)_백년초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6.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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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달린 선인장'...100가지 질병 고치고 100년동안 살 수 있다는 뜻
본초강목에 천식·폐질환·위장염·고혈압·관절염 등 효능 있는 것으로
각종 차 제품 외 국수·한과·발효유·음료 제품 선보여...경제 작물로 재배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이 내려진 이후 요즘 제주는 초비상이다. 방류 후 200일 정도면 제주 앞바다에 오염수가 도착한다는 시뮬레이션이 나왔다. 어떤 시뮬레이션에는 70여일 정도면 도착한다는 결과도 있다.

이것이 만일 현실화된다면 아마도 제주에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된다. 제주의 해양수산업은 완전히 황폐화 될 것이다. ‘수다 in Jeju’ 코너를 통해 소개했던 물고기들이나 각종 해산물은 더 이상 제주의 자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터전을 바다에 두고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앞날이 막막해졌다. 에메랄드빛 바다엔 들어가보지도 못할뿐만아니라 가까이서 보는 것만도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더 이상 제주바다를 찾는 이는 없을 것이며 해양레저산업의 붕괴 역시 불보듯 뻔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주가 먼저 겪는 일일 뿐, 우리나라 서해와 동해에도 곧 닥칠 일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바다를 기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재앙적 결정이 아무래도 미국의 묵인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미국이야 지리적으로 일본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직 이러한 현실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다. 2023년부터 2052년까지 약 30년 간 125만 톤 이상 방류할 계획인데 이 정도 기간과 양이면 태평양은 물론 인도양 바다를 모두 오염시키고도 남을 양이다. 이미 시뮬레이션으로 다 나와 있다.

제주 한림읍 월령리의 ‘백년초’ 선인장은 놀랍게도 중남미에서부터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왔다. 그토록 멀게만 생각되는 태평양이 지척에 있는 느낌이다.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는 있는데 광활한 태평양이 실은 얼마나 놀랍도록 가까운 지를 잘 알려주는 실물(實物)이 제주에 있다. 제주 한림읍 월령리의 ‘백년초’다. 백년초는 우리가 흔히 보는 손바닥 모양의 선인장이다. 놀랍게도 이 선인장의 원산지는 멕시코다. 물론 멕시코 선인장이 제주 백년초와는 조금 다른 종인걸로 봐서는 멕시코보다는 조금 위쪽의 미국 해안에서 떠밀려 온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선인장 백년초(학명: Opuntia ficus-indica Mill.)는 멕시코산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약 200여년전 북 제주도에 해류를 타고 떠밀려 와 자연 서식하여 군락을 이루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에서 서식하는 백년초는 멕시코에서 흔하게 기르는 (O. ficus-indica) 백년초와는 다른 미 애리조나 원산종인 (O. humifusa) 백년초로, 멕시코 백년초와는 다른 종이다. (중략) 중남미산 선인장이 도대체 어떤 경위로 동북아시아의 섬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성돈, 제주 약용작물 재배의 역사, 헤드라인제주 2020.5.28.)

그렇다면 백년초는 태평양을 횡단해 제주에 자리잡기까지 그 짜디짠 바닷물에도 훼손되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먹으면 100가지 질병을 고칠 수 있고, 100년은 살 수 있다고 해서 ‘백년초’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지구상에는 4,000여종의 선인장이 있는데 그 중 열매가 달린 선인장은 백년초 또는 손바닥 선인장으로 불리며 옛부터 식용이나 식품 대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거제도와 제주도 등 주로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방에 많이 분포하나 생명력이 강하여 아무곳에서나 잘 자라므로 지금은 가정에서 화초 정원수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백년초는 국내에서 오래 전부터 임상효능이 알려져 왔는데,선인장즙을 마시면 변비치료, 이뇨효과, 장운동의 활성화 및 식욕증진 효능이 있고, 선인장 잎은 피부질환, 류마치스 및 화상치료에 사용되어왔다. 또한 본초강목에 의하면 기관지 천식, 해수 기침, 폐질환, 위염, 변비, 장염, 신장염, 고혈압, 당뇨, 심장병, 신경통, 관절염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백년초를 가공한 건강식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서권일 외, 백년초 추출물의 항균 및 항산화성, 농산물저장유통학회지 제6권 제3호, 1999)

지금은 ‘선인장 마을’로 유명해진 월령리에 20여년 전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그 때 백년초라는 걸 처음 봤다. 당시 백년초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때였고, 월령리 역시 전형적인 제주의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집도 고쳐드리고 도배도 새로 해드리고, 마을 아이들을 모아서는 인형극도 열고 어른들을 모셔서는 경로잔치도 열었다.

그 때 이 마을에 선인장이 얼마나 많았는 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눈에 보이는 선인장 가시만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잘 보이지 않는 선인장 가시들이 바닷바람에 날려 옷이나 살에 어느새 박히게 된다. 이것이 처음엔 간질간질해서 흐르는 땀 때문인 줄 알고 쓱 닦아냈다간 피부에 깊숙이 박혀 저녁무렵엔 살갗 여기저기가 벌겋게 부어 올랐다. 선인장 가시의 독이 오른 것이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은 백년초 수확을 도와드릴라치면 애써 말리셨다. 혹여 서울 청년들이 선인장 가시에 피부를 상할까봐 그 일만은 절대 시키지 않으신 거였다. 그렇게 4박5일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마을에서 백년초를 푸짐하게 선물로 주었다.

백년초 열매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있으니 수세미로 잘 닦은 다음 믹서기에 갈아 설탕을 타서 먹으라는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그 해 여름, 백년초 맛인지 설탕 맛인지 알수는 없었지만 예쁜 자줏빛 음료를 달게도 오랫동안 마셨던 기억이 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백년초는 이제 각종 식품에 활용되면서 먹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제주 관광지에서 파는 백년초 초콜릿과 한라봉 초콜릿은 저렴하고 맛도 괜찮아서 육지에서 온 여행객이 선물로 사 가는 단골 품목이기도 하다. 제주에서는 1990년부터 경제작물로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인공 재배가 처음으로 1ha 시작되었으며 1998년 322.8ha로 확대되었고, 2014년 160ha 300농가가 재배하여 연간 2,000여톤을 생산하게 되었다. (중략)

농업기술원에서는 1998년에 복합가공공장을 시험포장 내 설치하여 복합가공시설을 갖추었으며 선인장 가공업체는 1996년 2개 업체가 참여 과립차, 청차, 엑기스, 쨈, 비누 등을 만들었고 2014년에는 37개 업체가 참여 국수, 요구르트, 한과, 의약품첨가물, 음료수, 화장품 등 상품이 다양화 되었다.’(이성돈, 제주 약용작물 재배의 역사, 헤드라인제주 2020.5.28.)

백년초차 (출처_제주로얄식품)
백년초는 과립차·청차·엑기스·쨈 등 가공식품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출처_제주선인장백년초농장)

작년에 가족과 함께 월령리를 다시 찾았다. 제주에 내려온 지도 꽤 됐고 바로 옆 협재·금릉해변은 자주 놀러가는데 왜 월령리는 그동안 한 번도 들르지 않았는지... 마을이 이젠 제법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관광객들도 꽤 드나드는 마을이 되었다. 아마도 20년 전 만났던 마을 어른들은 그 때 당시도 많이 연로하셨으니 지금은 대부분 돌아가셨을 것이다. 제주 4.3사건의 상징적인 인물이셨던 ‘무명천 할머니’도 20여년 전 바로 이 마을에서 뵙고 그 집도 직접 고쳐드렸지만, 이젠 돌아가신지 오래고, 빈 집만 보존되고 있다.

월령리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래도 오래된 집들과 그 돌담에 심겨진 백년초가 그대로여서 한참동안 진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월령리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래도 오래된 집들과 그 돌담에 심겨진 백년초가 그대로여서 한참동안 진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20년 전 마을 곳곳을 누볐는데 이젠 마을에서 길을 잃을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생각해보니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세월이다. 그 때 20대의 파릇파릇했던 청년은 벌써 불혹을 넘긴 지 한참 오래다. 아! 그 때, 이 마을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청년의 마음을 한창 흔들어 놓았던 첫사랑, 그 여인은 지금... 다행히 아직까지(?) 옆에 있다. 그사이 아이를 둘 씩이나 낳고...-지금은 심지어 셋이 됐다.- 그 아이들과 손잡고 다시 이 마을을 찾으니 감회가 참 새롭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래도 오래된 집들과 그 돌담에 심겨진 백년초가 그대로여서 한참동안 진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20년, 40년이 지나도 제주는 행복했던 추억 속 그대로, 아름다운 제주 그대로 남아주길 그 어느때보다도 간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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